조회 : 824

[제3회]


BY teaser1 2001-03-29

- 이별 -

준하오빠....
그녀가 나에게 준하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준하오빠 잘지내...
준하가 잘지내던가? 그는 지금 어디 있던가? 난 머리속으로 준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주어야 할까 한참을 생각했다. 준하는...준하는...

[여전히 준하오빠는 노래도 잘 부르고 오빠의 향기도 여전하겠지?]
눈물 한방울이 또로록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저런 모습으로 영미는 준하를 그리워하며 지냈을까...

[준하는 잘 지낸다.... 그래....준하는 아주 잘 지내지... 잘지내...]
난 먼 허공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그저 멍하게 말하고 말았다.
준하가 잘 지내던가? 준하가 진짜 잘 지내나?

[다행이다...준하오빠는 행복해야지... ]

[바보같은 년....]탄식처럼 내입에서 그녀를 탓한다.
준하를 사랑한다면 넌 왜 준하를 떠났니? 그녀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꾸욱 눌러내렸다.

[넌 어떻게 지내? 어디서 살고 있는거야?]

영미가 다시 고개를 푹 수그린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그녀가 말했다.
[언니....전 잘 지내요. 아주 멀리서 살고 있진 않아요.]
잘 지낸다고 한마디 던지고는 그녀....
한참을 탁자위만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 그녀의 그런 모습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져 난 또 다시 담배를 꺼냈다.

[언니....나 결혼했어요]
순간 나는 움직일수 없었다.
영미가 결혼했다고 말한다.
준하가 아닌 다른 남자랑 결혼을 했다고...
반사적으로 난 그녀의 손가락을 눈으로 더듬었고 정말 그녀의 손가락엔 결혼반지로 보이는 보석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결혼을 했구나... 어떤 사람이니?]
난 다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담배를 물며 그녀에게 물었다.

[좋은 사람이에요. 저 아주 힘들때 많이 도와주신 분이에요. 저 잘 살고 있어요]
그녀의 말위로 그녀의 어두운 눈빛이 흐른다.

[다행이구나...그래 잘했어... 안그래도 너 빈몸으로 갑자기 사라지고 모두들 걱정했다.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구나]

영미는 커피잔 손잡이만 만지작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에 어색하게 번쩍이는 반지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언니는 아직 싱글이세요? 언니도 결혼해야 할 나이잖아요...]

영미가 나에게 결혼했냐고 묻는다.
그렇지 영미 말대로 내 나이도 벌써 34살인데....
하지만 나에겐 번쩍이는 보석반지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나 아직 싱글이야. 아직 별로 그렇구나]

[언니... 나 사실 언니에게 묻고 싶은게 아주 많은데... 말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아직은...아직은 말할수 없네요. 시간이 더 필요한거겠죠. ]
그녀는 목이 타는지 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한모금 마신다.
[모든게 유리처럼 투명해 지면 그때는 모든걸 말하고 들을수 있을꺼에요. 기다려 줘요 언니...]
그녀는 유리처럼 투명해 지고 싶었나 보다.
아직도 그녀의 마음이 어딘가 불투명한 우윳빛으로 흐려져 있다고 그녀가 말하는거다. 그래...어쩌면 나는 벽돌같이 투박하고 더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수도 들을수도 없는것이 또 나란걸 나도 알고 있다.

[그래...나도 그렇구나... 연락처나 좀 알려줘라. 가끔은 네 목소리 들으며 살고 싶어지는걸... 우리 이제 더 이상은 서로 그리워 하며 살지 말자]

그녀가 작은 종이에 핸드폰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핸드폰 뒷번호가 준하의 생일이란걸 난 바로 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준하를 떨쳐버리지 못한거구나...

[언니...저 이만 가봐야 겠어요.
연락 주세요. 가끔 나도 언니 목소리 듣고 싶어요. 담에는 더 오래 함께 있을수 있겠죠. 밑에서 남편이 기다려요. ]
그녀가 슬픈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가야 한다고... 남편이 기다린다고...

[그래...연락할께... 너두 연락해...난 좀더 있다가 갈께]

영미가 일어나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바람이 불어 가로수에 몇장 남지 않은 마른 잎들이 흔들릴때 마다 사람들은 몸을 움추리며 종종걸음을 걷고 있었다.

영미가 가게 문을 열고 나가자 어디선가 큰 중형차 한대가 스르르 다가와 섰다.
그리고 양복입은 젊은 남자가 운전석에서 재빨리 내려 그녀 앞에 차문을 열어주고 그녀는 그 갸날픈 몸을 뒷자리에 스르륵 밀어 넣었다. 그녀의 옆자리엔 아주 나이들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차는 다시 미끄러지듯 출발하고 그녀는 뒤로 몸을 틀어 창너머로 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