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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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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BY 이나래 2000-11-15

하루 모자란 보름달을 오른쪽 하늘에 매달고 어둠이 짙게

차지한 고속도로를 밤새 달렸다.

내 왼손은 기아 스틱을 잡은 그의 오른손 밑에 계속 얹혀져서

놓여나질 못했다.


며칠 여행을 다녀 오겠다고 남편에게 말 하기가 쉽지 않았

지만, 여전히 그이는 아무것도 묻질 않았다.

"오래 걸리진 않아. 이틀이나, 사흘만. 허락 안 해주면 안

가구..."

"언제 당신이 내 허락 받구 다녔던 사람인가?"

"왜, 그래? 그럼 요 몇년동안 우리가 제대로 살았던 사람들

이었나? 출장을 갔던 것두 당신이구, 해외 근무두 당신이

원해서 했던 거 아니였어? 사람이 옆에 있어야 의논두 하구

그러는거지. 혼자 사는데 익숙해져서 허락 받아야 하는거

어색한건 오히려 나야."

며칠째, 아니 아마 앞으로도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하게 될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뭐 생각한는데 불러두 몰라?"

그러고 보니 손을 맞잡아 들구 내 얼굴에 들이민 것도 모르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으응? 무슨 생각 했었냐구?

"궁금해? 비밀인데."

" 나, 운전 안하구 그냥 여기 가만히 서 있을까?"

그럼, 내가 떠나 오기 전 상황을 말해서, 같이 맥 빠질까?

"너는 모를꺼야. 내가 얼마나 니 전화를 기다렸었는지를.

내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했었는지를.

내가 속으로 셀 수도 없이 니 이름을 불렀었는지를."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같이 있잖아.우리, 내일두 같이 있을

꺼구."

그럼, 그 다음날은?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대답대신 차를 갓길로 세웠다.

"은주선배! 나,선배 한번만 안게 해줘."

"싫어!"

"선배!"

"너, 남자였니? 나 몰랐었네. 너 남잔줄 았았으면 같이

여행 안 갈껀데."

그를 피해 차 밖으로 나왔다. 한참 후에 그도 따라 나왔다.

"이리와 봐.저기 달좀 봐. 디게 동그랗다, 그치? 낼이면

꽉 차겠지?"

"선배! 누가 지금 달 보겠대?"

"너 자꾸 떼 쓸래? 나 그럼 여기서 걸어서 집에 간다. 이럴

려구 여행가자 그랬어? 아니잖아. 나, 니 맘 다 아니까,

어거지 쓰지마. 이런다구 달라지는거 하나투 없어.

우린 예정대루 내일이면 끝인거야. 빨리 해돋이나 보러

가자. 해 떠오를 때 내가 줄 선물 있어. 기대하구

빨리 가자구. 이러다가 해가 중천에 있을때 도착하면

어쩌려구?"

"......또, 내가 미안하다구 해야되는거야?"

"아니,아니야. 내가 늘 미안해. 너한테 줄게 없어서 내가

늘 미안해. 너 하구 싶은 대로 못하게 해서 내가 더

많이 미안해. 담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니가 원하면

니 여자가 될께. 아니, 니가 원하지 않아두 내가 더

많이 사랑해서, 늘 니 옆에만 있을께.니가 가라구 할

때까지."

"바보! 내가 왜 선배를 가라구 해? 내가 죽을 때까지

선배를 놓아줄꺼 같애?"

"그래,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절대루 짝 잘못 찾아서

헤매구 다니면서 상처 받지 말자."


* * * * *

밤새 달려온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봤다.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밤새 우리와 함께했던 달을 생각했다.

달이 되어줄께. 지지도 않고 그 자리서, 때로는 동그래져서

눈 크게 뜨고 널 보고 있다가, 점점 작아져서 손톱만한 실눈

을 뜨고서라도 널 지켜줄께. 저 태양이 져서 깜깜 할 때....



해를 보러 모인 많은 쌍쌍들이 해오름과 동시에 곳곳에서

박수를 쳤었다.조금 후엔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번쩍임.

그리곤 연인들끼리 사랑의 약속을 하나보다. 누가 보건 말건

개의치 않고 입맞춤을 했다.

"선물 준다고 했잖아. 눈 감아봐."

그의 뺨을 양손으로 잡고,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댔다.

차갑구나. 그의 입술은 나보다 두껍구나. 서두르지마. 입술두

열어줄께. 이젠 너 하구 싶은대루 해.

내 눈물이 포개진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가

날 놓아 주었다.

".....은주 선배.....! 나.. 봐! 내 얼굴 쳐다 봐!"

그에게서 풀려나면서 고개를 무릎사이에 파묻고 우는 날,

안타깝게 불러 대고 있었다.

"내 이름 부르지마. 그리구 우리 아무 말두 하지 말자."

우리가 할 말이 뭐가 남았지? 우린 저 태양을 보면서

무엇을 다짐해야 하는거지?

"...이제, 가야지. 우리 해 보러 온거잖아. 해 다 올라

왔으니까 가야잖아."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선, 내가 운전을 했으므로 반대로

그의 왼손이 기아스틱 위에 얹혀 있었다.

그는 가늘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를 재우기 위해 갓길

에 차를 세웠다.

잠이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늘 짧은 머리는 젤을 발라 단정하구나.그런데, 두어가닥이

하얀 이마 위로 내려와 있네. 눈썹은 짙고 검구나. 어어,

코가 약간 삐딱하네. 아, 옛날에 싸우다가 맞았다고 했지.

바보, 패주지 맞고 다녔니? 약간 벌리고 자는 입술은 도톰

하구나. 여러번 나하구 키스하구 싶어 하던 그 입술에 가만히

내 입술을 대어 봤다.

그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음, 선배였구나.에이, 난 다른 여자랑 키스하는 꿈꿨는데."

"그래? 좋았겠네."

"누군지 안 물어 봐?"

"물어보면, 제대루 가르쳐 주기나 해?"

"허허. 내가 꿈이나 생시나 누구겠어?"

우린 또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눈빛이 또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여자를 안구 싶어

하는 그를 모른척 해야만 하는 내가 얼마나 야속할까?

그래. 오늘이 마지막인데...널 위해서. 아니...나두...나두

너한테 안기구 싶은걸 얼마나 많이 참았는데...우린 ... 서로

원하니깐...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멀지 않은 곳에 모텔 간판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