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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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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재판


BY 로미 2000-08-09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들을 지키는 삼신이 되시기 전에

그러니까 그 옛날에는 어느 양가집 규수 셨다면서요.

어느 스님의 아이를 가지게 되서 ?겨나,어떻하다 삼신할머니

가 되셨다는 얘길 들었어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그렇다면 할머니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겠지요. 우리 엄마의 슬픔을

요.


죽음보다 더 적막하고 우울한 날들이 지나갔어요.

엄마는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발급받아 왔고요,아빠가 열심히

빌었지만 용서해 주지 않았어요.

이혼을 요구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했지요.

그렇지만,이혼 소송을 하겠다고 선언한 엄마는 보따리를 싸서

외갓집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외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엄마를

못 오게 하셨어요.

엄마가 맞았다는 사실에 놀라셨지만 그렇다고 이혼 할 수는 없

는 거라고, 애를 봐서라도 참으라고 만류하셨지요.

그래도 엄마가 고집을 피우자,이혼한다면 다 같이 죽어버리자

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엄마의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거 같

았어요.


-엄마,그럼 다 같이 죽자구. 난 이대로 살 수는 없어.

애가 밑에 깔려 있는데도 그 인간은 날 죽어라고 팼어. 난 지

웅이를 보호하기 위해 무방비로 맞아줬어. 맞으면서 그?O지.그

래 잘 됐다, 더 패라. 아주 잘 됐다.... 오히려, 지금 편안해.

누구도 날 말릴 수 없어 이젠. 결혼 할 때 엄마나 아빠가 너무

적극적으로 권해서 했지만,이젠 내 맘대로 살꺼야.

-왜 내 탓을 해.결혼은 결국 니가 선택한 거면서.

그래 좋다. 니 맘대로 해. 하지만 돌아 오겠다면 지웅이는 그

집 주고 와라. 내가 왜 남의 새끼까지 키워주냐.

그게 싫음 너 혼자 알아서 살든지. 난 애까지 데리고 돌아 오

는 건 죽어도 못 본다. 죽어라 키워봤자 결국 지 아빠 찾아 갈

껄 내가 뭣 땜에 그런 꼴을 본단 말이냐?

알아서 해!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결국 집에 남았어요.

하지만,아빠하고 같이 사는 집인데도 저 마저도 아빠 얼굴을

볼 수 없었지요.

저녁 늦게 아빠가 들어오면 엄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 발

짝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처음 몇 번은 아빠가 잘못했다고 사과

도 하시고,문 열고 대화를 하자고 하셨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

빠도 그림자처럼 들어 오셨다 아침이면 나가시곤 했어요.

전 벌써, 엄마! 아빠!하고 말 해보려고,열심히 연습도 했었지

만, 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는 날 들 이었어요.

제가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가 기뻐 할텐데도 도무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오셨어요.

이혼 하겠다면 절 데려 가겠다고 말씀 하셨어요.

-아범이 실수 한 건 잘못이지만, 너도 잘 한 건 없다.

니가 밥 한끼를 제대로 차려 줘 봤냐,와이셔츠 한 번을 다림질

해 줘봤냐. 몸조리 할때도 니 친정에서 안 해 준다기에,내 해

준댔더니 그 잘난 산후조리원인가 들어가서 돈이나 잡아먹고 몸

망치고,니가 아픈게 어째서 아범 탓이냐, 남 못 낳은 자식 너

만 나았냐? 집에서 살림 하는 여자가 걸핏하면 친정에 애 맡기

고 싸돌아 다니기나 하고.그렇다구 니가 돈 벌러 다녔냐? 애 젖

도 한 번 안 빨린 게 무슨 에미라구...

못 마땅한 게 있어도 내 꾸욱 참았다. 그래도 니네 둘이 잘 살

기 바라고. 하지만 니가 이혼을 요구한다면 너 혼자 나가거라.

나도 니 꼴 별로 보고 싶은 거 아니다.

지웅이는 너 못준다. 니가 소송이라도 하겠다고 했다며?

위자료 한 푼 받을 생각도 하지 마라.

위자료는 우리가 받아야 한다. 너 같은 며느리 있다는 말 내 들

어 보지 못 했다. 니가 반성하고 잘 하고 살겠다면 내 눈감아

주겠지만,니 맘대로 하겠다면 너 혼자 나가는 수 밖에...


엄마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과일 깎던 칼을 놓았지요.

-어머니는,딸도 있으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씀 하실수가 있으

세요? 애비가 언제 한 번 애를 제대로 안아 주기나 한 줄 아세

요?

늘 바쁘다는 핑게로 애가 어떻게 크는지 관심도 없었구,휴일에

도 하루 종일 잠만 자면서도 애를 봐 주지 않은 사람이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저한테 도대체 뭘 해주셨는데요?

제 몸이 아프다고 누웠어도 언제 오셔서 지웅이 기저귀 한 번 갈

아 주셨어요? 들여다 보시기만 했지 목욕 한 번 시켜 주셨냐고

요?

친정엄마가 해다 놓은 반찬으로 동네 할머니들까지 대접하셨지

요?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요.

지웅이 백일때도 친정엄마가 애써 만들어다 주신 걸루 식구들 잔

치 했어요.

제가 어머니 딸이었다면,그렇게 하실 수 있었겠어요?

지웅 애비나 어머니는 지웅이한테 권리 없으세요.

애를 안고 있는걸 알면서도 저랑 지웅이를 한 꺼번에 팬 사람이

라구요.만약 지웅이가 깔려서 죽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는지

아세요?

애가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까지도 잘 먹지도 않고 웃지도 않아

요.

형님이나 아가씨가 고모부들한테 그렇게 맞았다면 어머니 뭐라

고 하실껀데요? 전 지웅이 포기 못해요. 제가 기를 꺼예요. 지

웅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요.

-아주 비싼 거리 하나 생겼구나. 그래 맞은 게 그리 억울하냐?

지웅애비 그런 애 아니었다. 얼마나 니가 못 되게 굴었으면 그

?O겠냐? 좋다. 정 그렇게 고집 피우겠다면 해보자꾸나.


엄마는 괴로워 했지요.

전 그보다 더 비참했구요.

엄마가 절 키우겠다고 했을 때,그래도 엄마가 절 얼마나 사랑

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었지요.

할머니나 아빠가 절 데려가겠다고 하시는 건,글쎄요,사랑이라

기 보다는 저에 대한 집착 아닐까요.


그래서 전 고민에 빠졌어요.

아무도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지요. 제 생각은 필요 없는 건가

요?

제가 결국은 엄마나 아빠 어느 한 쪽 하고만 살아야 한다면,전

누구와 살든 이제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었어요.

엄마와 살면 더 편하겠지만,엄마는 혼자 살지 못하고 결국 재혼

을 하겠지요. 그럼,사랑하는 사람하고 할테지요. 그 사이에서

생겨난 애들하고 전 얼마나 다를까요?

아빠도 마찬가지 겠지요.

할머니는 만약 엄마가 고집을 피우겠다면,데려다 할머니 혼자

키우겠다고 말씀 하셨어요. 아빠가 재혼하기 쉽게요.

아직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재혼까지도 생각하시다니요.


그러느니...

어차피 그러느니 죽어 버리는게 낫겠다,,,그런 생각이 정말 간

절히 들었어요.


우유도 먹기 싫고 모든게 다 귀찮기만 했어요.

다시 돌아간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못 할지 모른

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지만, 전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아기

가 되긴 정말 싫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라구요?

요즘은 서로 안 맡을려고 하는 부모들도 많은 데 거기에 비하면

전 행복한 거라구요?

글쎄요,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싫어요.

고민하는라,전 손가락만 열심히 빨았죠. 절 위로해 주는 건 그

래도 손가락 밖에 없어요. 퉁퉁 부어서 손톱이 다 빠질 지경이

었지만 외로울 때는 그래도 그게 젤 위로가 되는 걸 어쩌겠어

요.


엄마가 제 손에 붕대를 친친 감아주고, 우유병을 물려 주더군

요.

우유병을 물고 건성으로 젖꼭지만 질겅질겅 씹어대며 거실에서

뒹굴고 있는데 엄마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군요.

혜린이 아줌마 겠지요.


-그래서?

혜린이 아줌마는 엄마가 맞아서 온 몸이 여기 저기 얼룩꽃이 피

었다는 데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말했어요.

-그래서라니?

-니가 자초한 일이잖아. 넌 싫은 내색을 숨기는 법이 없는 애

야.

정떨어지게 하는 구석이 있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꺼라고 생각

했다.

-같은 여자로써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니 넌?

-같은 여자니깐...이유없이 맞는 여자도 물론 있다. 폭력,그거

물론 정말 나쁜거지. 이유없이 패는 남편이랑 사는 여자들,물론

그런 사람들은 벗어나야 한다고 난 생각해. 지웅 아빠가 잘 했

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번 경우엔,그래도 난 이해가 간다는

거야.

-그래.니가 맞은 거 아니니까...

-넌 아주 기달렸다는 자세잖아.

-난 이런 모욕 참고 살 수는 없어.

-내가 지웅아빠 라면 니가 다른 데 정신 팔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마 자세히는 몰라도 지웅아빠도 니가 허깨비라는 건 알

꺼야. 그러니까 그런 일이 생겼겠지.

정신적으로 너도 지웅아빠에게 폭력을 행했다고 생각진 않니?

-오빠 얘긴 여기 끼어 들게 하지마.

-그래 그 잘난 니 오빠한테는 얘기 했니?

-안했어.

-뭐라고 그럴꺼 같니?

-말 하지마. 내가 이러구 산다면 너무 가슴아파 할꺼야.

-글쎄 그럴까?


엄마는 조롱당하고 있는 거 같았어요.왜 엄마는 그걸 모를까요.

비록 선택이 잘 못 되어서 엄마는 이렇게 되었지만,그래도 날

책임져 주려고,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 하지 못해서 저렇게 괴로

워 하는데요.

나만 아니었다면 엄마는 좀 더 빠르게 아빠랑 헤어졌겠지요.

사랑하지 않는대도 어쩔 수 없이 산다는 건 엄마에게도 아빠에게

도 결국 허무하고 참담한 세월이 되지 않을까요?

내가 엄마 아기집에 들어 섰을 때, 그 때도 엄마는 고민스러워

했지요. 절 기쁘게 반기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저를 사랑해줬

지요. 아빠와는 비록 사이가 안 좋아서 저도 힘들었지만,아빠와

는 별개로 절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전 알아요.

어떻든 외롭고 괴로워서 죽을 수도 있지만, 제가 참고 있는 건

엄마 때문이예요. 내가 없어져 버리면 엄마는 평생을 가슴 아

파 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릴 테니까요.

그러길 바라면서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

만요.

부모앞에 죽어서,천길 지옥에 떨어지는 게 두렵지만 그것 때문

에 죽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예요.

차마, 이세상에 가장 불쌍한 우리 엄마를 남겨 놓고 죽는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파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거지요.

엄마가 사랑하는 아저씨도 엄마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면 전 마

음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꺼예요.하지만 아니었어요.


-오빠.

차 오르는 슬픔 때문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에게 아

저씨는 차갑고 냉랭한 말투로 물었죠.

-나 때문에 남편이랑 힘이 드는 거니?

-아니,그런 건 아니야.

엄마는 거짓말을 하며 허둥대고 있었지요.

-그럼 됐다. 난 저번에 혜린씨 만나서 좀 놀랬다. 너나 나나 실

수로 인정하고 그리고,,,잘 살겠다고 말했었잖아. 그럼 잘 살아

야지. 내가 좀 곤란해졌잖아.

-오빠가 왜 곤란해?

내가 이혼한대도 난 오빠한테 매달릴 생각 없는 사람이야.

신경쓰지 마. 그냥 남매처럼,친 남매처럼 지내기로 했잖아. 그

럼 동생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오빠가 그렇게 밖엔 말 못해

주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안깐힘쓰며,엄마는 말했지요.

-나 결혼해. 그리고 그사람은...널 알지 못해.

이제 전화하지 말아 줬음 좋겠다. 이번에는 나두 실패하고 싶

지 않아.


할머니.

제 걱정은요,이제 제가 침대에 코를 박고 죽을까 말까,하는 그

런 게 아니고요, 우리 엄마가 죽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걸

로 바뀌었어요.

정말 우리 엄마,,,너무 불쌍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