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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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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장미정 2000-11-23


도대체 가을이란,
일수에겐 특별한 계절이였다.
잃어 버린 사랑.
쓰디 쓴 번뇌의 잔을 수없이 들여 마셨던 계절.
몇 해의 같은 계절을 떠나 보내고서야
또다른 사랑을 그의 가슴 한 쪽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정해주....
누군가를 만나보기 위해
만나야만 했던 그녀.....

긴 생머리에 머리띠만 하고 다니는 그녀는
직장인이라고 하기보단,
발랄한 여대생 같아 보였다.

일수는 해주가 추천해주는 여회원 두 명을 만나
보았지만, 영 맘에 내키지 않았다.
약속한 두번째 여자와 일수는 저녁도 같이 하지 않은채,
두번째 여회원을 돌려 보내 버렸다.
그리고, 해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에요. 김 일수!"

"네..."

투명한 말투였다.

"무슨일 있어요?"

"네...있네요."

"무슨? 왜요?"

"참, 해도 너무 하시네요."

"무슨 말입니까? "

"남자가 매너도 없이 첨 만난 여자를 차만 마시고
돌려 보내는 사람이 어딨어요?"

"여기요! 여기 있잖아요..하하하"

"나참, 지금 누가 농담 하재요?"

"그럼 어떡합니까?
이 교정 한답시고 쇠덩어리를 물고 나오느 여자와
밥이 넘어 가겠습니까? "

"........그래도 그렇지...."

"말 할때 마다 은빛이 비치는데,
나참, 웃기도 뭐하고 인상 쓰기도 그렇고
저도 나름대로 매너 지켰으니, 나보고 뭐라 하지 마십시요."

"제 입장은 생각도 안하시고..."

"아까는 해주씨 입장보다 제 입장이 더
난처했다는 것만 알아 주십시요."

"아...됐어요..됐어.. 말을 못하면....
그렇게 나오다간 장가는 다 갔네뭐.
스른 전에 장가가면 제 손에 장을 지져요."

"그래요? 전 장가 안갈건데....히히"

"치...."

"바빠요?"

"아뇨...이제 퇴근 해야죠. 왜요?"

"그럼 나오세요.. 여기 해주씨 사무실 앞인데..."

"우리 회사요?"

"네.."

"왜 왔어요?"

"왜라뇨...섭섭하게...그래도 두 여자를 소개 해주신
해주씨에게 밥이라도 안사주면
나중에 병철이 놈한테 무슨 봉변을 당하라구.."

"에구...그래요.그럼..오늘 비싼거 사주셔야 돼요."

"그럼요..누구 말씀인데...하하하"


일수가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생등심 구이 집이였다.
고기와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둘은 오붓한 저녁식사를 했다.

"이 집 고기 맛있죠?"

"네.. 그렇네요."

"회사에서 회식 차 자주 오는 집이에요."

"아네...."


일수와 해주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비워진 술 병을 뒤로 한채 가든집을 나왔다.

이미 밖은 어둠으로 깔려 있었다.
가든 입구 쪽으로 나오자
그 근처 공원이 하나 있었다.

"우리 공원 한 바퀴만 돌고 갈래요?"

"그러죠뭐.."

둘은 잠시 말없이 걷기만 했다.
띄엄띄엄 보이는 나무벤츠가 보였다.
일수는 벤츠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어
벤츠 위에다 깔아 놓는다.

"해주씨...여기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죠?"

"후후...일수씨 하늘 좀 봐요.
별 정말 이쁘네요..
서울엔 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긴 약간 외진 곳이라 아직은 별이 보여요.
근데...서울이 고향이 아닌가봐요?"

"네...부산이요..오륙도와 동백이 유명한 ......훗~
아~~ 고향 생각난다..."

"네에..."

"일수씨!"

"네?"

"인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해주씨가 만들어 가는거라면서요?"

"후후....그건 직업 때문에 하는 말이죠.."

"그랬어요? 나참, 난 그걸 또 믿었네.."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죠.
사람 나름대로 만들어 가는 것일수 있으니..."


해주는 밤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 보고선,
아래로 고개를 떨군다.

"햐~ 오랜만에 술을 한 잔 했더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고마워요."

"제가 뭘 했다구.."

"때론, 이러고 싶었거든요.
누군가와 밤하늘을 보며 여유로움을 잠시라도 즐기는....
괜히 혼자 바쁜척 하며 살았던것 같아서요.."

"다 그렇죠뭐..."

"일수씨,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네....그러세요."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도
희열을 느낀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그냥....그럴 것 같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미친놈 아니고서야 희열을 느낀다면........
음......문제가 심각한거죠..."

"네.....그렇군요"

그녀는 또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이 순간 감당 하기엔 벅찬 해주의 행동에
일수는 알수 없는 의아심을 느낀다.

가끔 그녀를 느낄때 마다
일어 오던 가슴 깊은 곳의 뜨거운 연민이
한꺼번에 밀려 오는 듯 했다.

우연 일까?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의식적 만남 일까?
일수도 해주도 앞으로의 일들을 예측 할 수 없었다.
짙은 밤색 핸드백을 해주는 자꾸 맨만진다.
그 행동을 지켜본 일수는

"저....해주씨..."

"네......"

"우리 그만 갈까요?"

"가고 싶으세요?"

"아니...그건 아닌데..."

가로등 불빛 아래 아?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입술은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있던 해주는
갑자기 벤츠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그리고, 걸어 간다.
일수는 해주의 뒤를 따르며

"왜그래요? 갑자기..."

"가자면서요?"

"네....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화난 사람마냥..
제가 뭐 실수 했어요?"

"아뇨! 가자구요. 각자 집으로..."

"화 났어요?"

"아뇨!"

"해주씨!"

일수의 목소리엔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가는 길을 멈추고 등을 돌려
그녀는 일수를 바라 보았다.

"해주씨...도대체 왜 이러는 거에요?
저 한테 뭘 원하세요?"

"원하냐구요? 제가?
훗~ 난 그저...........
아니에요...그냥가요.
미안 했네요.."

다시 갈려는 그녀의 팔을 순간 힘껏 잡아당기며
일수는 순식간으로 그녀에게 강렬한 키스를 한다.

그들을 비추는건 가로등 불빛 하나가 전부였다.
해주는 눈을 감아 버린다.
그리고, 잠시 후 살짝 몸을 빼내며

"저......갈께요."

"해주씨....."

"참, 그리고요.
다음부터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는
키스 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그 곳을 떠나 사라지고 없었다.
제기랄~ 일수는 각기 다른 색의 블록을
같은 색으로만 나열된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흩날리는 낙엽...
발길에 차이는 낙엽들...
일수는 집중할 수 없는 생각의 갈피에서
문득 떠오르는 은아의 모습을 지우려 애쓴다.

문득 문득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쑥 떠오르는 은아의 영상은
이젠 얄밉게만 느껴진다.

사랑은 이렇게 오는 것일까?
예상 못한 곳에서........
아니, 어쩌면 모르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곳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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