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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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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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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이나래 2001-01-25


아무곳도 갈 곳이 없었다.

아빠가 캐나다로 가셨다는건 병원에서 이미 들었다. 교환교수로 가시

면서 가족모두가 가신다고, 내가 아빠 딸임을 알아본 아빠의 제자인

레지던트가 알려 주었다.

난 이미 몇달 전에, 그 가족에서 제외 되었고....

불과 몇 달 전일인데도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인것처럼 느껴지는건,

그만큼 그동안 나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많았음을 실감나게 해 주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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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거,

참 힘들구나.

자꾸만 눈물이 나는걸 보니, 나, 어른이 되려면 아직두 멀었나보다.

아무도 없는데, 이제 정말 내 곁엔 아무도 없는데, 아직 어른이 되려

면 멀었는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도서관 창 밖으로, 입학할 때 피었던 개나리가 2 학년이 된 지금의

내 눈앞에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피어난걸 보니,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민규네도 지난 1 월에 미국으로 갔다고, 이삿짐을 도와주시던 아줌마

에게서 들었다.

이모에게서 받은 번호로 아빠한테 전화했을 때,울기만 하시던 엄마가

보고싶어서, 백번도 넘게 죽고 싶었던 마음도 모질게 먹고,어떻게든

공부를 마치고 잘 되는 미사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공부에만 전념하기

로 마음을 먹었는데도, 날 방해하는건, 참아도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민규와 함께 있을 땐, 그래도 그 아이가 있어 주어서 그리움이 가려

졌었는데....


<도서실에서 자리 차지하고 질질 짜기만 할꺼면 보타리 들고 나와

요.울음을 그치게 하는 명약을 처방해 줄테니...김/진/수>

어깨를 툭 치며 건네준 쪽지에 김진수란 낯선 이름이 나를 그리움에

서 건져내 주었다.

그렇지만 그 쪽지와, 그의 어깨짓으로 따라 나오라는 곳엘 따라 가지

는 않았다.

난 이미 한 아기의 엄마가 될 뻔도 했었고, 그리고 이젠 어느 누구의

여자도 될 수 없는 몸이란걸, 가슴에 주홍 글씨처럼 달고 다녀야 할

주제에 남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순 없다고, 나 스스로가 나에게

수도 없이 다짐해 두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학생은, 그저 흔히들 튕기는 여학생

쯤으로 여겼는지, 끈질기게 접근해 왔다.

그날도,여전히 같은 쪽지를 내 앞에 펼쳐 놓고 도서실을 나갔다.

< 벌써 열번쨉니다. 오늘은 나오셔야지 속담 만든 사람이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속담 고치는 사람이 되기는 싫습니다.김/진/수>

메모내용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번쯤 만나서 애길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가 적어준 곳으로 갔었다.

" 저기, 난요....한가하.."

"아! 됐습니다. 암말 안해두 다 아니깐 그냥 편하게 있어요."

"날...알아요?"

"물론, 잘 알죠.영문과 2 학년 장미사 라는 것과.."

" 그정도 알면, 내가 1 학년때 어떤 아이라는것도 알겠네요? 그러

면서 왜 나한테 메모 보내요?"

"..1 학년 때 늘 한 남자랑 붙어다니다가 요즘은 같이 안 다니길래

찢어졌구나, 게다가 툭하면 창밖 내다 보며 우는걸 보니, 찢어진

거 확실하구나, 그래섭니다. 난, 우는 여잘 보고 달래주질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 되나서요. 그리구 도서실에 자리두 맨날

모자라는데, 자리 차지하구 울꺼면, 이런데 와서 조용히 울어야

달래줄 사람두 생기지..."


"그렇게 보였나요? 도서실에 늦게 온 사람들 한테 미안하네요. 앞

으로 안 울구 공부만 할께요.됐죠? 약은 필요 없어요.그럼 갈께요"

"햐..! 가만, 다시 앉아 봐요! 속담, 이거 순 사기네. 열번 찍으면

넘어간다구 해 놓구선 순진한 한 사나이를 놀려?"

"봐요? 왜 그렇게 유치해요? 몇 학년이예요? 중학생 아니예요? 못

들어 주겠네..."

"미안해요. 내가 들어두 수준이하네. 늘 우울해 보이길래 장난 좀

친다는게, 오바를 넘어서 유치해 졌네. 기분 풀어요. 나, 3 학년

인데, 동기들은 다 군대가구 복학생들만 수두룩한 속에 있었더니

아저씨들 수준 닮아가나 봐요. 아뭏든..나랑, 사귈 맘, 없어요?"

"... 나, 갈께요.저 별루, 아직 사람 사귀는거 싫어요.미안해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됐어요, 그럼. 담에 인연 있음 또 봅시다.

아, 그리구, 아무 동아리두 안 들었죠? 취미 맞는거 있음 동아리

활동두 하구 그래요. 맨날 그렇게 웅크리구 도서실에만 박혀 있지

말구요."

"네, 생각해 볼께요. 그럼..."


그날은 그렇게 헤어지면서, 쉽게 물러나는줄 알았는데, 그 다음 날

부터 또 다시 끈질기게 메모를 보내왔다.

이번엔 각 동아리의 활동 내용과 안내사항을 첨부해서...

김 진 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착하고, 자상하고, 다정하고, 또 끈질긴....

그가 4 학년이 되면서, 군대가기 전까지,1 년 동안을,

난 그의 따뜻함 속에 묻혀 지냈다.

그의 말대로 그에게는, 내 상처난 영혼을 낫게 해주는 명약이 있었

고, 주는데로 마냥 받아 먹기만 했던 내 영혼이 조금씩 나아갈 무렵

그는 입대를 했던 것이다.

그가 입대하고 훈련 기간이 끝나고, 자대배치 받는거 확인한 후에

난, 그의 곁을 떠났다.

내가 그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니까.

그의 곁에는 나보다 더 깨끗하고. 더 맑은 영혼을 가진 착한 여자가

그의 사랑을 받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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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힘들었지만,

슬픔이 몰려올 때 마다 내가 매달릴 수 있는건, 공부 뿐이어서

졸업은 과 수석으로 졸업을 했다.

엄마께서 졸업식장에 오셨을 땐, 두 모녀는 우느라 사진을 한장도

못찍었다.아빠는 학회 일과 겹치셔서 못오신다고....사실인데도

아빠가 날 아직도 용서를 안해 주신거 같아서, 그날의 내 서러움은

엄마를 붙들고 놓아주질 못했다.

오늘만 실컷 울고, 난 다시 어릴적 미사로 돌아가기로, 그래서 늘

생글거리던, 웃는 얼굴이 이쁜 나로 돌아간다고 엄마와 약속했다.

학교에선 공부를 더해서 학교에 남길 원했지만,

난, 나같은 사람은 학생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내 자격지심이

교수님의 부탁을 거절했다.


여직원에게 까다롭기로 소문난 D 그룹의 무역부에 입사를 했다.

남자 직원과 똑같은 연수과정을 마치고 이잰 신입티도 벗고 해서

일이 손에 익어서 제법 일하는 맛을 알게 되기까지 2 년의 세월이

지났다.

여직원들 사이에서, 다른 부서에 새로들어온 한 신입사원의 대한

얘기가 돌고 있었다.

군대 간 사이에 변심한 애인이 우리 그룹내에 있다해서, 그녀를

찾으러 입사를 원한다고, 면접때 자기를 꼭 입사시켜야 한다고,

면접위원들을 감동시켰다나, 어쨌다나. 그거야 괜한 소문이고,그 만

큼 실력이 되니깐 들어 왔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건 나도 예외 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