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광구는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위해 낡은 스토브를 수리하고 있
었다.
어느 고급아파트쓰레기통앞에 버려져있던거였다.보기엔 멀쩡했는
데 가져와보니 작동조차 되지않았다.
미주는 신기한지 물끄러미 쳐다보며 자꾸 종알거리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댄다.
광구는 문득 마루에 걸터앉아있는 상희를 본다.
요즘들어 부쩍 핼쓱한 얼굴이 그녀를 더욱 차갑게 보이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심을 짊어진 얼굴,상희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마
치 노인네를 연상케했다.
그러다가 광구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광구와 눈이 마주친다.
피하지 않는 두시선이 허공에 실타래처럼 얽혀 풀릴줄몰랐다.
상희는 어색하고 당황했는지 어깨에 흘러내려온 쇼울을 여미며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광구는 묘한 기분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그녀를 만나고 처음으
로 길게 서로를 바라보았다.갑자기 등줄기가 쭈볏하게 뻣뻣해지
는것은 무슨 감정일까.광구는 얼른 스토브를 정리하고 미주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때도 잘웃지는 않았지만 요즘 그녀는 많이 변해가는것같았
다.
이젠 그가 미주와 장난하거나 손을 잡아도 그녀는 못본척했고 화
도 내지않았다.무슨 조화일까.변덕스런 그녀의 마음이 무엇때문
에 변한것일까?
상희는 서둘러 코트안에서 메모지한장을 꺼낸다.
재희의 핸드폰번호였다.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
자 상희는 먼저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감히 용기가 서지않는다.그런 약한 자신이 싫어 몸서리쳐
진다.재희언니....내상대도 되지않았어.그런데 왜 내가 언니에
게 목매달듯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려야만 하는가.
상희는 전화기를 들었다.
몇번의 신호음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언니....상희야...'
`상희?...어,그래....상희구나....근데 왠일이니?'
왠일?상희는 허!하고 웃고 말았다.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렸는데 왠일이라니.....통장의 빈잔고를 비참하게 쳐다보며
광구에게 이렇다 말도 못한체 계속 엄마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하나 그연구만 하고있었는데 왠일이냐구?
`연락준댔잖아.언니.잊은거야?'
`어,그래,그랬구나.미안하다.요즘 내가 좀 바뻤어.미안해.깜박했
네?호호호...'
그녀가 웃는다.왜이렇게 화가 나는 것인가...피가 갑자기 꺼꾸
로 솟는것같다.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는데 갑자기 내 모든 생사
가 그녀에게 달린거 마냥,,,,,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를 딛고 밟아서라도 엄마를 접촉해야한다.그리고 미주,내딸
미주...이젠 저렇게 살도록 내버려둘순 없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가.
나처럼 비틀리고 꼬여진 영혼이 되게 할순없다...더늦기전에 말
이다.
광구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출생신고조차 안했던건 어쩜 내스스
로 미주의 존재를 인정하고싶지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미주는 이제 크고있다.학교도 보내야하고 나와는 다
르게 살아야한다.그러기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나와 미주가 조금
만 포근히 넉넉히 살수있을정도의 돈이...
`언니,참 많이 변했구나?예전엔 내말이라면 민감해지더니...그
래,엄마는 어떠셔?'
`그만그만하셔.너는 잘지내니?'
`언니,우리좀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