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남자의 자존심.
광구는 찬장밑에 감춰놨던 소주한병을 꺼내왔다.
상희는 문턱에 걸터앉아 미주가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낯설던지 광구는 양손에 병과 잔을
든체 움찔 서있다.
`할말이 뭐에요...'
광구는 조금 떨어져 앉아 소주잔에 소주를 따른다.
`그쪽을 만나고난후로 한번도 그쪽 사정을 물은적 없어요.....'
순간 상희의 표정이 다시 예전처럼 냉정해진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나도 사람이에요.....어찌됐든 수년간을 그
쪽과 같이 지내온 사람이라구요....그쪽이 아무리 나를 사람취급
안하려고 애써도 그래도 우린 수년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냈어요'
상희는 야윈 손아귀를 세게 움켜쥔다.
금방 뭐라도 던질듯한 기세였다.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않았다.
`미주요....미주말에요....저렇게 놔둘순 없어요.'
`아저씨가...(숨을 몰아쉬며)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순간 광구는 할말이 없었지만 화는 났다.
`그럼 왜 나를 따랐왔소.왜 날 떠나지않는거요?'
상희는 광구를 빤히 쳐다보다가 히스테릭하게 헛웃음을 쏟아냈
다.
광구는 벌개지는 얼굴을 돌려버리고 소주잔을 들이켰다.
`아저씨,잘들어요.미주는 내자식에요.아저씨와는 상관없는 내자
식말에요.아저씨에게 언젠가는 진빚갚을거에요.그러니....주제넘
게 내딸에 대해 걱정하는척 말아요.'
상희가 벌떡 일어나 들어가려고 하자 광구도 순간 일어났다.
상희가 돌아보며 가증스런 눈빛으로 쏘아본다.
광구는 움찔하고 말았다.마치 지난 모든일을 알고있다는 듯이...
그녀가 기억할리가 없건만...광구는 혼자서 움츠려들고 만다.
상희는 무슨말을 할것같았지만 참기라도 하듯이 홱 고개돌려 들
어가버린다.
어린나이였지만 그답지 않은 7년전 그 독기어린 표정과 목소리
가 아니였다면 그역시 그녀를 기억조차 못했을것이다.
4년전 그녀를 가게에서 만났을때도 막연한 느낌으로 어디서 봤었
나했을뿐이다.
피해야한다면 피할운명일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역시 자신만큼이
나 편한 운명은 아닐것이였다.
그날 그명성여관의 사건으로 올가매진 우리의 두번째인연이 원치
않았어도 지금까지 이어졌으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