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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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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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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BY 윤현미 2001-01-04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데 지금 내가 뭘 걱정하고 있는거지?"
'이런 일로 내 인생을 허비할순 없어'
'그래 아니야.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
수없이 되뇌였던 말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일은 상호와 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닌가.
그런데 그 일 이후에도 상호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건넸고 나 또한 상호에게 별다른 얘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속을 모르는 상호는
내게 계속된 요구를 해왔었다.

"너 지금 진짜 생각이 있는 애 맞니?"
"또 무슨 얘기야"
"나 솔직히 그 수술받고 나서 많이 생각해봤어.
왜 나 혼자만 힘들어야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데
넌 나한테 아무런 얘기도 안 해주고
그런데도 계속 그런 걸 요구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하니?
응?"
"......"
"휴~우. 아니야. 내가 괜한 얘기했다.
나 그냥 갈께. 다음에 보자"

상호를 만난지 2년여가 지났지만 상호는
나를 잘 몰랐다. 가끔 말을 할때는 자기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어딨나며 우쭐대기는 했었지만
나 역시 상호를 잘 몰랐고 상호 역시 그러했던것 같다.

"오랜간만이네. 왠일이야 도통 연락도 없던 애가?"
"내가 그랬나? 잘 지냈니? 미안하다.
할일도 없는게 그냥 바쁘네"
"그래. 하기사 진자 백수가 되면 더 바쁘긴 하겠지.
나도 한때 그런 생활을 했으니 잘 알지"
"나 할 얘기가 있어서"
"뭔데? 혹시 심각한 얘기는 아니지?"
"그때 할려고 했는데 못했었어 근데 지금 안 하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진짜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눈물만 난다."
"무슨 일이야."
"나 사실 임신했었어. 근데 몇주전에 중절 수술했어"
"뭐? 너 혹시 상호씨랑?"
"응."
"너 진짜...내가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지"
"아니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근데..."

울었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 마음. 그 얘기들. 가슴 한 구석이
몸 한 구석이 쓰라리게 아파온다.

"아~ 내가 해줄말이 없다."
"아니야. 그냥 너무 답답해서 얘기했어.
나 정말 어떻게 해야하지. 미칠것 같아.
괜한일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 정말 미치겠어...."
"왜 별일이 아니야. 상호씨는 뭐라그래?"
"그냥 별 얘기 없어."
"연락은 하고?"
"만났는데 애가 계속 그런거 하자고 해서..."
"뭐?! 이 미친 놈을 그냥...
위로는 못 해줄 망정 지금 그 자식이..."
"야. 상호한테 전화해. 지금 좀 만나자고"
"무슨 소리하게. 왜..."
"니가 그런 말도 못하니가 그 놈이 계속 그러는거지.
내가 욱해서 하는게 아니라 내가 만약에
너랑 같은 상황이라면 나 상호같은 놈 따귀한테
날렸다. 정말. 빨리 전화해."
"야. 그러지 말아라 제발."
"아니야. 정말 난 이게 널 위한 거라 생각한다.
내가 괜히 화를 내는 건지도 모르지만
너 이렇게 몸도 다치고 더군다나 마음도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네 애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할수가 있어. 솔직히 너희 사귄지 2년이 넘었는데
결혼할때도 ?怜?결혼하자고 하면 되는데 네가 수술하니까
같이 맞장구쳐서 수술하게 한건 또 뭐야."
"......"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건진 모르지만
상호씨 너랑 결혼할 생각도 아예 없는 거 아냐?
그냥 순진한 애랑 놀아보자는 심산아니냐구"
"야.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너무 심하게 얘기한건 알겠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잖아. 사귄지 2년이 넘었는데 결혼하자는
얘기도 일체 없고. 처음 만나서는 빨리 결혼하지고
호들갑이더니.... 하여간. 빨리 상호씨좀 연락해줘"
"......"

뚜우뚜우뚜우...

"상호 지금 통화중이다. 그냥 다음에 시간나면 같이 그냥
만나자. 알았지?"
"그러지 말고 상호씨 연락처 좀 줘봐. 내가 다음에 전화할께."
"너 이상한 소리 하면 안된다."
"알았어. 그냥 얘기만 할려구..."
"자."

우리둘은 사귀면서 그 어느누구에게도 서로를 소개하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만난 우리 동창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내 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상호는 전혀 대면을 한적이
없었다. 나 역시 상호친구들과 대면을 한 적도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