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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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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BY 이슬비 2001-05-17

"삼촌.."

"가영아..너.."

눈부시도록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제 가.."

그녀의 이끌림에 주위를 둘러보니..

꽃으로 장식된 아치밑에 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게 아닌가..

밝은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황금빛 융단이 깔린 길..

많은 하객들이 웃으면서 우리를 보고 있는듯 했지만..

갑자기 머뭇거려졌다.

기영이를 사랑하지만..

아니..이건..아닌것 같아..이건....

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영아,,난.."

"삼촌..고마워..언제나 내곁에..있어줄꺼지?"

"그래..하지만..이건..그래도 우린.."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태우오빠가 기다리잔아.."

그랬다..

눈부신 햇살 너머에는..태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내가 널 보내야한다는 거..

참 힘들었는데..이렇게 정리되어지는구나,,이렇게..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지만 가영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그 말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것 같다.

태우의 손에 가영이를 넘겨주고 돌아서야 했다.

돌아서는 순간의 시간이..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래..잘 살아..늘..행복할꺼야..

널 그리는만큼..네 행복을 빌어줄게..가영아....

목이 메여오는 어두운 슬픔..

"삼촌..?"

가영이가 다시..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다..

황금빛 융단만이 빛을 발하며 끝이 없는 어둠의 저편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의 끝에는 날 기다릴 사람이 있으리라..




삼촌에게서 헉~하는 소리가 났다.

깨어나는 걸까?

얼른 수화기를 집어 의사를 불렀다.

"정말..들으셨어요? 아직은..."

"아네요..분명히 큰 숨소리를 냈다고요..허~억 하면서.."

의사와 간호원들이 방을 나갔다.

다시 이상이 있으면 연락하란말만 남기고..

그래..하긴 5달이 넘도록 잡들어 있는 삼촌이지만,,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일어나서 "힘들었지? 미안해.."라고 말해줄것이다. 분명..꼭...

이렇게 약해져가는 내 마음을 다져먹지마,,흐르는 눈물은 어쩔수 없었다.

"네.. 조가영입니다."

"가영이..너 우는거니? 무슨일 있어?"

"오빠,,아뇨..아니에요.."

"오늘은..좀 늦을것 같아..그래서.."

"괜찮아요..내 걱정 마요.."

"어떻게 걱정이 안되니? 그리고 또 괜찮긴 뭐가,,아냐..화내서 미안.."

점점..그녀가 멀어지는것 같은 조바심에 난 처음 그녀에게 목소리를 높혔다.

간병인의 사정상 비워진 병실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그녀에게 섭섭한 마음인데..

그것 뿐인데..

아니..어쩌면 형의 사고이후로 건조해져가는 가영이를 보며..힘들었던건 사실이다.

"가영아..미안해..너 힘든거 다 알면서도.."

"오빠,,미안하긴요..늦더라도,,나 오빠 기다릴께요.."

그녀가 지쳐가는걸 알면서도..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것 같다.




머리가..따뜻하다. 따스한 손길이 머리를 만져주는것 같다.

"오빠,,왔어..삼촌?"

"녀석..많이 피곤했구나.."

잠이 덜 깬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삼촌..정말..삼촌 맞어? 깨어난거야? 응..? 정말,,?

"삼촌..얼마나 ..미워..왜 이제 깨어나는거야,,얼마나 힘들었는데..나..얼마나.."

삼촌은 울고 있는 나를 안아 주었다.

"가영아,,미안해..나 때문에 힘들었지?"

"왜..그렇게 오랜시간..뭐한다고.."

"응..정리할려고..내 마음..너한테 정말 미안해.."

"뭐가..나만 고생하는것도 아니고 숙모도.."

"널 사랑해서 미안해..널 사랑했었어.그 마음이..정리가 잘 안되더라.."

"삼..삼촌.."

"그래 알아..네가 하고픈말 다 알아..이젠 괜찮아..정말.."

"삼촌..나...그 마음..고이 간직할께..고마워..깨어나줘서.."





그녀가 안스러워 미칠지경이다.

병상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그녀..

어떤 꿈인지..흐느끼는것 같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슴아파야 하는게..이젠 힘들어진다.

"가영아..?"

슬픈 눈이..나를 휙~ 쳐다보더니 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깊은 한숨...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치밀어 오르는 서글픈 분노..

"이제..제발 그만해..그만하자.."

그의 절제된 낮은 목소리..

그가 나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따라 나갔다.

어두워진 복도 끝에서 뒤돌아 긴 담배연기를 내뿜는 사람..

그의 어깨가 힘들어 보인다.

생각해보면..그가 힘들꺼라는걸 알면서도..

그가 나를 배려하니까,,나를 위해준다는 이유로..

난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를..힘들게 하고싶진 않았는데..그를..외롭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수 없이 달려온 길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흘러온..시간이였다.

"오빠..마지막으로 한달..한달만 기다려 줄래요?"

그는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난 그 손을 잡았다.

"이렇게..손 내밀면 잡아줄수 있는 거리에서..그냥 기다릴께.."

"오빠.."

한달이 아니라 한시간도,,참기 어렵다는걸 알면서도 그렇게 답할수 밖에 없었다.

너를 위해 모든것을 할수 있다고 자신하던 내가 아니였던가..

너를 품에 안고 있지만,,오늘은 외로워 지는 나를 느낀다.




어려운 수술 끝에..아이가 태어났다.

그를 무척이나 닮은것 같다.

아이가 들어 있는 인큐베이터를 볼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아직..세상구경을 할 시간이 아니였는데..

2.1kg의 미숙아로 태어난 내 아기..우리 아기..

엄마야..내가..엄마...

너도 아빠처럼..깊은 잠에 빠져있니?

날..향해 웃어줄수는 없는거니?

건강히..꼭..건강히 일어나야 해.

그래야 너랑 함게 아빠랑 깨우러가지..아빠를..

너..아빠 보고 싶지 않니? 난 아빠가,,무척 보고 싶어..

엄마의 결정이 어리석지 않다는걸..네가 보여줘..

아픈아빠를 등지고 떠나온 엄마 심정을..넌 알지?

면회시간이 끝이 나 커튼이 드리워지더라도..난 계속 바라본다.

세상이 내게 가장 소중한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언제나 대답은 나였다.

나 자신이 내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엄마가 되어서 난..가장 소중한건 가족이란걸 알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아들..

그가 어서 깨어나기만 기다렸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제발 그가 내가 돌아가기까지만 기다려 주기만 바란다.




"삼촌..내일이면 숙모 오는날이야..조카도..기쁘지? 그리워..이젠..그만 돌아와..

그립다는거...정말 가시지 않는 목마름같아..삼촌의 미소가,,너무 그리워..

나..이번달 말에 결혼해..삼촌의 축하를 맏고 싶은데..정말 그러고 싶은데..

삼촌이 그랬잔아..사랑하는 사람 외롭게 하지말라구..그래서..결정한거야..

삼촌이 깨어나면 하고 싶었는데..그게..내맘대로 안되더라..삼촌..아마 오늘이 마지막일꺼야.

이젠 숙모가 함게 할꺼니까..잘 있어.."

마지막으로 삼촌의 손을 잡았다.

아직 따스한 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