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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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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옆 작은 집에


BY 나리 2000-07-12

며칠 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우리 돈을 떼먹은 인간

집으로 갔습니다. 300만원을 앉아서 날릴 순 없지 않습니까?

그 집은 우리 집 보다 훨씬 작은 , 판자집을 겨우 면한 집으로

역시 기차길 옆에 있지요 우리 집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거립니다 저는 그집여자를 알고 있습니다 얌전하고 내성적인

30세 조금 더 된 여자지요 일곱 살 된 딸이 하나 있구요

제가 갔을 때, 그여자는 마당에 신문지를 쫙 펴놓고 인형 눈 알

을 밖고 있더군요 우리 동네 주 부업이지요

가기 전에 해야 할 말을 준비했건만 인사말만 하고 저는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여자도 오셨냐는 한마디 말외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여

버리더군요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이 시나브로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부끄럽겠지요...

봉태씨 말에 의하면 그녀 남편은 이년에 한번 꼴로 돈을 챙겨

집을 나가는 못된 인간이었습니다

유흥업소 여자와 같이 나가서는 실컷 놀다 돈 떨어지면 온다니

선천성 밝힘증에다 후천성 자제력 결핍증에 책임감이라곤

쥐뿔도 없는 나쁜 인간 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남편을 두었다면, 그래서 남편에게 돈을 떼인

남자의 마누라가 찾아와 버티고 서 있다면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것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건 그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딴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는데 먹고 살겠다고 인형

눈알이나 밖고있는 불쌍한 여자에게 남편이 빌려간 돈을 내

놓으라고 찾아온 저도 참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운 두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뭔 말이라도 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또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의 딸이 대문을 밀고 달려 들어오더군요

깡마르고 얼굴에 때가 꼬질고질한 아이가 안면이 있다고 제게

꾸벅 이사를 했습니다 분위기를 좀 바꿔 볼 생각으로 아이 손을
잡고
<아유 너 얼굴 좀 씻어야 되갰다 아줌마가 좀 씻어주까?.>

조금 명랑을 떨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제 손을 떼어내고 엄마 얼굴앞에 손바닥을 쫙 펼쳤습니다

<엄마 오백원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체 가늘게 말했습니다

<없어>
아이는 금방 울상이 되었지요

<그럼 삼백원만, 하드 사먹게..ㅡ>
<....>

아예 대답도 안하는 그녀 대신 제가 천원을 아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이걸루 사먹어라>

<감사합니다>

아! 깡마른 아이 입에서 어찌나 밝고 큰소리가 나오든지요

그렇게 밝은 소리를 끌며 아이가 대문 밖으로 사라지자

아까보다 더한 어색한 공기가 흐르더군요

저는 그녀의 좁은 어깨를 바라보다가 옷 밖으로 삐져 나온 하얀

파스를, 붙인지 오래되어 회색 빛이 도는 하얀 파스를 보았습니다
그 파스 때문에 닫혀 있던 제 기억의 문 하나가 활짝 열리고

말았지요.

엄마가 우리 엄마가 그 문으로 뛰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