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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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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의 의미(6)


BY 로미 2000-10-05


29. 내게 남은 삶의 의미(6)

"골목을 돌아 나오려고 후진하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

가 벗겨진 신발을 찾으려고 구부리고 있는 걸 발견 못하고,,아이

를 타고 넘었어요. 뒷바퀴로. 가해자와 합의를 하시겠어요?"

경찰인지 간호사인지 또는 선생인지...누군가가 설명해 주는 말

이 내 귓바퀴 사이로 윙윙거리기만 할 뿐 나는 아무 것도 머리

속으로 연결시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가슴위로 자동차 바퀴가 타고 넘었다는 것, 의식을 잃

은 아이는 장이 모두 파열되었다는 것, 팔과 가슴뼈도 모두 무너

지고 말았다는 것.... 그것만이 내게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

도, 살아나기만 한다면, 의식을 되찾아 엄마,,라고 한 마디만

해 준다면,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나은이를 아빠에게

보내겠다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누가 오고 갔는지, 기억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우리를 배웅하려

고 올라온 신애네 가족도, 승준과 그의 아내도 혁진까지도...모

두 다녀 간 것 같은데 다 기억 할 수조차 없었다. 다들, 괜찮을

거라고, 힘을 내라고, 그렇게 내게 말했던 것도 같고, 울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사흘 밤낮을 두 눈을 부릅뜬 채 나은이만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의 가능성이지요..오늘 밤만 잘 견뎌준다면..."

의사조차도 나흘 째 되는 날에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신에게 약

속했다. 그의 어머니를 저주 했던 것조차 너무나 잘못했다고, 아

무도, 미워하지 않겠다고,...신애와 혁진에게 지은 죄, 이모부

를 용서하지 않았던 죄. 모든 걸 다 받겠다고,,,그러니 죄 없는

어린것을 살려 달라고,,,그렇게 수천 수만 번을 빌고 또 빌었다.

나은이의 결 고운 머리칼, 통통한 뺨, 볼록하게 나온 둥근 배,복

숭아보다 더 이쁜 작은 엉덩이..웃으면 보조개가 살짝 패이는

그 예쁜 미소를,,다시 볼 수만 있다면,,,,그렇다면,,아아,,나는

정말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작정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흐느끼는 나의 등뒤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

껴졌다. 그였다.

"영인아,,뭘 좀 마시기라도 해야지.."

그는 내게 따뜻한 종이컵을 건네었다.

"언제 왔어요."

"나흘 전부터 계속 왔다 갔었어...이제 아는 척 하는 구나..."

"그랬나요...."

나는 종이컵을 탁자 위에 놓으며 힘없이 말했다.

"좀 마시지 그러니..."

"괜찮아요.."

"영인아, 나를 용서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죄인은 나니까요. 당신 어머니 말씀이

맞는지도 몰라요. 나 때문에 나은이까지...그럴지도 몰라요."

"그런 말이 어디 있니...어머니도 무척 후회하고 계신다. 한 번

와보고 싶으시다는데, 괜찮겠니?"

"그래요, 다 괜찮아요..나은이만 깨어난다면요."

"영인아, 힘내자."


그때였다. 나은이의 손이 잠시 움찔했다. 나는 섬광과도 같이

그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챘다.

"나은아, 나은아! 엄마야 엄마!"

나은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투명하고 맑은 그 눈으로 나

를 바라보았다.

"엄마,,엄마아,,,,"

"나은아, 아가야, 정신이 드니, 엄마 얼굴 보이니?"

"아빠,,보고 싶어...."

"나은아,,,,"

나는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빠 여기 있어..아빠 여기에...나은아,아빠야.."

"아저어,,씨.."

"그래,,그래..아저씨가 아빠야. 나은이 아빠야..."

"아빠,,아..엄마,,아.."

"그래, 우리 나은이 빨리 나아서 엄마 아빠랑 같이 놀이 동산도

가고, 비행기도 타고,,,그러자 응?"

대답대신 고개를 약간 끄덕이던 딸은 갑자기 가쁜 숨을 몰아 쉬

었다.

나는 튕겨지듯 뛰어 나가 간호사를 미친 듯이 불러댔다.

"깨어났어요! 아이가 깨어났어요! 좀 와보세요! 아이가 이상해

요, 애가 이상해요!"


다시 달려와 보니, 그는 나은이를 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르 미끄러지듯이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