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벌떡 일어 나더니 그 자리에 선채로 남편 쪽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옮겨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래니깐."
"그래두... 서로, 전혀 모르는 얼굴도 아닌데, 어떻게
모른척해요."
어색하고 불편 하기는 굳이, 그와 나, 둘 만 그랬을리 없겠
건만, 남편은 우리 쪽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것처럼 손님과
차를 마신 후 먼저 카페를 나갔다
저녁까지 옆에 있으려는 그를 보내고 일찍 집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남편은 일찍 들어와 있었다.
"난, 손님하구 저녁 먹구 들어 왔으니깐 안 먹었으면 당신
혼자 먹어."
앉지도 못하구, 씻지도 못하구 씽크대 앞에 엉거주춤 서 있
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넨쪽은, 남편이었다.
" 나, 곧 다시 베트남으로 가봐야 돼. 요번엔 좀 오래 걸릴
꺼야."
서울에 머무른지 오늘이 닷새째다. 두 달 전에 베트남에
공장을 차린다고 떠났었다. 서울에서는 문닫는 공장들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 그 곳에 있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제법
규모가 큰 공장을 인수 했다고 했다.
"....언제..갈껀데? 신정 때까진 있는다고 한 거 같은데?"
"음, 그러려구 했는데.."
오늘 낮에 일 때문일까? 그런 거냐구, 물어 봐야 돼나?
"당신한테 말이 안 떨어져서 계속 미뤘던거야. 사실은 서울
올 상황이 아니였었어.근데, 내일이라두 준비 돼면 가려구."
".......낮에, 그 일 땜에....그러나 본데.."
그이가 무서운 눈초리로 한 번 쳐다 본 후, 베란다로 나갔
다.
담배를 피우고 온 남편은, 내가 소파에 앉아 있다는 걸 모르
는 사람처럼 방으로 들어가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참담해진건 오히려, 나 였다.
술이라도 마시구 들어와서 욕이라도 했더라면, 내 마음이 더
후련했을 텐데.....
발가벗기운 채 거리로 내 ?긴 기분이 들었다.
버릴 작정이구나,내가 없어도 저 이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하
는거구나. 여기가 아니어도 저 이는 갈 곳이 있는 사람이구
나.
복수는 내가 한다고 했는데.
밤 늦게 핸드폰이 울어댔지만 난, 받지 않았다.
낮에, 걱정을 하면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꼭 전화해
달라고 했었는데.....
다음날 남편은 떠났다. 출장을 간게 아니라, 나를 떠났다는
느낌을 주고,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아이들 한테만 미안하다고
하고서.....
* * * *
그 날 이후 난 계속해서 가게엘 나가지 않았다.
핸드폰도 전원을 꺼 놓았다.
내가 그를 계속해서 만난다면, 그도 언젠가는 내가 겪었던
참담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날 밤새도록 했었
다.
놓아주자.
보내자.
그가 네게 쏟아붓는건, 그도 또 나도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
건 착각일 수도 있다.
그는 상대가 굳이 내가 아니였어도 지금과 똑같은 양과 깊이
의 사랑을, 그가 선택한 누군가에게 주었을 것이다.
내가 그의 마음을 받아 들이고, 마음을 쉽게 열었던것도,
내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그가 내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
이지, 꼭 그 사람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꼬박 일주일을 그렇게 혼자 보낸 나는, 내 참을성의 한계
에 달았다.
그가 보고싶다.
그를 안 보면 미칠지도 모른다.
난, 그 없이 단 1 초도 살수가 없다고 소리치는 내속의
또 다른 날 보았다.
"네, 신용철입니다."
아, 이거 였던가. 이 목소리였었나. 나를 그토록 아프도록
그립게 만든 사람의 목소리가 이랬었나.
"....나야..."
"선배? 은주...맞아요?"
"...그래, 맞아. . 나..은주야.."
"하!...도대체....사람이...어떻게...나, 죽일꺼예요? 어
디 있는거야? 지금, 어떻게 된거냐구요?"
"..보구싶어. 나, 지금 너 못 보면 죽을 지도 몰라. 올수
있지? 올꺼지? 지금 당장?"
"네, 가요, 갈께요, 알았어요. 나, 지금 가니깐 울지마요.
울지말고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있으면 그가 온댄다, 내게로. 이제 그가 오면 난
다시는 그를 보낼 생각같은건, 절대로 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