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배와 약속은 하였지마는 괴산댁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저녁을 먹고 초조하게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뻐~어꾹,뻐~어꾹, 뻐~어꾹~~~~
드디어 뒷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세번 들려왔다.
괴산댁은 갑자기 죄지은 사람 모양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처녀가 부모 몰래 사내녀석을 만나러 나가는 심정으로-
조용히 집을 빠저나와 뒷산으로 향하였다.
초여름밤의 날씨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참으로 기분이
좋은 밤이다. 밤하늘엔 보름달이 휘엉청 밝게 떠있어,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다.
내 무슨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길래, 한남자와 백년해로 못하고
지금에 와서 또다른 남정내를 만나서, 자기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발거름이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다.
남편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도
죽은 남편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남편없이 여자 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젊잔은 강아지 붙두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보리밭에
끌고 들어가 덥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니
머리속이 아파온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자기 스스로 선택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덕배는 덩치에 비해서 사람이 온순해 보이고 성실해 보이기
때문에 자기와 아이들을 위해서 잘해 줄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십여분을 올라가니 덕배는 이미 올라와 있었다.
"어서 오셔유, 힘든걸음 하셨구먼유~
저녁은 잡수셨남유~"
"예, 먹었어유~" 여인이 대답 하였다.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 해주는
사내의 모습은 낮에 본 인상과는 많이 달렀다.
덥수룩한 수염도 깔끔하게 깍고, 옷도 장날 미리 사서 준비를
했는지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덕배는 어디 내 놓아도 빠지지않는 남자다운 모습을 풍기고 있다.
미리 준비를 해 왔는지 신문지 몇장을 밭두렁에 깔고는
여자에게 않기를 권한다. 여인이 먼저 앉자 덕배도 없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 저녁따라 유난히도 달빛이 밝게 내려 비췬다.
달빛에 비처진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분홍색 부라우스에 검정색 스커트, 달빛에 비춰진 여인의
새하얀 얼굴은 누가봐도 아이 엄마라고 생각할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덕배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심취했는지
한참동안을 말문을 열지 못한다.
둘사이에는 서로 아무말없이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덕배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물고 불을 붙이더니
한모금 빨더니 길게 연기를 내 뿜는다.
"지가 아줌니 좋와하는 것을 아시지유?" 덕배는 한참만에
말을 꺼냈다.
"아줌니하고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구먼유,지가 가진거는
없어두 아줌니하고 아이들은 고생 안시킬 자신이 있구먼유~"
사내는 다시 담배를 한모금 길게 빨고는 연기를
내뿜는다. 여인은 아무말없이 듣고만 않아있다.
덕배가 여기서 정식으로 괴산댁에게 청혼을 한것이다.
둘사이에는 다시 아무말없이 침묵만 흐르고 있다
여인은 이렇다 저렇다 대답이 없다.
그러나 달빛에 비춰진 여인의 두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여자로 세상에 태여나 한남자와 평생을 행복하게
살지못하고 지금에 와서 또 다른 남자와 이렇게도 힘든
약속을 해야되다니....., 내 삶의 여정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여인은 정신나간 사람 모양으로
중천에 떠있는 보름달만 물끄러니 처다보고 있다.
사내는 여인이 울고 있는것을 눈치채고는 옆으로 다가가
갑자기 여인의 손을 꽉잡았다, 여인은 잠시 놀래는 눈치였으나
뿌리치지도 않고 그대로 않아있다.
"아줌니 용기를 내셔유, 우리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어유,
그리고 돌아가신 양반도 아줌니가 혼자서 고생하는것 보다는
우리 둘이 합치는 것을 원하실 거구먼유~"
사내는 다시 용기를 내어 여인을 자기의 가슴에 끌어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고, 그렇다고 뿌리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남자에게 안겨보는 행복감에서 일까?
여인은 오히려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옆으로 기대고는
행복감에 젖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하였다.
"참으로 여자 혼자서 살기가 힘드네유, 저의 식구들 불쌍해유,
앞으로 어떠한 어려운일이 있어도 버리지 마시고 보살펴 주세유"
여인은 참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하였다는 듯이
사내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는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염려 마셔유, 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사나이로서
맹서 하겠어유" 덕배는 더욱 힘껏 여인을 끌어 안었다.
오늘밤 유난히 밝은 달빛이 두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듯
쏟아지고 있다.
"몇일 있으면 지 생일인디 그때 여기서 다시한번 만날수 있지유?"
덕배가 물었다.
"예, 그러지유" 여인은 어느새 울음을 그쳤는지 환하게
웃고 있다. 여인의 얼굴에는 행복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둘이는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하고는 다정히 손을잡고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