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추적 비가 내렸다.
아버지가 일주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집안은 온통 아버지의 행방을 알기 위해
고모네,이웃집 등 뛰어 다니는 차지는
언제나 일수 몫이였다.
하지만,어머니는 달랐다.
단념이라도 한 듯 구멍가게 안에서
괜한 손놀림으로 바쁜척을 하시는 거다.
비맞은 옷을 털어내며 일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아버지 안 찾아을 거여요?"
"................"
"엄니!"
"이 섞을놈의 짜슥이.........
애비는 왜 찾어!
냅둬......뭔 지껄이 하든 난 몰러...
나중에 내 탓이라 그라믄 내는
가만 못있은께!"
독을 품은 독사 마냥 바르르 입술을 떨며
악을 쓰듯 질러 댄다.
이유없는 노여움이 아니라는걸
일수는 알수 있었다.
보름전,
교실안에서 반친구 철민이 녀석을 개패듯
때리는 바람에 어머니 마저
학교에 불러와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철민이는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일수 책상에다 발을 올려놓고,
"야........너희 아버지,
송림마을 은희누나 엄니랑 바람 났다믄서?
우짠다냐?
너, 중학교는 다 갔......."
말도 채 떨어지기 전에,
철민의 얼굴을 날리는 일수의 주먹은
아이들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
그 통에 이빨이 날라가는 사건이
어머니를 처음으로 학교로 오시게 한거였다.
아이들 입소문은 어른들 통해서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수는 아버지를 믿고 싶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다시 집으로 오실거라는
확고한 믿음 같은 것이
마음 속 저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거다.
그렇지만,
결국 아버지는 일주일째 연락이 없다.
저녁 밥상 앞,
어머니는 굳게 다물은 입을 열기 시작 하셨다.
"희수.지수.일수는 잘 듣거라.
우린 조만간 여길 정리하구,
서울로 갈건께. 그케들 알고 있거라.
솔직혀게 말하자믄...........
여기 생활은 모두 잊고,
서울에선 우리는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라란 거여.........
힘들고, 고달프겠지만서도
참아야 한다는거여.....알아 듣겄냐?"
일수가 어머니를 쳐다보며
"엄니.........아버지는요..."
"애비는............서울에 가 있으면
온다고 했은께..그케들 알고 있구.."
"거짓말!"
둘재딸 지수가 토라진 얼굴을 한채
어머니를 째려본다.
"엄마는 바보여!
왜 맨날 어버지 한테 속아!
난 다 안당께.
은희 언니 엄니랑 바람나서 도망간거 말여!
오긴 뭐가 와!"
"지수야...."
큰딸 희수는 지수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언니도 마찬가지여...
아버지가 언니만 이쁘다한께
아버지를 이해 하는거 아니여?...
누가 모르는줄 알어?
솔직히 물어보자구..아버지가 지금 하는짓
잘못된거잖혀! 말해봐! 말해보라구!"
지수의 말 하나도 틀린게 없었다.
잠시 경적이 흐르고,
일수가 일어날려는 순간,
"일수야...앉거라.
엄니 말 아적 안 끝났은께.."
"야....."
일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희수 넌........당분간 부산 외삼촌 댁에
좀 가 있어야겄다.
거기서 고등학교 마치고 취직을 혀라.
삼촌한테 엄니가 말해 ?J으니 걱정말구.
지수는 엄니랑 서울에 올라가고,
일수는 핸튼 졸업은 해야한께
고모네 집에 몇달만 지내구....
그렇게들 알고 있거라......."
어머니는 그제서야 힘없이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가셨다.
"아버지"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는 가족이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할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집에 있는 전화는 배달 요구 하는 것 외엔
아버지의 목소리는 기대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어디로 갔는지도
언제쯤 오겠다는 기약도 없이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수에게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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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졸업식.........
학교 운동장이 유달리 넙어 보였다.
그 많은 인파속에서 아버지는 없었다.
서울에서 자리잡고 일 하시느라
어머님 마저 오시지 못한 졸업식.
누나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고모네 식구들이 꽃다발과 사진만
몇 번 찍어 주고는 배 들어 오는 시간이라며
선착장으로 가버렸다.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서러움을
눌릴 만한건 입술을 깨무는 도리 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졸업식이야!'
가슴에 밀려오는 외로움을 밀어내듯
일수는 꽃다발과 앨범을 들고,
교정 뒷편의 언덕에 올라갔다.
예정대로라면 온 식구가 모여
축하 한다며 함박 웃음을 한채
사진을 찍어야 했고, 홍지반점에서 짜장면과
탕수육 두고 맛있게 먹어야 할 시간이
아니였든가........
크지도 않은 일수의 희망은
흘러가고 있는 구름마냥 사라지고 있었다.
잠시후,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보았다.
반친구 은아였다.
"일수야.....옆에 앉아도 돼?"
"그려...."
"왜 이러고 있는거여?"
"그냥....."
"너 서울 간다믄서?"
"그려...낼 아침에 첫배로...."
"일수야....그럼 우린 이젠 보기 힘들겠구먼"
"............."
"나 너한테 줄게 있는디.....'
고개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유달리 희고 뽀얀 얼굴에,
웃음이 참 예쁜 그녀였다.
구멍가게를 하는 일수는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단짝이였다.
아버지가 없는 그녀에겐, 일수가
든든한 존재였기에.........
그런 그녀가 일수에게 무언가 주기위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는거다.
그녀가 내밀어 보인건........
"이거 돌이잖여....."
"그려........나가말여.....요전에
자갈밭에서 주은거여...
넘 이뻐서,울 작은 아버지한테
반 갈라달라고 했구먼....
너랑 내 이름도 적혔당께..
자른 부분 보믄 있구먼...."
정말이였다.
'김일수' '정은아'라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
정은아 라고 적힌 돌을 그녀는
일수 손에 올려 주었다.
"간직혀.."
"..............."
"그라고.....훗날 우리 만나믄
그때 우정의 표시로 붙여보자구..
알았지라? 잃어버리면 안되는거여?"
"아.....알..았어."
"그라고........니 서울집 주소 앨범에
있더구먼....그 쪽으로 편지 할건께
잘 살어........알았어?"
그리고는, 저 멀리 뛰어 가버렸다.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손안에서 만지작 거리던 돌은
은아의 온기가 남은 듯 따뜻했다.
앞으로의 힘든 생활에서 그녀가
일수에게 수호천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알수 없었다.
학교 정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말 그대로 '청해'였다.
'꼭! 다시 오리라
귀향하는 그 날 다시 여기 올라와
이 곳에서 맘껏 소리 한번 질러 보리라'
일수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 듯
주먹을쥔채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시작 되는 또다른 세상을 향해
일수는 잃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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