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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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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BY 이나래 2000-11-19

주차장에 차를 넣고 시동을 껐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문을 열고 내리려 할 때, 그가 불렀다.

"....선배!"

못 들은척하고 카운터로 향했다. 잠시 뒤에 그도 내리는 소리

가 들렸다. 어색하고 어리둥절함을 애써 감추고 카운터에서

숙박계를 적었다.

"니껀, 니가 적어."

내가 써 넣은걸 보더니, 놀란 눈으로 날 쳐다 봤다.

당당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거짓기록을 쓰고 싶진

않았다. 거기에 거짓을 적는다는건, 내가 그와의 사이를

껄끄러워 한다는 느낌을 그에게 줄 수도 있으므로.



방안은 시원한데도 내 손에선 땀이 자꾸만 베어나와서

손바닥을 계속 청바지 문질러 대고 있었다.

그도 황당한 표정으로 창 밖만 쳐다 볼 뿐, 계속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건 나였다.

"예전의 난 그랬어.

세상의 질서를 깨트리는 사람들도 싫었고,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을 마구 욕했었어.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일, 남을 의식해야하는 당당하지

못한 행동들을 한다는건,내 삶이 아니었던거야. 그랬던

내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으면서, 이율배반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도,끊임없이 나를 합리화 시키고 싶어해.

세상은 그냥 너 돌아가고 싶은데로 계속 돌아가고, 그냥

나만 빼 놓아 달라고....내 인생이 허망하게 흔들리기 시작

한지 이미 오래 전 인거,너두 알지? 그래, 니 말대로

누구 때문이구, 또 무엇 때문이구 그런거 나두 이젠 생각

안하기루 했어. 그냥 내 감정만 챙길래. 나만 생각 할래.

그렇지만, 내 순간의 감정조절 실수로 내 인생이 실패로

끝나는거 원하지 않아. 난, 잘못 태어 났기 땜에 더 반듯

게 살려고 노력했던거, 어떤 마음인지, 너두 잘 알잖아.

근데,내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이 널 만나면서 자꾸만

무너지고 있어. 참기두 싫어. 오늘 지나면 다신 너 안 만날

껀데, 이제 정말 마지막인데,내가 무엇을 참고, 뭘 지켜야

하는거지? 누굴 위해서? 나, 우습지? 나, 모순덩어리 인거

알지? 나.... 하구 싶은데로... 내 마음대로 할래."

말을 마치고, 옷을 벗으려고 할 때까지 그는 창 밖만 내다

보고 있었다.

"이리와. 와서 나 안아 봐. 우리두 결국 이렇게 되네.

그렇게 잘난척 하더니, 나두 별수 없네."

"선배! 왜 그래? 지금 나 시험하는거야? 날더러 안으래는

거야? 말래는 거야?"

"화, 내네. 그러지마.내가 맘이 바뀐거야.너 보담두 내가

더 참기 힘들어 하면서,안 그런척하는 거,이젠 싫어서 그래

오늘 하루는 온전히 니 여자루 있구 싶어."

겨우 티셔츠 하나 벗는데 왜 그렇게 떨리는지..

"아줌마라 용감하구나, 선배! 그런데 어떻하지? 그동안

선배가 참는것만 가르쳐 줘서 선배 몸조차 볼수가 없으니.

옷 다시 입을래? 내가 입혀줄까? .... 마지막 선배 모습

이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 이은주루,

내 이쁜여자 이은주. 우리 끝까지 참자.그래야 우린 영원히

사랑할 수 있잖아, 내 말이 맞지? 몸은 한번도 가질 수 없었

지만, 마음은 영원히 가져 갈꺼야."

옷을 입혀주고, 그리고 고개도 못들고 울고만 있는 내 얼굴을

들어서 내 입술을 그가 찾았다.내 눈물속에 비친 그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선배, 참 좋은 여자야. 선배 남편 찾으러 갔을 때,

선배가 과연 저 사람과 다시 살수 있을까? 내가 아는

선배 성격과 자존심으로, 다른 여자랑 살고 있는 남자를

굳이 다시 찾을까, 라구 생각 했었는데......결국.....

그렇게 해서라두 지키려 하는 선배의 결혼생활인데, 나

땜에, 내가 끼어 들어서 선배가 더 힘들었을꺼란 생각이

들어서 나 화나.그렇지만, 선배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도 따라올 수 없다는거, 알지? 그치만 가질 수 없어서

한번만 안아 볼려구 여행가자구 했던건데.....아니야.

난, 선배의 남자로는 영원히 아닌거, 지금 다시 깨달았어"





국도 변에 한무더기의 봉숭아꽃이 피여 있는 곳에 그가 차를

세웠다.

"선배! 나, 다시 태어나게 돼면, 사람으로는 싫어. 사람에

게는 욕심이 있잖아. 난--선배 몸의 일부가 되고 싶어.

선배의 손이 되어서 , 선배를 위해서 늘 뭔가를 할래. 맛있

는거 먹을 때도 손이 없으면 입만으로는 안되잖아. 손 중에

서두 왼손이 될래. 그니깐 앞으로 무거운거 들을 때나,

더러운거 만질 때, 바퀴벌레 죽일 때 그럴 때는 오른손

으로 해, 알아? 왼손엔 봉숭아 물도 들이고, 우리의 반지도

끼고, 내가 보고 싶으면 이젠 손을 봐."

라고 말을 하면서 길가에 피어 있는 봉숭아를 한웅큼 따

주었다.



가게 앞에 차를 세웠을 때, 그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나, 서울 떠나. 어디로 갈 껀지 알려고 하지마. 그리구

다시는 서울에 안 올꺼야.살아 있으면서, 같은 서울에서

선배 안보구 살 자신 없는거, 알잖아. 그리구 나, 선배

한테 듣지 못한 말 있어. 나, 정말 사랑 했던 거야?

그럼, 지금 말 해줘!"

".........용철아!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니?"

"....말 해 주기 싫구나...됐어. 선배는.. 늘 그런 사람이

니까."

그 말하는게 뭐가 어렵겠니? 난 밤새도록 하라구 해두 얼마든

지, 억만번도 더 해 줄수 있는데....그렇지만, 아무것도

그 무엇도 돼어 주지 못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니?

차 안에 켜둔 라디오에서 '리차드 막스'의

LIGHT HEAR WAITING FOR YOU 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당신이 어딜 가든지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불 밝히고 여기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

"..살면서 힘들 때, 어려울 때,하늘 어딘가에 늘 떠 있는 달

을 봐. 은주가 날 지켜 주는구나, 하면서. 넌, 내 안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어.난, 널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 그 곳

에 담아 두는거야. '



그의 차가 한 점으로 희미해질 때까지 쳐다 보고 있었다.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가 손톱이 자라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리움은, 가슴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그리움은, 안타까움과 함께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