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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주말 차량 운행 전면 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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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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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hyhy0710 2000-12-22

그 다음해 겨울이 왔다.
공장,주요소,빵집, 심지어 당구장 아르바이트일까지도 다 해봤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나를 마땅히 써 주는 곳도 없었고,욕심이
많았던 나는 내가 한 고생에 비하면 보수는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일하는곳에 나쁜일이 생기면 고스란이 내 몫이었고 그나마 작은 보수에서도 갈취를 당하기 일쑤였다.
새벽부터 나가 오후 늦게까지 일하여 받는 임금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똑같이 일한 동료보다도 낮았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어디엔가 계실 아버지의 용돈까지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기에 난 또 다른 살 길을 찾아 헤메여야만 했다.
'어디로 가야만 할까'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고....마음이 정말 시려왔다.
그러나 난 알수 있었다. 또다시 반복되는 가난으로는 견디기 힘들다는것을 그렇게 난 일어설 그날을 항상 주시하기로 했다.

"몇 살이지.'
"18살이요."
나이가 어린게 죄스러운듯 숨죽이며 나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일수도 있어."
"하지만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어."
"김 언니가 소계한거니까 원칙을 깨고 해줄게."
소계소 소장은 몇 군데 전화를 넣었다.그러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김언니는 내가 일하던 당구장으로 다름아닌 차배달을 오는 20대 후반의 다방 내지였다.
그리 친한사이는 아니었지만 남자만이 가득한 가게내에서는 다방내지들이 유일한 말상대였다.
김언니는 그 중에서도 상술이 좋은 편에 속하는 내지였다. 김언니는 나한테 잘 보여서까지 차 한잔이라도 더 팔고 싶어했다. 나는 그런 김언니에게 차를 시키도록 손님들을 곧잘 유도하기도 했다.
당구장을 그만둘때쯤이었다.
"갈 때없고 어려울때 연락해라."
"언니가 일 자리 소계 시켜줄게."
김 언니가 소계 시켜줄 일자리는 불 보듯 훤했다.
그래도 난 자청해서 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부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은 사치스럽게 생긴40대 초반의 여자가 내얼굴을 보며 흐믓해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구 그 주인은 소장에게 소개비30만원을 준 뒤 나를 데리고 영등포의 시내로 나왔다.
"옷 있니."
"입고 싶은 옷 골라라."
"아- 화장품도 사야겠다."
청바지와 짧은 스커트 검은색 블라우스 한장을 골랐다.
화장품은 콤팩트와 립스틱을 사고 나머지는 같이 일하는 언니것을 사용 하기로 했다.
물론 돈은 주인언니가 지불했다.
'%%다방' 팻말이 붙어있는 허름한 건물의 지하로 난 들어갔다.
너무 겁이났지만 난 애써 그런 기색을 감추었다.
"안녕. 나는 유리야." "응.이언니는 은영이 언니고."
"여기 있는 언니들은 다 1년이상된 언니들이야."
"언니들한테 잘 배우고 돈 많이 모아라."
좌측 한 켠에는 담배를 물고 지켜보는 언니가 한 명 더 있었다.
아주 예쁘게 생겨서 어린맘에도 이런곳에 있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니의 이름은 미영이였다. 언니는 시골에 있는 동생과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나에게 따뜻하게 되어 주었다. 그래도 그 근처중에서는 내가 있는 다방이 장사가 아주 잘 되었고 모두가 바빴다. 일매출이 지금 기억으로는 30-40만원 정도 되는것 같았다.
그 곳에서 난 그언니의 집에서 함께 살 정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도저히 엄마와 동생이 있는 집에서는 그리고 동네에서는 짙은 화장으로 나갈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생활은 생각보다도 고되고 힘든 노동이었다.
공업사들이 밀집되어있는 그 곳은 기름때에 찌든 험한 남자들이 많았다.거기에 사무실이라고는 2층에 다락방같은곳이 고작이었는데 그곳을 올라간다는것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
얇은 철끈으로 또는 판자로 다리를 놓아놓았기때문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올라가는일은 수치스러웠고 높은 힐을 신고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다가 꼬꾸라저 멍이 들기 일쑤였다.
굳게 마음먹었던 나였지만 그 곳 생활속에서 나는 나약해져 있었다.
나는 가까웠던 미영언니에게 조차 말하지 않고 차배달을 하는척 가게를 나와 길 모퉁이에 찻잔 보자기를 놓고 그 곳을 도망쳤다.
공업사들이 밀집되어있는 그 곳은 길눈이 어두운 나에게는 미로였다.
1시간 넘게 헤메인 끝에 나온곳은 영등포의 %%백화점 앞이었다.
택시를 타고 우선 그 곳을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날들이 걱정이 되었다.
택시안에서 난 긴 한숨만 내리쉬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셨다.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 였다. 반가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밤을 지세우며 엄마와 아버지는 다투시기도하며 얘기를 나눴다.
얼핏본 아버지의 얼굴은 특별히 변한건 없었지만 엄마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누그러 들었다.
아버지도 양심이있으셨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을 늘 아프게 만들어 놓고 항상 아버지는 방관자 역할만 하셨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그런 아버지를 고칠려고 노력하지는 않은것같다. 늘 그런식이었으니 생각하면서 변하지않을것이라고 미리부터 단정짓고 지켜보다 당할때에는 늘 아버지를 원망했다.
하지만 핏줄의 힘이라서일까?
늘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당신만은 호화까지라고 표현하긴 뭐하지만 남에게 우쭐거리시길 좋아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기고 초라해지실때는 맘이 아프고 안스러웠다.
말을 않하시지만 엄마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실거라 생각이 든다.
"무당?"
"아니, 당신 남자가 그게 할 짓이에요."
"이봐, 같이 가보자구."
"오죽하면 나도 이런 결정을 하겠어."
하긴 아버지와 무당은 아니 박수는 전혀 어울리지않았고 아버지는 미신이라면 한때는 질색 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엄마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말릴수는 없다는것을...
그렇게 아버지의 신종사업이 시작될무렵 난 친구가 일하는 커피숍에 놀러를 갔다.
그 일이 나에게는 삶에 있어서 또 한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4부에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