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한 무더기의 양복들이 찾아와 그녀를 찾았다. 비교적 손님이 많은 날이라 그런지
형님이 내게 처음으로 그 양복들의 룸 서비스를 시켰다. 양복 수에 맞춘 아가씨들 사이로
그녀가 텅 빈 눈동자를 떨며 제법 큼직한 가방을 들고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오늘은 드디어 그녀의 특별한 재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들뜬 마음으로 분주하게 술상을 준비했다. 중간중간 그녀의 치마 속에 들어가 있는
시커먼 양복의 두툼한 손이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술병의 술이 반쯤 줄었을 때 한 양복이 내게 과일 안주 하나를 더 주문하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이봐, 마담. 오늘은 예술 안 하나? 멀리서 손님두 모시고 왔는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양복이 말하자 다른 양복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맞어. 오늘 이 박사장이 가까운 데서 마시자고 하는데도 아주 희한한 예술을 한번
보여준다면서 굳이 이 먼 데까지 데리고 왔다. 어디 한번 그 예술 좀 보여줘 봐라. 하하하"
양복들은 저희들끼리 킬킬거리며 눈으로 별로 유쾌해보이지 않는 의미의 웃음을
주고받았고 그 사이 그녀는 들고 왔던 가방의 손잡이를 조용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주방에서 과일접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녀의 특별한 재주일 것으로
추측되는 예술을 행여 놓칠세라 발을 동동 구르며 주방아줌마의 손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과일 안주를 들고 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심상치 않은 광경을 보고 목구멍이 아플 정도의
굵은 침이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가방에서는 붓과 먹물과 흰 종이가 나왔고
다른 아가씨들은 신이 나서 테이블 위의 술병들과 접시들을 말끔히 치우고 있었다.
윤희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이렇게 술 냄새와 정액 냄새가
섞여있는 이 어두운 밀실에서라도 남자들의 초상화를 그려 간신히 만족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러기엔 이 곳을 찾는 모든 남자들의 굶주린 욕구는 그런 것에 더욱 강한 허기를
느껴 포악해지기 마련이다.
양복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고 테이블이 말끔히 치워지자
그녀는 테이블 위에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올라가 양다리를 벌리고 섰다.
"마담. 오늘은 이 자리에 모두 중요한 손님들을 모신 거니까 다른 날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서
예술을 창작해야 된다구. 다음 주 우리 회사가 부도를 내느냐 못내느냐가 이 손님들한테
달렸어. 그러니까 우리 회사 목숨이 마담 손안에 달렸네, 그래. 하하하"
그 시커먼 양복이 이번엔 다른 아가씨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채 옆의 다른 무리의
양복들을 향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지껄였다.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윤희가 일어나 리모콘으로 오디오를 작동시키자
농염한 분위기의 섹스폰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음악에 맞춰 느리게
자기 몸을 더듬거리며 춤을 추면서 점점 자세를 낮췄다. 양복들은 꿀꺽 침을 삼켰고
내 눈은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볼 때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양다리를 벌린 채로
자세를 충분히 낮춘 그녀가 붓을 천천히 돌려가며 아까 시커먼 손이 만지작거리던 그 속
깊숙이 붓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가며 먹물이 준비된 파레트에서
물감을 묻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없는 사람이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텔레비젼에서 본 적이 있다. 아예 몸통만 남아 있는 사람이 입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손도 다리도 모두 소용없이 놓아두고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거기로
남자의 거기를 무통만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양복들이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따라
입 크기를 벌려갔다. 나는 갑자기 심한 울렁증에 거위침을 연신 삼키다가는
이내 뛰쳐나와 화장실로 갔다. 토악질을 한 후 입을 헹구는 동안 그때 윤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저 언니 꿈이 화가였댄다. 진짜 화가 했으면 끝내줬을텐데. 그지?
"놀랬니?"
다음 날 오후 홀 청소를 끝내고 잠시 앉아 담배 한 대를 피고 있는데 이제 막 잠을 깬
그녀가 나와 내 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대하고 보니
더더욱 어젯밤의 내가 본 장면이 꿈인 듯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꾸를 안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문빵 보는 게 꿈은 아니었다고 했지? 내 꿈도 확실히 사내들 좆이나 그려 한 장에
몇만 원씩 받고 파는 일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슈?"
"뭐가? 내가 그 지랄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 그건 영계들한테 손님을 뺏기기
시작한 때 부터이구....... 내가 이 바닥까지 흘러 들어온 건 열 일곱 살 때
고향 친척 아저씨한테 강간 당하구 나서부터다. 까짓거 첫 번째가 죽을 맛이지,
두 번 세 번부터는 내가 누군지도 기억이 안 나니까 맘 편해서 좋드라."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한 그녀의 표정, 방금 빨아 널은 유도복 같이 깨끗한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먼 시선 위로 내려앉는
음울한 그림자에 내 마음 한 구석이 짓눌리는 듯 했다.
"왜... 이름을 킨스키라고 지었슈?"
"고등 학교 일 학년 때인가 <테스>라는 영화가 있었어. 너는 아마 초등학교 5,6학년쯤 됐겠지?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 실제 이름이 나스타샤 킨스키야. 영화에서 나랑 쬐끔 비슷한 인생을
살았거든. 물론 그 여자는 나처럼 몸을 팔지는 않았지만 그건 영화니까......
거기다 내 진짜 이름이 김숙희다. 김수키, 김수키.....자꾸 부르다 보면 킴스키라고
발음하게 되잖아. 그러면 그 여자처럼 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말끝을 흐리며 피식 웃는 그녀의 어깨가 마치 조약돌만큼 작아 보였다. 저 작은 조약돌을
지금 안아주지 않으면 다시 강으로 바다로 떠내려 갈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최선을 다하여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날 그녀는 목욕탕에 간다며 윤희를 떼어놓고 나와 함께 목욕탕 옆의 여관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 동정을 바쳤고, 그녀도 나의 최선을 다한 동정을 구름을
끌어안 듯 푸근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