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711

[제4회]


BY 로미 2000-06-23

- 어머닌 제게 차를 가져와라,과일을 깎아 와라 하시며,그 여잘

무슨 중요한 손님접대 하듯 하시더군요. 리나를 쳐다 보지도 않

으셨어요.평소에 딸이라 서운해 하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손녀

가 그 여자 보다 못한 가요.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마땅히 들여

다 보셨어야지요.그렇지만 아무 말 없이 시키는 대로 챙겨서 탁

자위에 놓았죠. 혹시 찻잔을 든 손이 떨릴까봐 조심하면서요.

한 쪽 옆에 끼여 들 듯 앉자,경현이 그 여자가 어머님의 손을 잡

으면서 이러는 거예요.

"어머니,리나 엄마 참 좋은 사람이죠. 병섭이가 보는 눈은 있어

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는 옛말이 왜 생긴

건지 정말 알겠더군요.

"응,리나 어멈 살림 잘하고,병섭이나 리나 잘 거두고 잘 하지."

어머님은 말꼬리를 흐리며 그러시더군요. 항상 제가 말수가 적다

고 불만이셨지요. 그 얘길 듣는 순간 자존심이 확 상했지만,어

이 없게도 갑자기 비굴해 지고 싶더군요. 화가 나는 건 나중일이

고,어쩐지 어머님한테 내가 더 인정받고 싶다는,어떻게서든 만회

하고 싶은 비굴함이요.다시 생각하니 너무 비참하지만 그 땐 절

박한 그런 심정이었어요.


"어머니,제가 말수가 적어서 답답하시지요?"

어이 없게도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어머님은 그런 절 알 수 없는 얼굴로 잠깐 쳐다보시더니.

"난 원래 경현이를 며느리 감으로 생각했었다. 근데 병섭이나 경

현이 얘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나 뭐라나,서로 다른 길

을 간거지,인연이 아닌 걸 어쩔 수 없었지."

전 당황했죠. 경현이 그 여자도 당황하는 것 같았어요. 어머님

만 아무렇지도 않은 채 과일을 집으시더군요.

아무리 노인네라도,며느리 앞에서 그러실 수가 있는 건가요? 절

그렇게 비참하게 할 수 있냐고요?


"노인네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 한가요? 상처 받은 건 알아요. 하

지만 그건 경현이란 여자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죠."


-그 여자가 거기 있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죠!


"그건 아닙니다. 당신 시어머니는 단지 꼬투리를 잡았을 뿐이었

지요.만약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일로 당신을 괴롭게 했을

겁니다. 당신이 아니고 경현씨가 며느리였대도 아마 그러했을

사람입니다. 자기 아들에 대한 애착이 커서요.

지금,당신이 죽은 후에,좀 놀라고 괴로워 하고 있죠. 아마 조금

은 반성도 할 겁니다. 그건 이 문제와 사실 다른 차원에서 나중

에 얘기되어야 하고,할머니가 여기 오신 후에 제가 판단할 문제

이지요"


-아니요, 그 여자도 책임이 있어요. 지가 뭐라고 수습한답시고

한 말이 뭐였는지 아세요?

"아이~ 어머니 리나 엄마 잘 봐주세요.그리고,제가 며느리가 안

된게 정말 다행이예요. 아니면 저렇게 살림 잘하고 착한 며느리

어디서 얻으시겠어요? 어머니두 참..."

이렇게 호들갑을 떨다가 지네 집으로 가 버렸죠.

제 기분이요?

수습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도 더 계시기 그?O는지 볼일이 있다면서 결국 리나도 들여

다 보지 않고 가셨어요.


아파트 앞까지 건성으로 배웅해드리고 돌아서는 데 그여자가 절

부르더군요. 정말 더 마주치고 싶지않았어요. 근데도 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게 다가와 그러는거예요.

"아유~ 가셨어요?어머닌?"

"......"

"원래가 그런 분이에요.비위를 잘 맞추기 힘든 분이지요.리나 엄

마 피곤하겠어요. 난 병섭씨 엄마 사실은 싫어 했어요."

"어쩌겠어요,리나 엄마가 이해해야지~"

밉살맞은 차원을 벗어나서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요.누구땜

에 벌어진 일인데요. 손이 덜덜 떨리는데도 입은 안 떨어지더군

요.

그런 절 바라보더니만 제가 아무 말 없으니까 어머님 때문에 충

격받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안스러운듯 바라보더군요.

정말 가증스러웠죠. 머뭇거리다 돌아서서 들어가는 그 여자 뒤

로 아파트 앞 화단이 보였어요. 해바라기가 피어있더군요.

해바라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제가 한 생각이 뭐였는지 아세

요? 그걸 꺽어다 그 안에 박힌 씨가 다 떨어질 때까지 패주고 싶

단 생각이었어요.

남편이 돌아올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죠.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남편이 돌아오면 솔직히 털어놓고 얘길 해야겠다...그

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왜 제가 그렇게 까지 되어야 했는

지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어요. 왜 내 인생에 예고 없

이 끼여들어 날 괴롭히는 걸까, 아무런 감정도 없었구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하고요.


"그건 소진씨 당신이 가진 문제지요. 당신은 언제나 지나치게 소

심하고,예민하지요. 가볍게 생각하고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문

제도 언제나 심각하게 만드는,,,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

각들지 않나요?"

-아니요. 그 여자를 만나기 전에 전 누구를 증오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었어요. 그 때가 첨 이었어요.


"아니지요.소진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

잖아요."

-아니예요,엄마는 절 언니보다 더 이뻐해주셨다고 생각해요. 항

상 언니보다 제가 더 좋고 비싼걸 가졌었어요. 언니는 알아서 챙

기지만 전 그렇지 못하다고 엄마는 절 늘 챙겨 주셨지요.


"아니지요 소진씨.언니한테 가진 열등감 때문에 소진씨는 오히

려 항상 자신을 팽겨쳐 두는 것 처럼 행동했었지요. 엄마가 챙겨

주지 않으면 모든 걸 다 포기했었지요. 알면서도. 소진씨 어머니

는 그런 딸을 힘들어 하면서도 챙겨주었고,소진씨도 어머니가 지

겨워 하면서도 챙겨준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하지만 그게 어머니

께 사랑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소진씨는 스스로 믿고 싶었던 거예

요. 그러나 별 문제는 없는 듯 했죠. 어머니가 그래도 애쓰셨으

니까요. 문제는 소진씨가 결혼 후언니가 잘 나가는 여성으로 성

공하고,소진씨 자신은 주부로 주저 않아 있는 것 같은 열등감을

안고 있었단 거죠. 그래도 가진것에 만족하려고 애는 썼었지만,

그것조차 방해하려고 드는 경현씨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뿐

이예요."


-제가 미쳤다는 거군요,한 마디로


"히스테리라고 하죠...소진씨의 히스테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게 아닙니다. 관심도 없던것 같던 엄마가 어느 날 소진씨가 깜

박 잊어 버리고 온 준비물을 챙겨다 주셨을 적 부터 시작 된거지

요. 소진씬 그 때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게 이거구나 하고 알

아챈거지요. 남편 역시 소진씨의 히스테리를 어느 정도 받아주었

죠. 하지만 경현씨 문제는 달랐던 거예요. 차라리 머리채를 쥐

고 흔들 수 있는 불륜도 아니었구 떼어내 버릴 명분도 없었던 거

예요. 그러기엔 자존심도 상하고.하지만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었

던게 자신을 던진게 되어버렸죠.


-그러니까 아무튼 그 여자 책임도 있다는 거에요.

무슨 말씀을 하시던 다 좋아요. 전 어차피 죽었구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죽기 전에 몰랐던 걸 이제 알았다구 해서 달

라질 게 뭐가 있냐구요. 맞아요, 맞는 말씀도 있어요. 하지만 어

쨌든 전 그 여잘 용서할 수 없어요.

그 날 저녁에 남편이 어쩐 일인지 꽂을 사왔더군요. 그리고 웬일

인지 절 안스럽게 바라보더라구요. 그 때 까지 전 몰랐어요. 그

런데 남편이 절 가만히 안아주면서 제 귀에 대고 그러더군요. 어

머니 땜에 힘들지.... 전 번개처럼 알아버렸죠. 그 여자 경현이

가 남편한테 전활 했다는 걸요. 주제 넘게 내 남편에게 시어머니

땜에 내가 상처 받았으니 위로해 주라고 했다는 걸요.그렇게 자

상한 척 날 위하는 척 하면서 내 신경을 갉아 먹고,날 죽이게 한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