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의 운명에 대하여.
사당동 전철역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윤수의 작은오
빠 영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윤수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다.
나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지 커피잔을 잡는 손이 떨려
왔다. 윤수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까, 아이를 먼저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씩 웃으며 큰
형집에 갔을 거라고 했다.
"전화나 해 보세요. 어린아인데, 이 밤에... 형님 댁이 가까운가
요?"
"걱정마세요. 그보다 윤수한테 큰 걱정은 따로 있을 겁니다. 선
생님을 참 좋아했는데..."
나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까 본 윤수는 내가 아는 그 아이가 아니었다.
"자주, 그런가요?"
"아니요. 윤수는 아직 신내림을 받은 건 아닙니다. 신이 그 애에
게 다가오고 있는 거지요. 내림굿을 해야 하는 데, 아직 너무 어
려서..."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아이한테 그게 무슨 말이 예요? 병원에라도 데려가서 치
료를 받게 해야되는 거 아니예요?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선생님, 저희 집안은 다 그래요. 큰아버지, 아버지, 형, 형수,
저와 윤수까지도요. 피할수 없는 운명같은 거지요."
"무병이라고, 그런 건가요?"
"그건 정신과에서 하는 말이구요."
"아니, 영수씨는 대학생이라면서 그런 걸 믿는 거예요? 진짜?"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어요. 선생님."
"무슨 말인지,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군요."
담배를 한 대 다 태우고 나서 그는 가볍게 한 숨 쉬며 팔뚝을 내
밀었다.
"보세요,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었지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
는 게 저희들 운명이예요. 제 몸주인은 따로 있는 거지요.
참 껍데기 같은 인생이라고, 그래서 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
지만, 결국은 저도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지요."
"영수씨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하하하, 그런가요? 저는 날라리 무당이니까요. 한 번은 정말 하
기 싫어서, 몰래 신당을 불사른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도망을
쳤지요.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오토바이 사
고로 일년을 고생했지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온 식구가 나서
서 빌고 나서야, 겨우 할아버지가 노염을 푸셨지요. 아, 제 몸주
는 장군 할아버지 시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멀쩡히 다시 살아가
고 있는 거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을 때가 된 거지요..."
"선생님한테 이해해달라고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이런
말씀 드리는 건 다 우리 불쌍한 윤수 때문이지요. 이런 삶의 방
식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시더라도, 우리 윤수를 다시 봐주셨으
면 해서요. 그애는 내심 선생님이 자기를 보러 오지 않을 까봐
걱정하면서도,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정이 그리운 아이니까
요."
"어머님은, 실례지만, 어떻게..."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 유일하게 신이 내리지 않은 평범한 주부
였지만, 결코 평범한 생이라고 할 수야 없었지요. 남편과 아이들
이 다 이렇게 되는 걸 보셔야 했으니까요. 윤수마저도요. 윤수
가 내림굿을 해야 했지만, 우리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집안
이 휩쓸리기 시작했지요. 어머니가 동네사람들과 계를 하시더니
만, 그 돈을 가지고 도망치신 거예요. 우리는 어머니가 그렇게
된 것이 윤수 때문이란 것을 알지요. 모든 식구들이 괴롭힘을 당
하고 있거든요.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서..."
그의 얘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나는 정말 어이가 없어졌다.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대학생이나
된다는 사람이, 자기 운명에 대해서, 동생에 대해서 어쩌면 저
런 해석을 할 수가 있을까... 이 첨단의 시대에.
하지만 이미 그도 그가 짊어진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 같았다. 그러므로 내가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아무
런 카드가 없었다.
"영수씨, 설마 윤수에게 어머니가 집 나간 것이 너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겠지요?"
"말은 안 했지만, 윤수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애에게는 이미
신이 다가와 있어요. 모두 각자 자기가 지니고 가는 운명의 무게
가 있고, 그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우리는 다 꼭두각시란
말이예요? 다 정해진 대로 간다면 그럼 무당은 무슨 필요가 있
는 건데요?"
"소나기를 그냥 맞느냐, 알고 우산을 쓰고 있느냐, 그 차이지
요. 그사이에 우리들이 있는 거지요."
"그럼 결국 일보예보관이란 말이군요."
"그런 셈인가요,,."
"그럼 왜 그렇게 거부하셨는데요?"
"선생님이라면, 자기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와 마음대로 하는
걸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겠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왠지 윤수를 그냥 두고 말수는 없었다.
"윤수에게 선생님이 숙제 다 해놓으랬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다시 오시는 겁니까?"
"영수씨도 뭘 보신다면서 제 마음 다 아시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이 요청해 올 때, 그제 서야 신은 우리에게 들어오지요. 그
때서야 신을 통해서 알게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오해
십니다."
"아무튼 잘 알았어요. 가서 상한 윤수 마음이나 달래주세요. 내
일 선생님이 전화한다고 했다고 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윤수를 그 구덩이에
서 구해내고 싶었다. 태진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
만, 그 어린아이를,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는 건 옳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망설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에게 전화
를 걸었다.
"엄마, 나..."
"그래,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 거지?"
"엄마, 할머니 기일이 오늘이야?"
"응? 아니 니가 왠일이니? 그걸 다 기억하고?"
"그래요. 죄송해요, 바빠서 내려가 뵙지도 못하고, 다음에는 잊
지 않고 갈께요."
"먼길을 뭐 하러? 아들도 아닌데,,,"
"엄마는 아들만 자식이야?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이뻐하셨는
데.."
"그래, 아무튼 철나는 구나. 그래 그럼, 들어가라."
나는 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가 혼란
스러웠다.
내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걸까. 혹시 잊었다고는 해
도, 내 기억 저편 어딘가에는 할머니 기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은 아닐까...나는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