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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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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장미정 2000-11-17


1994년 겨울.....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것......


"미친 새끼...가기 싫음 마라!
여태 네 생각 해서 했던 말인걸 모르고
너 바보냐? 그게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구.."

일수의 무덤덤함이 친구 병철이를 화나게 했다.
누나가 일한다는 이벤트 회사에
상세 프로필을 넣어서 여자 소개를 받아 보라는
제의를 무시 해버린 거였다.

증세..........
더해 가는 것 보다
무서운게 "굳어짐"이다.

일수는 그랬다.
"첫사랑"
그럴듯한 근사한 곳에서 프로포즈는 커녕
첫 키스 하는 날,
소리없이 내리던 빗방울이 둘의 코에 떨어지는 바람에
얼마나 쑥스러워 했든가
너무나 순수하고 맑았던....

내영혼 다 바쳐 사랑한 내 사랑을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만 했던게 못내 아쉬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해줄 수 없던 상황에서 그녀는 그렇게 떠나 버린 후였다.

일수 행동의 대한 서운함을 뒤로 하고
병철은 휭하니 가버렸다.

미치고 싶었다.
어떤 무언가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선
그 공간을 비워야 하는 법....
일수는 비울 곳이 이미 가득 채워져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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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가 지나고,
친구 병철이 한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며 약속한 곳은
압구정이였다.

요란한건 딱 질색인 성격이지만,
그 때 그렇게 보내버린 미안함에 못 이긴척 받아 준거였다.
시끄럽다 못해 귀가 멍해질 만큼
거리는 요란했다.
유행 가사가 흐르고,
흔들리는 네온싸인은 눈을 어지럽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하철 역 근처 7층짜리 건물의 2층
로즈마리 커피숍에 일수는 일찍 도착했다.
창가로 다가가 자리에 앉는 순간
서빙 아가씨가 다가왔다.

"뭘 드시겠어요?"

"주문........나중에 할께요."

"그러세요"

그녀는 따뜻한 온수를 내려 놓고 가버렸다.
약속한 시간은 점점 다가 오지만,
병철은 오지 않았다.

삐삐를 쳐볼까 싶지만,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을즘
낯선 여자가 그녀 앞에 다가왔다.

"저.........혹 김 일수씨 되세요?"

"그....런데요....?"

순간 당황해 한다.

"네.....맞군요. 오래 전 사진 같아 혹시나 했는데..."

그녀의 손엔 사진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일수의 맞은편에 앉으며

"잠시 실례 할께요."

"저.......누구신데...."

"훗~ 혹 .이 병철씨 아세요?"

역시 그 녀석 짓이였다.

"제 친군데...."

"전 이 현주씨 회사 동료에요.
병철씨 누나 아시죠?"

"아.......네.."

"사실....이렇게 까지 나오고 싶진 않았지만,
병철씨가 워낙 심각하게 부탁 하시길래.."

"네에....."

그녀는 핸드백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놓았다.


인연 만들기

커플 매니저 송 해 주


"커플 매니저? 이게 뭡니까?'

"좀 생소할 거에요.
미혼 남.녀를 미팅에서 만남으로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하는거죠...."

"중매인?"

"후후.....그건 옛날 말이구요.
그리고, 마담뚜 같은 그런 것과도 틀리구요.
저희 회사는 회원제구요.
일정한 회비만 내시면,
한달에 4명의 여성과 만나는 기회를 드리고,
그 중 맘에 드시는 분이 계시면
성격. 취미. 직업. 학력 등을 서로 맞춰보고
이어주는 일을 하죠.."

"아네..........근데.....전 그런데 관심이......"

"알아요..병철씨가 쉽지 않을거라고......"

"네? 하하....짜식 별소릴 다했네.."

"처음엔 다 부담스러워 하고,
어색해 하곤 하시지만,
하지만, 인연 이라는건 우연 이라는것도
옛말이죠. 우연이 아닌, 만들어 가는 거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사랑이 찾아 오는건 아니잖아요!
병철씨가 특별히 부탁한거니,
두 번만이라도 만나보시고,
인연 닿지 않으시면 그만 만나셔도 돼요."

일수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해주의 입만
열심히 쳐다볼 뿐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저........."

"네! 말씀 하세요."

"저......바빠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은데...."

열심히 설명하며 설득 할려는 해주는
순간, 의아해 했다.

일수는 계산서를 집어 들고 테이블 사이를
비켜 가는데, 해주는 서운해 하는 내색을 했다.

"저.....일수씨 안 바쁜거 다 알아요.
근데, 숙녀를 이렇게 두고 가는 매너 없는 남자와
저 역시 같이 있고 싶지 않군요!
실례 많았네요"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들고
일수의 어깨를 살짝 부딪히며 먼저 나가 버린다.

순간, 묘한 기분이 스치는건 왜 일까.....
일수는 저렇게 토라져 가버리는 해주를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그 후, 일수의 기억속엔
해주의 모습이 떠나질 못했다.

애써 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탓일까?
너무했나 하는 늦은 깨달음은 소용 없었다.

병철에게 해주의 안부를 묻는다는 건
더 할수 없이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자신 만의 방식으로만 사랑을 고집하는
일수는 그녀를 다시 만날 용기도 없지만,
미련을 버리기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그녀가 준 명함을 들여다 보았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걸어 보고 싶었다.
찾아 가고 싶었다.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고 싶었던 거다.

친절한 여사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자세한 위치 확인이 된 후에야 일수는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퇴근 후, 일수는 해주의 이벤트 회사 앞에 와있었다.
고층 빌딩의 5층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일수는 순간 놀랬다.
사무실 이라기 보단,
화려하리 만큼 편안 휴게실 같은 분위기였다.

칸칸이 자리가 배치 되어 있어
일대일 대화로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지게끔 꾸며져 있었고,
중앙엔, 몇 대의 컴퓨터와 킨 카운터가 짜여져
즉석으로 이상형 회원의 자료를 뽑아 주게끔
되어 있었다.

안내원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다가왔다.
"회원 이세요?"

"네.......저, 송 해주씨 라는 분 계세요?"

"송대리님 회원이시군요.
잠시만 저 쪽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벽쪽으로 칸칸이 만들어진 상담석 같은 곳이였다.
앉아서 기다렸다.
10분 쯤 지났을까..
그녀가 나타났다.

"어머? 어쩐 일이세요?"

아무일 없었다는 얼굴빛이였다.

"저......."

"잠시만요.."

그녀는 아까 그 안내원에게 손짓하며
차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일수의 맞은 편에 앉으며

"이런 곳에 관심이 없었던걸로 아는데,
웬일이세요?"

그녀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저......그 날 미안했어요.
친구 부탁으로 오신 분을 제가 예의 없이...."

"아셨음 됐어요...."

그녀는 피식 웃어 보였다.

"바쁘세요?"

"안 바쁘면요?"

"하하하......저녁 같이 하고 싶은데....."

"같이 먹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놀래시긴....제 회원이 되셔서 두 번만 만나보세요."

"이유는?"

"이유? 글쎄요...특별한 건 없지만,
병철씨의 대한 의무감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항상 무슨 일이든
책임과 의무를 다 하시나 보죠?"

"일에 대해선요...."

"음......."

당당한 그녀였다.

인연......
그건 어느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이런 때가 있었다.
밤마다 몸 안의 피가 어디론가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

한 줄기 바람에도 가슴이 샤하게 젖어 왔던 것은
바로, 사랑으로 인한 작은 열병 때문이였음을....

수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든가...
여러번의 계절이 바뀌지 않았든가....
이젠 그 아팠던 추억들로 인해
삶이란
따스해질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느낄수 있는
결국 살아가면서
유일한 가난함은 가슴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는걸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수는 해주로 통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생의 궤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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