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이 휴가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는 날, 나는 그녀를 태우러
비행장으로 나갔다. 트랩에서 내리는 그녀는 몇일동안 안봐서
그런지 더욱 예뻐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손을 흔들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헬로, 수잔, 별일없이 잘다녀 왔어요?
떠나기 전보다 더 예뻐진것 같아요"
"고마워요, 여기까지 마중나와 주시고, 미스터 허도 더 건강하게
보이네요"
"부모님과 동생들도 모두들 안녕하시구요?"
"예, 모두들 잘있어요"
그녀는 나에게 반갑다는 듯이 웃고 있었는데, 떠날때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저 있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일이 있느냐고 물어볼수도 없고,
나는 그녀의 큰가방을 받아들고, 그녀와 같이 내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미스터 허, 저녁식사 후에 스넥바에서 만나서 얘기좀 할까요?"
"여행에 피곤할텐데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쉬는 것이 어때요?"
"괜찮아요, 비행기 탄 시간은 3시간 밖에 안되는 걸요,
그리고 꼭 할얘기가 있어요"
"그럽시다, 저녁 7시에 바에서 내가 기다리지요"
나는 수잔을 숙소에 내려주고 현장으로 일하러 다시 나갔다.
수잔이 저녁에 나에게 할이야기가 무었일까, 궁굼하기도
하고 그녀의 얼굴에 엷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무었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오후 내내 궁굼하였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무슨일이 생긴것 만은 사실인것 같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는 스넥바로 향하였다.
내가 바(bar)안에서 기다린지 얼마 안되어 그녀가
들어왔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무래도 수잔이 좀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미스터 허는?"
"나도 먹었어요, 맥주 마실래요?"
"좋와요, 나도 한 켄정도는 마실수 있어요"
"그래요 수잔은 맥주를 못마시는 줄 알았는데..."
"가끔 친구들하고 사다 마시는 데요"
나는 맥주보다도 오늘 저녁에 그녀가 나에게 할 얘기가 더
궁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그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참동안을 우리는 이얘기 저얘기 하던끝에, 나는
너무 궁굼하여 그녀에게 할얘기가 무었이냐고 물었다.
잠시동안 그녀의 웃음이 멈추는 듯 하더니, 내얼굴을
마주보면서 그녀는 말을 꺼냈다.
"아빠가 저보고 결혼 하래요"
이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약간은 굳어 있었고, 내얼굴 표정을
살피는 듯 하였다. 순간 나도 무었에 얻어맞은 사람 모양으로
아무말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만 마주보고
있었다. 이나라에서는 열여섯 열일곱나이에 다들 결혼을 하는데
수잔은 거기에 비교하면 이미 늦은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부모가 결혼을 하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나에게 꼭 얘기를 해야겠다고
하는 그녀의 뜻은 무었이며, 자기의 부모에게 무었이라고
답변을 하고 왔을지가 더욱 궁굼하였다.
나는 아무런 할말을 잊은채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었인가 답변을 해줘야할 의무가 있고
그녀는 나에게 그의무를 이행해 주기를 바라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나라에서는 한남자가 능력만
있으면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살수 있다는 것을 수잔도
잘 알고 있기에, 나에 대한 어떤 기대감도 있을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와서 지금까지의 내행동이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할수 있지마는 지금에 와서 그것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수잔은 부모님에게 어떻게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왔어요?"
한참후에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그녀에게 물었다.
"회사내에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가서 그친구와 상의해서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고 왔어요"
"그친구가 누군데요?" 나는 혹시 마음에 둔 다른 남자친구가
있나 싶어서 되물었다.
"미스터 허"
"나요?"
나는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것 같았고, 찬물을 한동이 뒤집어
쓴 기분이 들었다. 에어콘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술집인데도
내얼굴은 갑자기 화끈거리며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로보고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코리아에 아내와 자식이 있다고 얘기 했는데....
그리고 우리나라 법은 한남자가 한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있어요, 두여자와 결혼할수가 없게 되어 있지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면 되잖아요
여기는 한남자가 여러여자와 결혼해서 같이 살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이나라 사람이 아니고, 이회사와 계약기간이
끝나면 내나라로 돌아가야 하오"
"그러면 아내와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요"
"왜요? 아빠 친구가 장관으로 있어서, 아빠한테 부탁하면
얼마든지 식구들을 데려올수 있어요"
그녀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해서 그런지
조금도 수구러 드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저녁 아무리 긴 시간을 그녀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결론이 날것 같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술을 마신다고 해도
취할것 같지도 않고,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수잔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숙소로 향하였다.
"수잔 우리는 앞으로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 나는 무어라고 얘기를
할수 없군요"
나는 우선 오늘밤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무었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잔은 아무말 없이 걷고 있었다.
그녀를 숙소에 바래다 주고 나는 내침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남은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며, 그녀에게
무어라고 답변을 해줘야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이생각 저생각에 나는 밤새도록 한잠도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