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61

[제5회]


BY 로미 2000-06-24

-남편조차도 내가 그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어했지요.

"그래.경현이,아니 혜진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어. 널 위로해 주

라고.그게 그렇게 잘 못 된 거야?"

그 여자가 뭔데? - 전 악을 쓰다시피 말을 했어요. 남편은 어이

없는 얼굴을 했지만 제가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했는지 더이상 따

지진 않더군요. 달래 듯 말했어요.

"당신이 경현이한테 그렇게 신경 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하

지만 당신이 싫다면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겠지. 하지만

여보 걘 정말 당신을 걱정해."

"필요없다구요!"

"다 내 잘못이야,당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면...좀 쉬어"

남편은 그리고 나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버렸지요.

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술 병 하나를 챙겨들고,베

란다로 나갔지요. 전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근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쭈그리고 앉아서 아

래를 내려다 봤어요. 집집마다에서 나오는 불빛이요.다른 사람

들은 나같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까...그런 생각이 들더

군요.


"소진씨,들여다 보면 나름대로 다 문제는 있는거지요. 소진씨

집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아,저런 곳에 살 수

있다니 행복하겠구나,저렇게 넓은 아파트에 살 수만 있다면 걱

정이 없겠구나,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쨋든,전 너무나 외롭고 막막했어요. 어디서 부터 무엇이 잘

못 된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진 분명했어요. 그 여잘 죽이

고 싶다는 거였어요. 문득이요, 그 여잘 없애고 싶었어요.

아마,그?O을 지도 모르죠.


"소진씨는 남을 죽일 사람은 아닙니다."


-아일,죽일 뻔 했잖아요. 그날 밤에..


"죽지 않았지요,그 아인. 아직 그 아이에겐 남은 세월이 많습니

다."


-그렇게 술을 홀짝이면서 죽이고 싶다고,그렇게 되뇌인 것 때문

에 제 아이가 그날 밤 아팠던 건가요?


"아인, 아침부터 이상이 왔었죠.소진씨가 아이에게 조금 소홀했

던 겁니다. 자세히 봤다면 알 수 있었을 꺼예요. 아이가 아픈

건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요."


-그 때문에 제가 결국 이렇게 된 건 데도요?

"전에 얘기 했던 것처럼,그 일로 소진씨가 죽은 건 아니지요.결

국 소진씨가 선택한 겁니다.그걸 빌미로."

-아니예요! 아침에 눈을 떳을 때,아무도 보이지 않았죠. 전 너

무나 놀랬어요. 리나를 찾으면서 어쩔 줄 몰랐지요. 그래도 걘

제게 있어서 사는 희망이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몰라서 남편

휴대폰에 미친듯이 전활 했어도 받질 않았죠.

친정에 전활 했더니 마침 언니가 받더군요. 리나가 밤새 고열

에 시달리다,새벽에 응급실로 갔다구요.도대체 뭣 땜에 술을 먹

고 애가 아픈데 깨어나지도 않았느냐면서 사돈 어른 얼굴 볼 수

가 없어서 엄마도 못간다고 호통칠 때도,사실은 전 수화기를 내

려놓고 듣지 않았어요.

정말 난감했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남편이 전활 걸어와서,어느 병원이라고 알려줄때,정신 없이 달

려갔죠.

달려가서 내 딸을 꼭 안고 미안하다고 말해 줄 작정이었어요.

근데,아시죠. 도착 해 보니, 어머니랑 경현이 그 여자가 리나

를 감싸고 앉아 있었죠.

리나야--하고 달려가려는데,어머니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더군

요. 분노를 참는 듯한 음성으로,제게 이러셨죠.

"괜찮다,죽진 않았어. 애 자니까 조용히 해라. 수선 피우지 말

고."

절 쳐다 보지도 않으셨지요.

물 수건을 리나 머리에 갈아 붙이고 있던 경현이 그 여잔,제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지요.

"어제,두 시 쯤이던가,리나 아빠가 미친 사람처럼 문을 두드리

더군요. 리나 엄마 약 먹고 잠들었는데,리나가 열이 너무 나는

거 같고 경길 한다고요. 제가 가서 해열제 먹이고 급한대로 손

도 따고 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심각해서,응급실로 온 거예

요. 일요일 이기도 하니까 어디 문여는 데가 없기도 하고요.

열성경련 이었다니까,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그럼 전 애

들 땜에 가 봐야 겠네요,리나 엄마도 왔으니까요. 애들이 절 찾

는데요...엄말 못 떨어지거든요...후후...리나엄마,너무 놀랬

죠. 몸은 참 괜찮아요?"

-네

전 쓰게 대답했죠. 참담하더군요.

"경현아,고맙다.수고했고,니 엄마한테도 안부 전해주렴,,어서

가봐라."

사람 목소리가 그렇게도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거구나,전 그

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경현이란 여자,정말 안 끼어드는 데가 없구나,그런 생각도 들더

군요. 남편은 하필이면 거기로 뛰어 갔을 까요. 아랫집 윤진이

네도 가깝게 지내고,거기가 더 가까운데요...


"그건 트집에 가까운 거 아시지요?"


-모르겠어요. 아무튼 전 마지막 지점에 몰렸다고 느꼈어요. 어

머니는 눈길도 주시지 않고,전 막대기처럼 그렇게 서 있었지요.

제 딸이 아파서 누워 있는데도요. 만지러 갈 수가 없었어요.바

로 앞에다 두고도요. 경현이 그 여자가 가 버리고 나서도 아무

말씀도 없이 계속 리나만 바라다 보고 계신 어머니 때문에 전 숨

이 막힐 것 같았어요. 리나가 어렴풋이 깨어나는 거 같아서 가

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제게 차갑게 말씀하셨죠.

"몸이 안 좋아서 약까지 먹고 잠이 든 걸 보면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구나. 자식 새끼가 앓는 것도 모를 정도니까. 집에 가서

쉬거라.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어머니,제가 있을 께요"

전 쥐어 짜듯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됐다!"

정말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언제는 딸이라고 우리 리나

를 한 번 안아주시지도 않던 분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소진씨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나요? 지금 나한테 처럼 말

하지 그?O어요?"


글쎄요,결국 이럴 줄 알았다면 그럴껄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하지만 전 말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전 아일 그렇게 내버려 두

었으니까요. 결국 남편이 들어 오고 나서야, 어머니는 가셨지

요. 리나 머리에 물수건을 문지르면서,전 에미로서도 자격이 없

구나 하는 생각에 한 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그건 자살을 생각하며 소진씨가 자기 합리화를 한 거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까?"


-뭐라고 해도 좋아요. 어머니한테 감히 한 마디도 할 수 없이

가슴 앓이를 했다는 것도 인정해요. 하지만 어머니 땜에 그렇

게 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만 없었다면 그 일이 왜

일어났겟어요. 전 용서 못해요.


"시간이 다 되어가는 군요. 아이한테 한 번 다녀오지 않겠습니

까. 내일이 지나면 가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여기서 한 번 볼 수 없나요.


"보세요."


리나는 할머니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울다가 잠이 들었는지.손

가락을 입에 문채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앞으로 저 애는 크면서,엄마같이 살 진 않을 껍니다. 할 말은

다 하고 살게 되겠지요. 하지만 엄마가 왜 죽었는지 이해 못할

껍니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면서,힘들어 하겠지요. 다행

히 새 엄마는 잘 만나게 되는군요."

-그렇게 되길 바래요.

"거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더 할 말은 없습니까?"

-절 그냥 떠돌게 내 버려 둬 주세요.

"그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합니다.소진씨는...아무것도 득 될께

없으니까요. 차라리 내일이 되기전에 제가 경현씨 꿈에 한 번

보내 드리지요. 원한다면 남편에게도. 그리고 다시 결정하지요"

-그래도 전 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 여자한테요.


"그럼 나가서 매니저랑 상의해서 다녀 오십시요"


밖에 나오니 매니저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참 이상하군.그냥 내버려 두시면 될껄.아마 요새 아줌마같은

귀신들이 많아져서,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가 보지."

"나 같은 사람이요?"

"그래,아줌마,어떻게 된게 요새는 죽어서도 말 들을 잘 안듣는

단 말이야. 미치겠어. 아줌마까지 떠돌면 난 정말 실적이 안 나

오는데. 도대체 왜 나한테는 이런 사람만 보내지, 곱게 늙어 죽

은 착한 할머니나 할아버진 좀 없나..."

"날 그 여자 꿈으로 보내줘요"

"쉽진 않지만 해 봅시다."


다시 살 던 아파트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베란다 창가에 쓸쓸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