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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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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BY 이슬비 2001-05-13

며칠째 가영이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것 같다.

아직 의식이 없는 형..그 옆을 지키는 주희가 있지만..

하지만 그녀는 병원으로 갈 생각뿐인것 같다.

오늘도..난 그런 그녀를 위해 병원으로 가고 있다.

그녀가 웃음을 잃어버린 것처럼..난 가영이라는 빛을 잃어버릴것 같아서..

"오빠,,삼촌이..나 때문에..나 때문에.."

"가영아,,무슨소리야..울지마..울지말구.."

"삼촌이랑 헤어진 그날 저녁..삼촌이 내게 전화를 하다가..아마 그러다 사고..흑흑.."

"아닐꺼야..너 때문이라니..그런 자책감 같지마."

그녀가..상처 받는건 아닌지 걱정부터 된다.

주희말대로..정말 그런건가..?

형이 가영이를 위한 마음...머리가 복잡해진다..



만류하는 간호원을 뒤로하고 달려온 그의 병실 앞..

난..조용히 돌아섰다.

다음날 아침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이 있었다.

어리석은..선택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해야할 일은..그를 위한것이다.

아니 어쩜..그와 나를 위한 것이리라..

"민기씨..나...잠시 민기씨 곁을 떠나야 겠어..당신옆에서..깨어나길 기다려주고 싶은데..

나..임신했어..근데..한국에선 어렵다구.."

이유모를 눈물이..흐른다.

가영이에게 전화를 하다가 사고가 당한 그가 원망스러운건지..

아픈 그를 떠나는것이 슬픈것인지..

아이를 위해 남편을 등져야만 하는 내 신세가 한스러워 흐르는지..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나 찾아와줘..알았지? 많이 기다리게 하지마..나..당신 믿어."

대답없는 그의 마른 입술에 입맞추고 돌아섰다.

하지만 바로 방을 빠져나오진 못했다.

혹시라도 그가,,일어나 나를 붙잡아 줄것 같은 기대 때문에..



"우리 민기씨..아니 삼촌 잘 부탁해.."

"네.."

"주희야..몸조심해서..건강히 돌아와.."

일본으로 떠나는 숙모의 뒷모습이..조금은 원망스럽다.

삼촌이..아직 깨어나질 못하는데..아직..

"가영아..?"

"..나..숙모가 이해가 안돼요..이해가..아직 삼촌이.."

"휴..나도..잘 모르겠지만..주희도 나름대로 힘들지 않겠니?"

"하지만,,만약 나라면..난..."

"그런말 하지마. 만약이라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만약인거야..누구나 당하기전에 알수 없는거야"

그런건가,,? 난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것이 옳다고 믿는데..

"나 삼촌 병원에..데려다 줄래요?"

"그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때 핸드폰이 울려 그녀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통화가 좀 길어 질것 같아서였다.

"아니! 환자 팔이 이렇게 부었잔아요..이것도 안보고 뭐하는거에요?"

화가난건지 서글픈건지.. 그녀는 소리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

"조심? 당신..아무말 못하는 환자라고..느낌도 없는줄 알아요? 그런거에요?"

"가영아.."

눈물이 그렁거리는 그녀는 나를 보곤 정신을 차리는듯 했다.

간호원을 데리고 병실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건지 묻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간호원이 사라져가는 병실 복도를 멍하니 보고 있다.

잠시..그녀에게 시간을 주고 싶다.



"삼촌..소리쳐서 미안..아팠지? 많이 아팠을꺼야..삼촌이라도 화냈을꺼야 그렇지?

아니 어쩜..삼촌이라면..나처럼 이러진 않았겠지..내 곁을 지켜 줬겠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동안..삼촌의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삼촌의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치웠다.

"삼촌..숙모 일본 간거 알지? 언제 올지 잘 모른대..그게 말이 돼?

하긴..나도 조카가 안보고 싶은건 아닌데..그런데..그래도 삼촌..혼자두고 어떻게.."

울고 있는 날 안쓰러워 할까..난 얼른 눈물을 삼켰다.

"삼촌..내말 들리지? 조금만..더 자고 일어나는거다..알았지? 조금만,,"




형은..그렇게 넉달이란 시간을 더 보냈다.

나에게 미안해 하면서..형에게로 향하는 가영이를..막을순 없었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자책감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으니까..

하지만 점점..그녀가 멀어지는것 같아 불안하다.

"형..나야..태우..많이 야윈것 같아..이제 일어나야지..다들 힘들잔아..

형도 힘들꺼고..일본에 있는 주희도..가영이..많이 힘든거 알지?

형이 일어나서 전화하다가 난 사고가 아니라고 가영한테 얘기해야지..안그럼..

나..형 믿을께..일어 날꺼지? 가영이가 아파하는거..나 더는 못보겠어..형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