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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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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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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이름으로


BY 로미 2000-11-01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윤수의 손을 잡고 친구의 선배가 한다는 정신과 병원에 갔다.

한 두 번 친구를 통해서 학교시절에 본 적도 있는 선배였다. 그

사이 몰라보리 만치 세련돼 지고 노련한 의사 티가 났다.물론 윤

수네 가족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윤수가 혹시 병원 문 앞에서 발

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윤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수야, 비밀로 할 수 있지?"

"네."

"선생님은 윤수가 낫기를 바래. 윤수는 마음이 아픈 거야..그래

서 치료를 해야돼."

"그럼 동자신도 안 와요?"

"아마, 그럴 꺼야. 그런데 아버지나 오빠들한테는 비밀이야?"

"네."

윤수도 아마 벗어나고 싶으리라. 그렇다면 누군가 도와 줘야만

했다. 그러나 의사는 전혀 내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몇 가지

기초적인 검사를 한다며 윤수와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만

놀이방처럼 생긴 치료실에 윤수를 놀라고 두고는 내게 다가 왔

다.

"무병, 신병이라는 건 정신분열증과는 다른 거야."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우선 무병을 앓는 사람들은 정신분열증 환자와는 달리 자신이

할 일을 잘 수행하지. 그리고 윤수네 얘기를 들어보니 가족력이

대단하더구만."

"유전이라는 말이 예요?"

"유전이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집안 식구 모두 그렇다면 가족

적 경향이 짙다고 봐야겠지."

"그건 윤수가 어릴 적부터 보고자라서 그런 거지요. 환경이요.

그렇지 않은가요? 저 애는 늘상 굿하고 점치고 그런 환경 속에

서 자랐어요. 그러니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 은연중에 생각 할 수

도 있는 거 아닌가요?"

"글세, 하지만 지금 저 아이의 상태로 봐선 정신분열증이라고 판

단하기는 어려워."

"저 아이가 그런 징조를 보일 때 봤어야 해요."

"나도 그런 거 믿지는 않았지만 대개, 만약 그런 신병을 앓는 환

자라면 결국,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될 수 밖에 없더

라고."

"그게 뭔데요?"

"거부한다면 평생 여기 저기 심각하게 아프며 사는 거고, 받아들

인다면 이 사회에서 가장 천시되는 직업을 갖는 것이고.."

"저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라 구요! 저렇게 어린데 학교도 못 가

고 이렇게 내 버려 둬야 한다는 말이 예요?"

"치료한다고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게 대부분이야. 그러니 나

도 이렇게 밖에 말 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끝까지 책임지려는

거 아니면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어째서요?"

"보호자도 아니면서 값싼 동정을 베푸는 건 오히려 좋지 않아.

언제까지나 저 아이를 책임져 줄 수 있는 건 아니잖니? 아이에

게 오히려 갈등만 안겨 줄 수 있어."

"나는 저 아이의 선생 이예요. 물론, 가정교사일 뿐이지만, 모르

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저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만 하

는 거 아닌가요? 아무도 저 아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아

야 한다는 건가요? 가족이 아니라 서요? 정말 의사 맞긴 맞는 거

예요?"

흥분한 나를 가만히 보던 그는 턱을 괸 채로 내게 물었다.

"너보다는 아마도 저 아이가 그렇게 되는 걸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정이 더 아프지 않겠어?"

"그거야..."

"섣불리 나서지 마라."

그런가, 섣불리 나서는 내가 주제넘은 것인가...

의사조차도 저렇게 무심하게 말하다니. 윤수의 손목을 잡고 병

원 문을 나서며 나는 한숨이 나왔다. 정말, 나보다는 가족이 더

마음 아프겠지 오죽하면 윤수의 어머니는 집을 나가 버렸을까.

남편과 아이들이 차례로 무당이 되어 가는 걸 지켜본다는 것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선생님.."

"응?"

"선생님, 배고파요."

"그래, 우리 뭘 좀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니?"

"햄버거요."

"그래,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가자."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윤수는 아주 평범해 보였다.

나이보다는 깊은 눈을 하고 있어도 그 맑은 두 눈에 그런 어두움

이 자리하고 있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삶의 그늘 아래 이

아이는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아이를 모른 척 하고 지

나쳐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섣불리 다가 설 수도 없는 이 답

답하고 막막한 현실이 못 견디게 싫었다.


언제나 기분 나쁜 음울함이 가득한 윤수네 집으로 들어서자, 윤

수의 아버지는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윤수 들어가 있거라. 아니, 큰 올케네 집에 심부름 좀 하고 오

너라!"

윤수는 겁먹은 듯 아무 말 없이 아버지가 내미는 보퉁이를 들고

돌아서 갔다.

"선생님 이리 좀 앉으시지요."

"네에."

그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

에 간 것을 알 리 없기에 나는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왜 아이에게 바람을 넣고 그러십니까?"

"제가 뭘요?"

"선생님 이러시면 윤수를 공부 시킬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장군 할아버지가 노하셨어요. 아무래도 내림굿을 해야 할 것 같

습니다."

"안돼요! 생각해 보세요, 윤수는 아직 일곱 살이잖아요? 아버지

시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어린아이한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

실 수가 있어요?"

"그게 저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입니다. 아시겠어요? 아비면

서 그래야 하는 게 어떤 심정인지 선생님이 뭘 아신다고 이러십

니까? 거부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집은 지금 다

풍지박살 나게 생겼다구요. 어제 윤수 큰 오래비가 사기를 당했

다구요.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 윤수가 신을 거역하기 때문 이예

요.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이제 선생까지 아이한테 바람을 넣고

있고... 그러다 윤수가 병신 되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윤수 아버님, 귀신 ?아 내러 다시시는 게 전문이시라는 소리

를 들었어요, 영수씨 한테요. 잡 귀신을 물리치러 다니신다 면

서 그럼 왜 윤수에게 붙은 신은 못 떼어 내시는 거지요?"

"주인더러 나가라고 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누가 주인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자기 몸과 정신은 자신의 것

아닌가요?"

"선생님은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자꾸 이러시면 그나마 윤

수가 맑은 정신일 때 공부하는 것조차 할아버지가 용납하지 않

을 겁니다. 그럼 우리 윤수는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윤수가 내

림굿을 하고 신당을 차려도 공부는 계속 시키고 싶은데, 선생님

이 이러시면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되고 말지요."

"...."

"그래도 아이가 일자 무식으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요새

는 무당이라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도 많으니까요. 제발 아무 말

말고 도와주세요."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윤수 아버지는 갑자기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된 것처럼 샐쭉하니 웃으며 내게 나즉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코가 석자인 건 아시죠?"

"네?"

"선생님, 물어보지 않으니 내가 이러쿵 저러쿵 할 문제는 아니지

만, 괜히 멀쩡한 사람 망치고 욕 듣지 마시고 잘 처신하시지요.

잘만 하면 판검사 사모님이 되실 텐데..."

"제가 묻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던데... 뭘 알고 계신

건가요?"

"영수가 그러던가요? 전 지금 느껴지는 대로 말씀드리는 거 뿐입

니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지 제가 그러는 게 아닙니다. 돌아

가십시오."

나는 휘청이며 그 긴 골목길을 돌아 나왔다. 머리가 무겁고 혼란

스러웠다. 나는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세상 그늘진 구석

한 곳에서 그렇게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차피 내가 그 그늘을 걷어 줄 수 없는 거라면, 비겁하

지만, 세상은 그런 거라면.. 나는 소리 없이 고개 돌려 잊어버리

고 저 양지쪽 밝음을 ?아 가야만 하는 걸까. 나는 아주 오래도

록 달동네 언덕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