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산사의 밤
가볍게, 아빠가 아니라고 그렇게,,,아주 가볍게 웃으며 넘겼지
만,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나시는 스님의 표정이나, 저녁 내내 방에서 꼼짝도 하
지 않고 있는 그의 침묵이 그걸 의미했다.
나는 불안했지만, 아무 말 없이 나은이와 방에 들어앉아 있었
다. 나은이는 신이 나 있었다.
흥분해서 잠도 오지 않는지 계속 조잘 조잘거리며 말을 했다.
"엄마 엄마,,"
"왜?"
"난 아저씨가 너무 좋아, 할머니도 좋고, 스님도 좋아..여기서
살면 안돼?"
"여긴 또 놀러 오면 되지. 그리고 아저씨도 서울로 가실 꺼야."
"그럼 우리랑 같이 가?"
"글세..."
"보살님, 보살님..좀 나와 보세요."
젊은 스님 한 분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저기 처사님이 끙끙 앓아요. 불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이 없어
서 들여다봤더니만, 요도 안 깔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계시지 뭐
예요. 계속 헛소리를 하시면서, 열도 높은 것 같고, 좀 가보실래
요?"
"나은아, 여기 혼자 누워 있을 수 있지?"
"나도 갈래! 아저씨 아파?"
"너까지 가서 소란스럽게 하면 아저씨 더 아플 꺼야. 나은이 잠
깐 여기서 기다려. 무서우면 할머니한테 가 있을래?"
그는 그렇게 삼일을 앓아 누워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
은 아니었지만, 잠깐씩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곤 했었다. 주지스님
이 침을 놓으시기도 하고, 약초 다린 물을 먹이기도 했다. 병원
으로 데려가려고 했었지만, 스님은 오히려 그냥 두는 게 좋겠다
고 하셨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스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기가 약해져서 그렇지요. 푹 자고 나면 나아 질 겝니다."
그렇게 삼일 밤을 그의 곁에서 지켰다. 그의 마음은 지금 어디
서 방황하고 있을까. 그의 결혼식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다시는 그를 만나러 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다시 나타난 나 때
문에 그가 힘들게 덮어두었던 과거가 이렇게 그를 괴롭히게 될
줄을 나는 정말 몰랐다.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남편을 찾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직 이라고,,,말했다.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찾아
서 꼭 돌려보내겠다고,,,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적어도 그건 내 진심이었다.
"승준씨, 제발 깨어나...그리고 잊어 줘. 제발....일어나서 당신
이 속한 세계로, 망설이지 말고 그냥 그렇게,,돌아가 줘.."
잠든 그의 곁에 앉아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눈물 방울이 그의
이마 위에 떨어졌다. 그 눈물 방울을 닦으려 수건을 대자 그는
눈을 떴다.
"승준씨? 괜찮아? 정신이 들어?"
"영인아...."
그는 아주 침착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혼자 천천히 일어나 앉
은 그는 언제 앓았냐는 듯이 아주 멀쩡해 보였다.
"괜찮은 거예요?"
"나은이가 내 아이지?"
"무슨, 무슨 소리야?"
"이제야 다 알겠어. 이제서야...내가 바보 같았어. 니가 어떤 사
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의 그 갑작스러운 변
화를 알아챘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 너무 어렸고, 어머니 때문
에 괴로웠고, 그래, 사실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그랬구
나. 그랬었구나, 너혼자,,,그랬었구나."
"아니예요,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피 한 방울이면 금방 알게될 거짓말을 언제까지 할 셈이었니?"
"아니 예요, 아니 예요..아니라 구요.."
나는 엎드려 오열했다. 아, 이게 아니었는데,,이럴 수가 없었
다. 그는 우는 나를 안아 주었다. 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고 눈
물로 얼룩진 내 상처를 위로해 주었다. 그의 품안에서 나는 서럽
게 너무나 서럽게 울고 말았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너무나
많이 울어서 더 흘릴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다고,,그렇게, 그렇
게 믿었었지만, 그치지 않는 눈물은 바다를 이루었다.
여명이 밝아 오도록,,,우리는 그렇게 부둥켜안은 채로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 주었다. 어째서 그의 곁을 떠났는지, 어떻게 살았
는지..왜 그의 결혼식에 갔었는지 조차도 내 안에 숨겨있었던 모
든 걸 그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그에게 빌
었다.
"승준씨, 제발, 나은이를 모른 척 해줘. 제발 아무도 알지 못하
게 도와 줘. 혹시 내가 죽게 된다면 그 때, 그때는 친구의 아이
인 것처럼,,그렇게 데려가 줘...제발...제발..."
안스러운 눈 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대답대신 힘껏 나를 안
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