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팀들은 출조를 나갔고 동수는 영한과 인근에 낚시를 하러왔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영한은 말이 없었다. 동수는 영한을 배려해서 묵묵히 아늑한 수평선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두사람은 그렇게 바다만 보다가 저녁이 왔다. 두사람은 석양을 등에 지고 아무말 없이 길을 걸었다.
"아저씨..."
영한이 동수의 뒤를 묵묵히 따라 걷다가 동수를 불렀다. 동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를 돌아 보았다.
"저... 아저씨 따라 낚시 다녀도 돼요?"
동수는 특유의 따듯한 미소로 답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동안 영한은 동수를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기술과 그밖의 상식을 배웠다.
돌아오는 뱃속에서는 사람들이 출조얘기로 시끌벅적이었다.
이번 출조에선 조황이, 씨알이 어떻다느니...
사람들의 목소리는 영한의 귀속에서 멀어져가고 영한은 여전히 뜨거운 커피잔을 손에 든채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동수가 다가왔다.
"언제 한번 놀러와."
명함을 건넸다. 영한은 명함을 한번 보고 동수에게 알았다는 듯이 눈길을 건넸다.
동수는 멀리 보이는 ?V을 보며 영한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각각 길을 떠났다.
동수가 낚시점에 들어서자, 진경은 흘겨보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동수는 특유의 너털웃음과 사랑스런 미소를 보내며 진경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라서 오히려 동수에게는 정겹기까지 했다. 진경은 오랜만에 온 남편에게 조잘대며 잔소리를 하고는 저녁준비를 위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동수는 멀어져 가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작은 아내 진경을 미소로 한참을 보았다. 진경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도구를 내려놓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게문이 열리면서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현이 뛰어들어왔다. 도현은 일주일만에 보는 아버지의 품으로 어린아이처럼 뛰어들었다.
"아버지..."
도현이 동수를 끌어안았다. 동수에겐 늘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밖에 없는 큰딸이다.
작은딸은 욕심도 많고 직선적인 성격이라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사는데, 큰딸은 항상 양보하고...
부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오후한때를 보냈다. 도현은 일년에 반은 바다에 가 계신 아버지지만 늘 부드럽고 인자하신 아버지가 좋았다.
도현이 아버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동수도 도현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앉았다.
이 아비가 너에게 힘이 되 주지 못하는 구나...
아버지, 아버지가 제곁에 계셔서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항상 건강하게 제 곁에 계셔주세요...
영한은 돌아오는 차속에서 외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영한을 낳아서 영한을 볼모로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재산을 챙겼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 많던 재산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영한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갈등이 생길때마다 영한을 그의 외가로 데려가서 열흘씩 맡겨 놓곤 했다.
그럴때마다 그의 외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영한을 번쩍 안고는 크고 밝게 맞아 주셨다. 종일 어머니가 타고 떠난 배가 사라진지 오래인 선착장에서 보낸 어린 영한을 등에 업고 바위로 향했다. 거기서 금빛으로 변한 바다와 하늘을 보여 주시며 옛날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렇게 밝은 모습만 애써 보이시고는 영한이 잠든 사이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느껴 우셨다.
어린것이 무슨죄가 있누...
어린 영한에게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외가와 연락을 끊은 아버지가 원망도 되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특별한 존재인 외할머니를 꼭한번 뵙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찾아헤맸다. 외가에 대한 추억은 많았지만, 어머니의 손에 잡혀 다닌 길이라서 주소는 커녕 알수 있는 사실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정처없이 배를 타고 다니는 수밖에...
그렇게 이섬 저섬을 찾아 헤멘 끝에 결국은 이렇게 찾았다.
돌아가셨을 거라고 상상은 했었지만...
화장을 해서 바다 어디에 뿌려졌다는 얘기만 들었을뿐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채 허무한 마음만 안고 머나먼 여행의 끝을 접어야 했다.
영한은 언제나 자신을 밝게 맞아주는 어린 계모가 고맙게 느껴졌다. 오랜시간을 분노와 무표정으로 사신 영한의 아버지도 그의 계모덕에 성격이 많이 밝아졌다. 영한이 집에 오자 계모의 노력으로 화기애애한 저녁식사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영한은 메일을 확인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여전히 많이도 보냈군...
잊고 지냈던 오랜 우정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연제의 목소리다.
영한은 수다스럽고 귀여운 연제를 떠올려본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