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그후로 5년.
조그만 여자아이가 가게문앞을 서성인다.
아직은 손이 닿지않은 문손잡이가 여간 신경이 쓰였는지 여자아
이는 씩씩대며 깡충깡충 뛰어오른다.
가게안에서 파리채를 휘두르던 기름져보이는 40대여자가 후다닥
뛰쳐나온다.
여자는 파리채를 아이에게 휘둘르며 찢어지는 음성을 토해냈다.
`아니,이노무 가시나가 또왔네.니왜또왔나.으잉?또 무~훔쳐묵을
라구 왔나?오잉?'
여자애는 당돌하게 손을 허리춤에 대고 여자를 쏘아본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다헐거진 1000원짜리 지폐한장을 꼬깃꼬깃
펼쳐보인다.
여자는 그제서야 입으 쩝쩝다시며 할말을 잃는다.
`과자 사러 왔나?'
여자꼬마는 당당하게 가게문을 들어선다.
5살짜리꼬마는 마치 감찰나온마냥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휙 돌아
서 움찔서있는 여자에게
`아줌마,소주한병주세요'
동사무소를 나오는 광구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는 그동안 끊었던 담배였건만 꽁초하나를 주워 손가락까지 타
들어갈듯이 빨아들였다.
마음먹고 일을 저지르고자 했다.
미주의 출생신고....그여자가 알면 아마 펄펄뛰며 또 발작할지모
른다.
아니,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광구는 그여자몰래라도 일을 저지르려고했다.
더이상 미주를 뿌리내리지못하는 잡초처럼 방치하고 싶지않았다.
그러나 난 4년이 지나도록 그여자의 나이,가족관계,심지어 고향
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여자에게 미주를 올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젓이 엄마
가 살아있는데 내앞으로 올릴수도 없다.
광구는 답답하다.숨넘어갈듯한 기침을 해대면서,눈물이 흘렀다.
정말 내자식처럼 내목숨처럼 정을 주었던 아이였다.
달동네 언덕길을 숨차게 오르며 광구는 지난 세월이 덧없어 서러
웠다.
경찰서에서 뒤늦게 따라나오던 핏덩이를 들쳐맨 여자는 말없이
그렇다고 고마움이나 간절함도 없는 건조한 표정으로 광구를 따
라왔다.
광구는 덕분에 마을을 떠나야했고 한칸짜리 가게와 땅을 정리해
서 절대로 다시는 밟고싶지않았던 서울땅변두리에 자리잡았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여자가 자기를 따라왔는지 믿기지않을정도
로 여자는 얼음처럼 한결같이 냉랭했다.
광구가 처음 그녀를 보았던 그 좀비같은 얼굴로말이다.
죽었다깨어도 그녀는 좋은옷 좋은음식아니면 거들떠도 안봤다.
달동네 단칸방에 그녀는 백만원훌쩍넘은 침대를 들여놓고 광구
는 부엌신세를 져야했다.
자신을 한결같이 마치 벌레처럼 보는 그녀의 눈빛만 생각해도 광
구는 오금이 저린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바라볼수있는가.
벌레같은 내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저,그리고 저 자식마저 걷어먹
이는건 난데.....
심지어 미주가 나와 눈마주치는것조차 싫어하는 여자다.
돌이 지난 어느날 미주가 말을 배워 할때쯤 광구를 보고 `아빠빠
빠'라고 하자 그어린 것을 구두주걱으로 내리치던 기억....광구
의 눈은 끊지못할 정과 증오로 범벅이 되었다.
순간 그의 얼어붙은 근육이 떨리며 웃음이 번진다.
너무도 작고 예쁜아이.
다행이 미주는 광구를 지엄마보다도 더 따르고 좋아했다.
지엄마 안볼때만말이다.
미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골목입구에서 광구를 보며 서있었다.
`미..미주....'
미주는 누구의 눈치를 보는지 하얗고 조그만 손가락을 코에 대
고 `쉬잇~'하더니 모퉁이로 자기를 유인한다.
`뭐야'
광구는 미주가 들고있는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안에 있는 소주한병을 보고 광구는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미주
를 본다.
미주는 히죽웃었다.
`엄마한텐 비밀이야'
`어디서 난거야'
`장판밑에 엄마가 숨겨둔 돈....아니,아니,훔친거 아냐.엄마가
모르고 빠뜨린거야.다른 돈 다가져갔는데 1000짜리만 빼먹고 나
갔어'
`엄마,나갔어?'
`한참 울다가 나갔어'
오늘은 또 무슨 일일까.광구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미주를 번쩍
안아들었다.
`엄마없을때 어디 우리미주 실컷 안아보자'
미주는 까르르 웃으며 위풍당당하게 광구의 목을 타고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