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들어가기 앞서서 잠깐 한 말씀드린다면요.
게시판에 참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서, 제 글을 찾기가
쉽지도 않을 거 같네요. 수고 스럽게 찾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팬클럽에 있는 제 방에 자료실로 가셔서 읽으시는게
어떨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올리면서 거기다가도 동시에 올려 놓습니다.
긴 글이라 한 번에 다 올리기도 그렇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읽으시고 감상 안남기셔도 괜찮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그렇게 찾아 읽으시는 게 더 편하시지 않을까..기우에서 한 말
씀 드렸습니다....그럼.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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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떠나기 (2)
밤늦은 압구정동은 언제나 휘황찬란했다. 요즘은 전처럼 고급스
럽진 않아도 그래도 여전히 압구정동은 현란하고 아찔한 거리였
다. 돈 있는 오렌지들은 자라나 이 거리를 버리고 이웃동네의 고
급스런 주택을 개조한 카페나 회원제 술집들로 자리를 옮겨갔어
도, 갤러리아 백화점의 명품관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아직은 그
렇게 현란한 거리였다.
부나비처럼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 갖가지 치장을 한 연예인 지
망생들이나 이름 없는 모델들, 혹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
은 기대를 가진 아이들, 철없는 십대들, 밤이면 압구정동은 그래
서 더욱 어지러웠다.
수업을 마친 나는 태희와의 약속 때문에 밤거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주 고급스런 카페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나와도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태희와도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
하면서, 언젠가 학부모들과 같이 가서 안면을 익힌 회원제는 아
니었지만, 아무나 들어가지는 않는 그런 카페로 태희를 불러냈
다.
"안녕하세요? 여기 몇 번 오신 적 있지요?"
주인은 안면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답게 알은 체를 해 왔다.
"네, 기억 하시네요.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 들어온 커피가 있는데 한 번 드셔 보시겠어요?"
"네..고마워요. 치즈 케?葯?한 조각 곁들여 주세요."
"네, 금방 구운 게 있어요. 그럼..."
막 뽑아낸 커피를 마시며 입구 쪽을 보고 있자니 태희는 내 생각
처럼 조금 질리는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 엇비
슷한 것 같지만 어딘가 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결코 일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감
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곳, 아마 입구부터 태희
는 그런 느낌 때문에 주눅 들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서 와요. 찾느라고 수고하지 않았어요?"
"조금 헤맸어요. 왜 하필..."
"밤늦게 또 수업이 있으니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요. 앉아요."
나는 아주 바쁘다는 듯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었다.
"어머니가 또 입원 하셨다면서요?"
"네 에.."
"커피부터, 한잔 마시고 얘기해요."
"커피는 싫고 뭐 다른 거는..."
"생 과일 주스 어때요?"
메뉴판을 보던 태희의 눈이 사탕 알 만하게 커진다고 생각했다.
태희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모
른 척 물었다.
"생과일 주스로 할래요? 뭐요? 딸기?"
"아무 거나요.."
"바나나 주스가 맛있어요 이 집은.."
"알아서 시켜주세요."
나는 여유 있게 주문을 하고 태희를 마주보았다.
"언니 여기 자주 와요?"
"왜요?"
"아니, 조금 고급스럽기도 하고, 너무 비싼 거 같아서요.."
태희는 선선히 시인하면서 주변 자리의 손님들을 흘깃거렸다.
"그러지 말아요, 사람들이 불편하니까.."
"난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요. 이런 데는."
"자주 오다 보면 오히려 편안한 곳 이예요."
나는 놀리는 듯한 심정으로 그녀가 어색해 하는 것을 즐기고 있
었다.
"언니두 별로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는 거 같네요."
"또 모르죠. 나는 판검사 사모님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태희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나에게 따지러 나온 신
분이 못 되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돈이 든 봉투를 꺼내서 태희 앞에 놓았다.
"어머니 치료비예요.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이게 얼마예요?"
"입원비 전화로 물어봐서 넣었으니까, 넉넉할 거예요."
"언니, 엄마 굿해야 한 대요."
"무슨 말씀이세요? 굿이라니요?"
"엄마의 병이 아무래도 신병 갔다고, 항상 병명도 없이 여기 저
기 아프잖아요. 신경성 위염, 신경성 당뇨, 신경성,,무슨 무슨
병,,,결국 점 집에 가서 몇 군데 물어보니, 신병이 들었대요. 엄
마는 한 번 받으면 자식들에게까지 누가 된다고 한사코 저러고
계시지만, 그래서 언니, 아무래도 큰굿을 해서 귀신을 ?아야 한
다고 용하다는 만신이 그러더군요. 한 천 만원 든대요."
"뭐라구요? 천만원이요?"
"그럼요, 그런 굿이 얼마나 많이 드는 데, 천 만원이면 싼 거지
요. 다 오빠를 위하는 거 아니겠어요. 언니가 판검사 사모님이
되려면 그 정도 값은 치러야지요. 엄마가 저러고 있어서 오빠도
자꾸 떨어지고, 우리 신랑 하는 일도 막히고 ,좌우간 자식들이
되는 노릇이 없다더군요. 오빠가 말 안해요? 그 굿을 해 주면 오
빠가 붙는 다는데...엄마한테 붙은 귀신도 ?아 내고요. 어떻게
돈 마련을 할 수 없겠어요? 이런 데 드나 드는 걸 보니 언니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
"저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는 거예요? 지금?"
"언니, 판검사 사모님이 되서 이런데 계속 드나들고 싶으면 잘
처신하는 게 좋잖아요. 맨날 엄마 여기 저기 아프다고 병원 드나
들며 그 뒷치닥거리 하는 것도 하루 이틀 아니고, 그 돈도 만만
치 않을 거 잖아요. 나야 뭐 받은 것도 없는 자식이지만 오빤 달
라요. 오빠 뒷바라지 하는라고 우리도 다 할 만큼 했어요. 잘 생
각해 봐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에게 모욕을 주려 던 것이 오히려 거
꾸로 끝이 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오빠한테 할 얘길 왜 나한테 하는 거지요? 내 뒷바라지 한 건가
요? 내가 무슨 죄지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잘 이어지질 않았다.
"언니는 그럼, 오빠랑 헤어질 생각인가요? 이제 와서요?"
비웃음처럼, 그녀는 내게 그 말을 던지고 봉투를 들고 사라져 버
렸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당당한 걸까. 나는 그녀의 올케가
되어 살아갈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헤어지려고 마음
먹고 있는 터였지만, 점점 그들에게 염증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