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300

[제21회]


BY 이나래 2000-11-03


5 월의 거리 곳곳에는 라일락 향기가 가득해, 지나가는 나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러나 내겐, 라이락 향기엔 슬픈

기억이 묻혀 있다.

중학교 3 학년, 봄의 교정에 가득한 라일락 향기가 사춘기의

나를 붙들어 놓고 얼마나 많이 울게 만들었었는지...그 때 처

음으로 내 출생의 비밀을 알았고, 때 맞춰 찾아온 사춘기에 난

무척 오랫동안 방황을 했었다. 그래서 난 늘 라일락이나 아카

시아가 피는 5월이면 향기와 함께 알싸한 아픔이 느껴지곤

한다.그래서 향기로 기억되는 추억은 더욱 더 서글퍼졌던 거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라는 싯 귀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에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보고싶으면 언제든 불러서 만날 수 있는

그런 그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행복이었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

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었고, 특히 난 행복을 느끼거나, 가져서

는 안되는 사람임을 다시 또 개닫게 해주는 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반년이 지나도록 전화만 걸어올뿐, 서울로 오질 않았

다. 그런 시간이 오래될수록 난 내게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

란 사실을 잊고 살았었다고 해야 표현이 옳다. 낮동안엔 더욱

남편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남편의 부재가 느껴지곤 했다.

전화가 올 때마다, 언제쯤 들어오느냐고 물었지만, 공장일

이 많이 바쁘다는 말 뿐, 대답을 회피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랬는데,

서울 사무실에서 전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 가게로 찾아왔

다.

"저기, 이젠 사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거 같네요.

사장님은 절대루 말씀드리지 말라구 하셨지만...사장님 지

금 여기, 서울에 계셔요. 서울 오신지 몇 달 됐어요. 근데

도대체 알수 없게 왜 그러구 혼자 계시는지...."

무슨 그런 말을, 어떻게 그런일이, 무슨 사람이 그렇게 생겼

을까...


하늘이 무너진다면 아마 오늘 내 가슴에서 났던 소리와 똑같

은 소리를 냈으리라.

땅이 꺼졌다면, 오늘 내 한숨 소리에 그랬을 것이리라.


베트남 공장은 시작한지 석달만에 공장 관리자로 있던 베트

남 현지인에게 빼앗겼다. 그 나라는 외국인 앞으로 사업자 등

록을 못하게 되어 있어서 모든 명의를 그 사람 앞으로 해 놓

았었는데,그 사람이 딴 소리를 했단다.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데도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법적으로 그 공장은 그

사람의 명의로 되어있으므로 아무 말도 못해보고, 또 말이

통한다 해도 서류상 모든걸 빼 돌리고 직원들도 출근을 시

키지 않았다.

생산량을 맞추질 못했으므로 바이어로 부터 크레임을 당하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오히려 원부자재까지 물어내야할 지경까

지 갔다고 했다.


"그럼 혹시, 돈 때문에 형사상으로 쫓기거나 그러진 않나요?"

"...그거까진 잘 모르겠는데요.사장님이 워낙 말씀을 잘 안

하시는 분이라서... 아마 그렇진 않을께예요."

"그럼 왜, 집엘 안 들어오구 피해서 숨어 있죠?"

"그게... 사모님 뵙기가 편치 않으시니깐. 면목두 없으실꺼

구."

"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딨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그럼, 계신데는 아세요?"

" 그걸... 통 가르쳐 주시질 않아서 저도 모릅니다."


나는 뭘까? 나는 남편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 되어 있을까?

나 뭔데 지금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남겨져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난 여기서

다른 남자와 행복하다고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랬었었는

데....


벌 받는 거구나. 나 천벌 받는 거구나. 벌 받으려면

내가 받아야지 왜 남편 한테 그런 기막힌 일이 생기는

거냐구. 잘못은 내가 했는데.. 가져서는 안되는거, 함께 해

서는 안되는 사람과 함께 했으므로 내가, 나한테 벼락이

떨어져야 하는데...


같이 길가다가 다리가 뚝 부러지든가, 쳐다 봐서는 안될 사

람 쳐다 봐서 눈이 멀어지든가, 잡지 말아야 할 손 잡구 다녀

서 손목이 부러지든가. 뭐든 나한테, 내게 저주를 주시지 왜

남편을 힘들게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