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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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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장미정 2000-09-18



=== 소용돌이 ===


천천히 속도를 내지 않은채 자전거 바퀴는
부드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만치 반포대교가 보인다.
다리 위를 진입하면서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가져온 핸드폰을 꺼내고
헤드샛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출발과 동시에.....

"여....보세요?"

"네.....바다님?"

"네..저에요."

"지금 어디에요?"

"왜 궁금해요?"

"당연하죠..허이~.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

"후후....저....죄송해서 어떡하죠?
못나갈걸 같은데....."

"네?? 에구 전....출발했는데....
이런법이 어딨습니까?"

"쿠쿡.,.."

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참....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이거 안되겠구만..."

"왜요?"

"사람 놀리면 못써요!
지금 은색 츄리닝 입었죠?"

"어머? 어떻게 알았대요?"

"히히...제가 이제 막 반포대교 진입했습니다"

"아....."

그리고, 난 뒤를 돌아 보려 애썼다.

"어이~ 뭘 그리 보겠다고.....
운전중에 뒤를 봅니까? 사고 나면 어쩔려구..."

"후후....궁금하잖아요...
원래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

"소도둑놈 같이 생겼으니...볼것도 없어요.."

"하하...."

"보니...차가 여려대인데, 제 차가 알겠습니까?"

"차종이 뭐죠?"

"안 갈켜 줄랍니다...."

"치....그럼 저 회전해서 가버릴건데?"

"이거 완전히 협박이구만...하하하...
바다님 자전거랑 같은색 소나타 보여요?"

"글쎄.......잘~~~ 아아......
저 왼쪽 끝에 보일듯 말듯 하네요."

"히히...그게 제 차입니다..
그만 돌아 보시고 가만 있어요.
제가 차선 바꾸고 옆으로 갈테니....."

"그래요. 그럼...."


잠시후, 그는 자전거 옆으로 다가와 창문을 열어보였다.
그리고, 가까이 얼굴을 내밀며

"하이?"

"후후....."

"꽤 멋있네요?"

"뭐가요?"

"츄리닝 차림으로 자전거 타는 모습이....."

"후후...빈말일지라도 듣기는 좋네요"

"빈말 아닌데.....
혜진씨! "

"네...."

"그대로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요.
그리고 길따라 쭉 가다가 보면 굴다리가 하나
보일겁니다.
그럼 거기 지나서 바로 내리세요..
알았죠?"

"네....알았어요"

그의 차는 뒤따라오는 차때문에 서행을 할 수 없어
나를 앞질러 가고 말았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한강은
비 온 후의 다음날이라 탁해 보이는 듯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저 평범한 삶에 물보라 일듯
그리 잔잔해 보이지 않는 물결에도
난 설레이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만큼 사랑 역시 각양각색이다.
사랑이라 하긴 이른긴 해도
알 수 없는 가슴을 잠시 흔들어 놓는
이 남자는 분명
"이 민석" 이였다.

본질에서 벗어난 왜곡되고 변질된
사랑이라 욕할지라도
이 순간 작은 행복 만큼이라도
내 것으로 지키고 싶었다.


내가 굴다리를 지날즘
그는 차에서 내려 시선을 내가 오는 방향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난 자전거에서 내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고마워요..."

"뭐가요?"

"이렇게 상쾌한 공기 마시게 해줘서..."

"고마워 할거면서 안온다고 왜 튕겨요..."

"후후..."

"좋긴 좋네요..새벽공기가...
차랑 자전거 여기 세워놓고 강 가까이로 갈래요?"

"그래요...."

우린 말없이 걸었다.
서먹한 분위가 잠시 맴돌더니,
그는 갑자기 나의 가슴 가까이로 손을 내민다.
난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왜요?"

"악수 하자구요?"

"하하......난 또?"

"난 또? 무슨 뜻인줄 알았기에~"

"아뇨...후후..."

난 답례로 그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귀가 멍해지고
가슴이 두근 거린다.

"반가워요...혜진씨..."

"저두요..."


우린 강가에 앉았다.
밑으로 내다보이는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물이 조금만 맑았어도....."

"글쎄 말이에요.."

"지금 춥죠?"

"네....조금"

그는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따뜻한 캔커피 였다.
그는 먼저 나에 손에 쥐어 주었다.

"어머!~"

"따뜻하죠? "

"네...그렇네요.."

"어제 동네 슈퍼 아줌마한테 특별히 부탁한겁니다.
아직 이르다고 따뜻한건 없다는데,
두 개만 준비해달라고...."

"하하.....대단하시네요.."

"뭐...이정도야...하하.."

그와 난 캔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직업이 뭐에요? 양복 입으신걸 보면.......음..."

"도둑놈 같진 않다구요? "

"요즘 도둑도 양복입고 한대요...ㅎㅎ"

"그런가? 하하...
전.....금융계통이에요.."

"증권사? 은행원?"

"하하하.....도사군...돗자리 한번 깔아보시죠?"

"하하..."

"역삼동 지점 모 은행 다녀요."

"네....그렇군요."


난 순간순간 조바심이 생겨 팔목의 시계를
수시로 보았다.

"혹...늦을까봐 걱정돼요?"

"조금은......"

"음......지금 6시 30분도 안?磯쨉?..
몇분에 출발할까요?"

"50분에요..."

"그럽시다...그럼..
차를 타고 갑시다..어차피 역삼동이 직장이니
모셔다 드리고 전 바로 출근하죠뭐..."

"너무 이르지 않아요?"

"괜찮아요...컴 앞에서 혜진씨한테
메일이나 쓰죠뭐...
그리고도 시간 남으면 고스톱 치든지..."

"후후...."


길지만은 않았던 순간을 우린 아껴가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린 차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나의 자전거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접으채, 그의 차 트링크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타세요...모셔다 드릴테니..."

"고마워요...괜히 미안해지네요..."

"미안하긴요...아침밥 해야하는 아낙을
불러낸 제가 나쁜놈인데....하하하...
근데...이런것도 괜찮네요?"

"뭐가요?"

"서로 가정이 있는 남녀가 이른 새벽에
데이트 하는거 말입니다..."

난 말없이 살며시 웃고 말았다.

"왜요? 제가 괜한 소릴 했나보네...
근데.....
윤리?
도덕? 그 따위것들 때문에?
그건 모두가 남들이 억지로 걸쳐준
누더기들일 뿐이죠.
중요한건 이성보다 지금 느끼는 좋은감정만
존재한다는것.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들 하죠.
한 가지를 가지면 또, 하나를 갖고 싶고
그러다가 끝내는 절망하고 마는.........
그런걸 전 많이 봐왔죠.
우린........
아까 차와 자전거의 거리 만큼
저만치에서 서로 지켜 봐주는것 만으로
만족하며 지내요....
난 그러고 싶어요."

"........."

"왜 말이 없어요?"

"아뇨.....동감이에요."

그는 조심스레 나의 손을 잡았다.
무언가 이상한 육감을 느끼며
번쩍하는 빛을 본듯 잠시 멈칫했다.

석고상 마냥 몸은 서서히 굳어지며
갑자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부끄러움이 몸속 깊숙이 파고 들었다.

손을 빼지 않은채,
그의 두꺼운 손 안에서
나의 손가락 몇 개만 잠시 꿈틀거릴 뿐..........

손끝 스치는 감촉 하나에도
찌릿함을 느끼는 걸 보면
난 아직도 여자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천상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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