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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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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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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BY 이나래 2000-11-13

"뭣땜에 여태까지 여기 있어?"

"...선배, 괜찮은거지? 오는거 봐야 맘이 놓일거 같아서.

너무 늦으면 내가 거기루 가려구 했었는데.."

"니가 뭔데, 남의 가정일까지 참견하려드니?

내가 찾아봐 달라고 부탁해 놓구선,이제와서 웬 트집일까?

"....선배?...힘들어 보이네. 들어가 쉬어요."

"용철아, 우리 당분간 보지 말자. 아니, 다시는 안 만났으면

좋겠다."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내 등뒤에서 그의 힘없는

세마디가 내 가슴으로 후벼 파고 들어와 꽂혔다.

"...갈..께..요."

앞에서 말할때 보다, 뒤에서 하는 말소리가 더 잘 들린다는걸

그도 알까? 얕게 내 뱉은 작은 한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는걸 그가 알고 갔을까?



집으로 들어와서야 몇시간째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나, 억울해. 나, 억울해. 나, 억울해.

남편을 뺏긴걸까? 그런데, 그게 내 잘못인것만 같은 생각을

했던게 정말 나 일까?

난, 남편이 다시 돌아 오기를 정말로 바라는 걸까?

남편이 했던 말들이 내 자존심을 쓰레기통으로 쳐 박아

놓았다.

"당신이 이렇게 빨리 날 찾으리라곤 생각 못했지. 그런데,

신대리가 아니고 당신이 먼저 왔었드라면 상황이 또 다르겠지

당신이나, 나나... 우리가 굳이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게

이제와서 서로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 내가 이 세상에서,

나와 다른 행복한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것에 대해

때로는 미안해 한적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므로. 무엇을 뺏고, 무엇,혹은 누군가를 버린다는

것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것을...

버림을 받은 느낌에 유난히 예민한 것도 다 .......

내가 내 삶을 힘들어하구, 내가 완벽을 추구하려 했던것도

내 근본의, 늘 꼬리처럼 달라 붙어서 나를 괴롭히는

정체성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던것을....

그러니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느꼈던 행복을 버리는

것 뿐이구나. 처음부터 내 몫이 아닌걸 알면서도 욕심을

부린 댓가로 받아야하는 형벌치곤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어지질 않았다.


* * * * * *


남편이 돌아 왔다.

그이 말대로, 함께 살았던 여자가 정말로 나와는 다른

성품을 지닌 여자이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히 맨 모습을 하고서....

짐은 없었다. 그건 남편의 판단이었으리라.

내가, 남편이 걸치거나, 가져온 어떠한 물건이라도 몽땅

없애리라는걸, 내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의 판단대로 난 하나

도 남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할수만 있다면,

지난 세월의 흔적까지도 함께 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내

영역이 아니므로, 함부로 어떻게 해 볼수 조차 없었다.


남들은 이혼도 쉽게 잘들 하더구만......

참을수 있을때까지 참기로 했다.남편 말마따나 나도 마냥

큰소리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었던것도 사실이니까.

자연스럽게, 어쩌면 당연한것처럼 우리는 침실을 같이 쓰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내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는 날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건지 알수는 없지만, 남편은 다시 예전

으로 돌아 간듯이 보였다.

그런데, 난 아니었다.

난, 그날, 그렇게 돌아간 그를 잊을 수가 없었던 거다.

가끔씩 전화를 걸어 그의 짧은 네 음절의 목소리를 듣고

끊기를 여러번 하다가 들켜 버리고 말았다.

"여보세요?....선배지?... 나 알구 있었어. 그치만 나두

참구 모른척 끊었던거야. 선배네 정리 될때까지.이제 다

잘 됐지? 잘했어. 선배, 이쯤에서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야 그와 통화를 할 수가 있었던거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철철 울고 있는 나를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아랫입술을 깨물었는지 피가 흐르는데도

난 하나투 아픈줄을 몰랐다.

"거절하지 말구 들어줘. 이게 마지막 부탁인거 알지?

선배랑 정동진에 가구 싶어. 기차를 타든지, 내 차루 가든지

무막코스루 갈수 있잖아. 나 선배가 거절 안할줄 알구 여름

휴가 아직 안가구 미뤄났어. 선배 편한 날짜루 연락 해 줘.

만약 빨리 전화 없으면 나, 선배 납치해서라두 갈꺼다?"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으니, 그가 볼 수가 없지.

그래, 가. 같이 가.왜 내가 거절을 하겠니.... 우린 이별식도

못하고 헤어졌으니까. 마지막이니까. 이제 정말로 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