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13

"그리고,,남은 이야기"


BY 로미 2000-10-07

31. 그리고,,남은 이야기

초겨울 쓸쓸한 산 비탈길을 아이를 업은 한 새댁이 올라오고 있

었다. 걸을 때마다 아이의 머리가 이리저리 기울어지는 걸 보

니. 아기는 아마도 엄마의 등뒤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겨울 들어 더욱 쓸쓸한 이 작은 절에 올라오는 손님을 바라보며

어린 동자스님은 왠지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듯이 달려 절 마당

에 들어섰다.

"보살님! 보살님! 손님이 오세요!"

저녁 공양을 올린 쌀을 씻고 있던 젊은 공양주 보살은 잠깐 눈

을 들어 동자승을 바라보았다.

"스님, 그렇게 뛰어다니시면 노스님께 혼나실걸요..."

"헤헤헤,, 스님 지금 안 계시잖아요. 저녁 공양도 아래 마을에

서 드시고 오신다고 아까 그러셨는 걸요."

"그랬지요..."


젊은 새댁은 불전에 잠시 들렸다가 곧장 공양주보살을 찾으러 나

왔다.

"여기 계세요!"

몇 번 본 적이 있던 터라 동자스님은 새댁의 팔을 잡아끌었다.

"고맙습니다, 스님.."

"예,,"

부끄러워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 스님을 바라보며, 잠

시 연민 어린 눈빛이 되었던 새댁은 공양주 보살을 발견해내고

작게 이름을 불렀다.

"언니...."

"왔니. 뭐 하러 아이까지 업고 오니..힘들게."

"잘 지냈어요?"

"응. 잘 지내지?"

"네.."

"혜경이 할머니는, 잘 지내시고?"

"응, 신우 따라 서울로 가셨어요. 신우 졸업하고 취직했잖아요.

밥해준다고.."

"그랬구나..추운데 들어가자."

저녁 불공까지 마치고 나서 초겨울의 쓸쓸한 산사에는 적막감마

저 돌았다.

"노스님은 어디 가셨나봐?"

"아랫마을에,,곧 올라오시겠지. 스님이 마중 나가실 꺼야."

"저 스님, 참 영리해 보이던데, 부모는 뭐 하는 사람들이래?"

"그런 걸 왜 묻니?"

"올때마다 묻게되네,,.미안해 언니. 아이까지 낳고 보니 저런 어

린 스님들 보면 왠지 가슴이 아파서.."

"그래. 언제나 너는 참 마음 고운 아이지.."

"언니, 운문사로 들어간다더니..아직도 이러구 있어?"

"머리 깎을 위인도 못된다 나는..아직 멀었어."

"노스님 때문에 그래?"

"스님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그럼 언제까지 공양주 노릇이나 하다 늙을꺼야?"

"그럼 또 어떠니...괜찮아"

"언니, 다시 태어나고 싶어? 차라리 이러구 살 거라면 스님이 되

서 더 정진해. 그래서 이제 다시 태어나지 마. 성불하란 말이

야."

"아니, 다시 태어나고 싶어. 우리 나은이를 다시 만나면 정말

잘 해주고 싶어. 어머니 아버지두,,이모도,이모부도..."

"나은이는 다시 안 태어날 꺼야. 그러니까 언니도 태어나지 마."

영인은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노스님도 언니가 여기 이러구 있는 거 못 마땅해 하시던데, 언

니 설득해서 운문사로 보내야겠다고 그러시던데...."

"그런 얘긴 그만두고, 그래, 어떻게 지냈니, 신랑은 잘해주고?'

"응,,언니. 이제와 얘기지만, 솔직히. 혁진씨와 헤어진 거, 잘

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언니두 밉고, 엄마도

미웠지만, 지금 신랑, 참 잘 해줘. 이 사람 만날 려고 그랬나보

다 하고 생각하니. 신랑한테는 미안하기는 해도, 내가 더 잘해

서 두고두고 갚아줘야지..그런다.."

"인연이란 게 참, 그렇지?"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두런두런 밤이 새는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

를 나누었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깨서 울자 신애는 얼른 젖을 물

렸다. 젖을 빠는 아이를 바라보는 영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우리, 나은이도 젖을 참 잘먹어서 저 만할 때는 살이 통통했었

는데, 허벅지가 두 줄로 접혔었다니까.."

"언니이.."

신애는 눈자위가 붉어졌다.

"괜찮아 신애야, 마음껏 나은이 얘기해도 울지 않을 만큼, 이제

괜찮아."

그러나 아직도, 깊은 한 방중 바람결에 문이 흔들려도 벌떡 일어

나 앉아 -나은이니...라고 할만큼 영인은 힘들어했다. 엄마를 잃

은 동자스님이 들어 온 뒤로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하루에

천 배씩 불전에 절을 올리며 그만 다 훌훌 털고 일어나 머리를

깎으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았다. 보다 못해 노스님

은 절을 내려가라고까지 소리치신 적도 있었다.


- 아직도 저는 죄가 많은 걸요.라고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영인

은 흔들림이 없었다.


새벽 일찍 예불이 시작될 무렵

먼저 간 딸아이의 이름을 수 없이 되 뇌이며 절을 올리는 한 여

자 뒤에 소리 없이 울먹이며 한 남자가 절을 올리고 있었다. 남

자는 조금씩 흐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벌써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해마다 이 날이면 남자도 저 자리에서 울면서 절을

올리곤 했었다. 신애는 아이의 젖을 물리고 다시 재운 뒤 예불

이 올려지고 있는 법당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선 채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나

서 신애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나은아, 잘 지내지...그리고 나은아, 엄마가 앞으로 새 삶을 찾

을 수 있도록, 그래서 조금만 더 행복해 지시도록 니가 도와줄

수는 없겠니? 지금 엄마는 행복하다지만, 언니는 가슴이 아프구

나... 그럴 수 있지 나은아? 그럴 꺼지?'


아침잠이 많은 동자승은 새벽 예불에 또 늦어 노스님께 들을 꾸

중을 걱정하면서 법당으로 줄달음 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