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은 그의 두 손안에서 한참을 갇혀 있다가 풀려 났다.
"살이 빠질 때두 있구, 찔 때두 있는거지. 뭘 그렇게 놀래?
아무일 없었어. 아프지두 않았구."
...니가 너무 보구싶어서, 니가 서울 떠난 그 때부터 계속 말
랐다고...그렇게 말 할순 없었다.
"아무것두, 어떻게두 변하지 말구 그대로 있으라구 했잖아요.
이렇게 많이 말랐으면서 전화 할 때는 왜 아무 말두 않했어
요?"
"못 온다구, 아니, 안 온다구 했잖아. 그런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그랬구나. 그랬었지, 나 정말 안 오려구 했었지."
거기까지 말을 마친 그가 갑자기 한바퀴 돌고 나더니, 아주
작고 예쁜 선인장이 심어져 있는 화분을 내게 내밀었다.
'맞춰 봐요. 무슨 의미 일까요? 우리 선배 띵구라서 맞출 수
있을란가?"
"....선인장...인데, 뭘. 이게....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진짜 띵구네. 선물은 없어요. 대신 몸으로 때울께요."
"여긴 노가다 아저씬 필요 없는.....뭐야?...그럼?...너?"
"이제 감이 잡혀요? 맞아요. 나 아주 왔어요, 서울루."
"어머! 정말? 진짜야? 어떻게? 언제부터?"
"진정하구, 숨쉬구 말해요. 다 말해 줄께요. 대구 지사 없
어 졌어요.거기 있는 원단 공장들 거의 다 문 닫았잖아요.
남아 있는 공장들두 기계들 다 놀리구 있구, 직원들 많이
감원 됐는데 난 다행히 안 짤리구 서울루 배치 됐어요.
이제부터 나요, 선배가 있는 서울에 같이 있어요. 나 이제
다시는 바보 같은 짓 안 할꺼예요."
"잘했어. 잘됐다. 안 짤려서 잘 됐구, 거기다가 서울에 오
게 되서 정말 잘 됐다.너 정말 이쁘다."
"그쵸? 나 잘 한거죠? 그럼, 나...한번만 안아 줄래요?"
"....이리 와."
안아 주려고 했는데, 그가 나를 와락 안아버렸다.
"아! 정말 좋다, 선배 냄새! 이 향기가 그리워서 가끔씩
손목에 선배 향수 뿌리고 다니기두 했어요."
"너두 그랬어? 난 어쨌게,언젠가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한테
다비도프맨 향수냄새가 나길래, 그 남자 뒤를 한참 따라가
다가 정신 차리구 돌아서 와갔구 얼마나 울었다구..."
"선배, 우리 똑 같은 짓, 똑 같은 생각, 자주 하는거 알구
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
"그런건 알아두 자꾸 말 하는게 아냐. 그냥 우린. 서로 그렇
구나,하면서 느끼기만 하면 돼. 그러면 되는거야.그렇게만.
거기 까지만....."
아무때고,우리의 관계에 관한 내용의 얘기가 나오면, 막
막함에, 암담해 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 지곤 했다.
"울지마요. 선배 맘, 선배가 그으려는 선, 나두 다 알아요.
알지만, 무너 뜨리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가끔씩 받아줘요.
내가 얼마나 많이 참는지 선배는 정말 모를꺼야.그러니까
내 마음도 좀 알아줘요. 그리구, 울보 됐어요? 아, 고장
났구나. 어디 보자, 내가 고쳐 줘야지."
눈물에 젖은 내 두눈을, 탈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들여다보
는 그를, 안타깝지만,그가 뭘 원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껴지지
모른척하고 그를 떠밀고 돌아섰다.
"배 안 고파? 어디서 몇 시에 출발했던거야? 우리 뭐 할
까? 어디 갈까? 근사한데 가서 맛있는거 먹자."
내가 아무리 딴소리를 해 대도 숨만 몰아 쉴 뿐, 미동도
않고 박힌듯이 서 있기만 했다. 몇 달만에 만나서, 아직
반가움도 다 가시기 전인데......그의 등 뒤로 가서 등에
얼굴을 묻고 그를 달래 줬다.
"화, 많이 났구나. 미안해. 너는, 내가 니 맘을 다 몰라
준다구 생각하겠지만,아니야. 왜 모르겠어? 내가 너 땜에
얼마나 행복한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지... 그런데, 나
는, 이렇게 넘치는 사랑과 행복만 주는 너를 화만 나게 만
들구..... 나 나쁘지? 그치만, 나 무너지기 시작하면, 너보
다 내가 더 걷잡을 수 없을꺼야. 그동안 널 얼마나 그리워 했
는데, 보구 싶은데, 보구 싶어 미치겠는데,널 느낄 수 있는건
전화 밖에 없구, 그것두 난, 걸구 싶은거 꾹꾹 참구 니가 걸
어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너 서울 오기만 기다렸는데, 오늘
전혀 생각두 못했는데 이렇게 내 앞에 있는데, 널 화나게만
만들구.....나 어떻해? 내가 어떻하면 좋겠니? 알잖아,난
이거 밖에 , 이렇게 밖에 널 대할수 없는 입장이란걸...."
다행히도 그가 온 몇 시간째 가게에는 한 사람도 들어오질
않았었다.
서 있을 기운도 없는 난, 주저 앉아서 울어 버렸다.
"......또 내가 잘못한거군요.눈물 꼭지 고장난줄 알구 고쳐
주려다가 더 울리기만 했네. 자, 일어나요. 내가 어쩌다가
이런 울보한테 빠져버렸지. 선배! 참 대단하다! 저기 창 밖
한번 봐요. 저기 여자들 줄, 쭉 서있는거 보이죠? 뭐 기다리
줄 알아요? 나랑 키스하려구 줄 섰단 말예요,남들은 줄 서서
기다리는데, 알아서 해 준대두 울구 불구 난리야. 에이, 나
배 고파요. 아침두 못 먹었다구요, 여기 빨리 오려구. 대신
맛있는거 사줘요. 비싼걸루."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구 난 또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어!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봐. 선배가 자꾸
그러니까, 내가 더 안구 싶지. 미치겠다, 정말."
"그럼, 내가 너, 유혹하니? 니가 나 그렇게 만들었잖아.
속 ??혔다가 또 웃겼다가."
* * * * *
몇 달 떨어져 있는 동안에 그가 변한걸까? 아님, 좀더 남
성적인 욕구가 강해졌는지, 지난 여름에 내려 갈 때는 마음
으로만 사랑하겠다고 큰소리로 약속해 놓구선, 오늘 온 그는
날 자꾸 안구 싶어 했다.변하진 않았을 꺼야. 오랫만에 만나
서 반가와서 그랬을 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의 눈은 내 얼굴을 떠나지 않아서
난 먹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너 이상해진거야 알아?"
"내가 뭘요?"
이젠 느물느물대기까지 했다.
"너, 대구에서 혹시, 아저씨하구 한 방에 있었어?"
"어? 그거 어떻게 알았지? 언제 왔었나? 내 방에?"
"정말이야? 늙은 아저씨였지?"
"글쎄, 어떻게 알았냐구요?"
" 너, 이상해 졌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이상해 졌는데?"
"너, 죽는다.자꾸 느물대면. 왜 자꾸 실실 웃으면서 쳐
다보는거야? 밥을 먹을 수가 없잖아."
"아하! 남자가 쳐다보면 밥을 못 먹는다? 선배 그런 사람
이었나? 엣날에 보니깐 거래처 남자들하구는 오히려 자기
가 샐샐 웃으며 한그릇씩 잘만 먹더구만,"
"너, 대구 다시 내려가. 너 이렇게 저질스런 남잔줄 몰랐
어.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나 원 참. 내가 뭘 어쨌다구요? 하두 오랫만에 같이 밥
먹으니까 너무 좋아서 쳐다본건데, 괜히 야단이야. 글구
대구에서 혼자 있었어요. 내가 미쳤어요? 늙은 아저씨랑
같이 살게, 젊은 여자라면 또 몰라두... 이런말 했다구 또
삐질꺼지? 선배 밥 먹는 모습 오랜만에 봤잖아요. 그래요
밥 먹는 모습 귀여워서 웃엇어요. 몇달 못 본거 한꺼번에
다 보려구요.됐어요? 나 이젠 선배 쳐다 보면서 웃으면서
밥 먹어두 되지?"
"안 돼! 나 닳아 없어지면, 니가 만들어 줄래?"
"물론. 복원100% 보장. 복원후 무상수리 10 년간 보장."
알 수 있었다. 느낄 수도 있었다. 그가 날 얼마나 그리
워 했었는지를. 몇달 동안 얼마나 큰 사랑을 가슴속에 키워
서 담고 왔는지도.
내 머리카락 한올한올까지도,내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
단 한순간도 그는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순간에, 나도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날
알 수 있었다.그렇지만, 그랬지만,난 또 감추어야 했다.
* * * *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낯선 사람과 같이 들어오는
남편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우린 마주 앉았던게 아니고
나란히 앉아 있었으며, 그 때 그가 내 손에 있던 반지를 만지
작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그도 남편을 발견했다.
"저기, 선배 남편, 사장님, 맞죠?"
"알아."
".....어..떻 해요?"
"..그냥.. 앉아 있어. 넌 못 본척하구 쳐다 보지마."
".....괜..찮아요?"
"걱정마. 내가 알아서 할께."
그 앞에선 한없이 나약하고 때론 철없는 애같이 굴지만,
난, 남편 앞에선 다시 차갑고 냉정한 여자로 돌아간다. 특히
지금처럼 엄청난 일 앞에서는 더욱더 냉정해지는 날 나도 왜
그래지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