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38

일요일


BY 사라 2000-06-29


밥상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말이 없었다.

밤사이 다같이 실어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

제 앞에 놓인 밥그릇에만 시선을 내리깔고

포한이 진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밥알을 입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아침부터 무슨 입맛이 있다고...엄마두 차암.

깨작깨작 젓가락질을 하던 동생이 괜한 핀잔을 주며 분위기를 쇄신하려고 시도했지만

메아리도 없이 묻혀버리는 삭막한 아침이었다.

예수와 열두제자의 최후의 만찬도 이보다 무겁고 엄숙하진 못했으리라.

동생의 타박처럼 밥상은 한마디로 진수성찬 이었다.

딸아이가 온 날부터 한끼도 거르지 않고 이렇듯 잔칫상을 차렸던 나의 늙은 엄마.

그건 손녀에 대한 할미의 성심이었다.

어쩌면 당신 살아 생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들을 치성을 드리는 심정으로 보내셨을 엄마.

혼자된 딸과 그 딸의 딸을 지켜봐야 함은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갑자기 목이 컥컥 막혀 왔다.

체할까 등 토닥거려주고 얹힐까 냉수 디밀어주는...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남편과 갈라서고 빈손으로 돌아온 내게 잘했다..한마디로 내 인생에 무게를 실어주셨던 분.

위로 조차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현실에서 침묵의 조력자로 단단한 중심추 하나 매달아주셨던 분.

궁상맞은 나날에 내가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성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엄마가 나를 우울하게 하고 있었다.

의연한 척 할수록 상대적으로 튕겨오는 늙은 엄마의 아픔이 내 가슴에 저리도록 베어오고,

나 훗날 늙어 내 딸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남고 싶던 엄마의 자화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의 괴리감 사이에서 내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이래저래 잔인한 아침이었다.



예배를 보듯 경건했던 아침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경적을 울리며 남편의 차가 도착했다.

딸아이는 애써 밝은 척 웃으며 편지 할께요...그 한마디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했다.

외할머니의 질그릇 같은 품을 거쳐,

제 수족 같던 이모와 이모부의 품을 거쳐 내게로 온 딸아이는

씨익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되려 나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꼬옥 끌어안은 채,

누가 떼어내기라도 하는 듯 힘주어 안은 채 오래오래 서로를 각인시켰다.

그렇게 딸아이는 떠나갔다.

7일간의 사랑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참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딸아이를 싣고 도둑처럼 달아나는 승용차가 사라지도록

한참을 그자리에 서서 미련스럽게 시선을 더듬고 있는 사람들.

슬픔은 언제나 남은 자의 몫이었다.

그순간, 울음을 터뜨린 건 뜻밖에도 동생이었다.

이젠 누구를 위해 예쁜 옷이며 머리핀을 골라야 하느냐고...

그 자질구레하고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고...

그토록 씩씩하던 동생이 한많은 맏상주처럼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간밤, 어쩌면 내 평생 흘릴 눈물을 한꺼번에 흘렸던 나는

슬픔에 관한 한 인이 박힌 사람처럼 두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늙은 엄마는 두주먹 불끈 쥔 투사처럼 이를 악다물고 속울음을 삼키셨다.

다같이 누추해지지 않으려고 엄마는 끝까지 강건함을 택하셨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현은 핀잔이 잔뜩 담긴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쉬고 싶으면 더 쉬라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라고

따뜻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던 그였다.

---커피나 한잔 타줘요.

보세요, 나 이렇게 씩씩해요....아무렇지 않아요....정말 괜찮다니까요....

정작 하고 싶던 말들은 입안에서 머물고 나는 그에게 생뚱 맞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발랄해지고 싶은 휴일이었다.

나혼자 울적하기엔 억울한, 참으로 화창한 일요일 정오였다.

---이거야 원, 누가 사장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알 수가 없네....

장난스럽게 퉁박을 놓으면서도 정현의 손은 어느새 커피포트에 가있었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나는 어수선한 테이블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오늘은 구석구석 대청소를 해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다.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정현과 나는

마치 7년만에 재회하는 옛연인들처럼,

맞선 나온 선남선녀들 처럼 갑자기 머쓱해졌다가

그런 풍경이 제풀에 우스워져서는 동시에 피시식 웃어버렸다.

---정현씨...딱 10년 뒤에 이 가게 저한테 넘기세요. 그전에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구요.

뜬금없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정현을 보며 나는 차마 뒷말을 잇지는 못했다.

딸아이와 약속 했거든요. 이자리에 지켜 서있겠다고....

언제고 이땅에 돌아와야 할 때 변함없는 자리에서 널 맞아줄 단 한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그러니까 주저없이 달려오라고...그렇게 우리 서로 약속 했거든요.

그러나, 그말을 내뱉는 순간 우울해질 내가 싫었고

그 잿빛에 본의 아니게 물들어야 할 그의 우울이 싫었다.

---뭘 그렇게 오래 걸려요! 안방 차지하면 내일이라도 이거다 영선씨껀데...

호탕하게 웃으며 별 시답쟎은 걱정을 다하고 있다는 말투로 정현이 화답했다.

그는 늘 이렇게 우회적으로 자기 속내를 내비쳤다.

야금야금 감질나게, 언뜻언뜻 속살 비치듯 변죽만 울리는 시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를 기다리는 그의 진득함임을 또한 알고 있다.

백팔번뇌를 잠재우고 평범하고 건강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 돌아와 온전히 사랑을 받아들일 그때까지 말이다.

그때 마침 손님이 한명 들어오자 나를 손으로 제지하며 정현이 재빨리 일어섰다.

오늘 하루 만큼은 충분히 위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만심으로 나는 그냥 눌러앉아 커피향을 음미했다.

통유리 밖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그 반복되는 현장에서 같은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는 게 새삼스레 놀라웠다.

그래, 저 무수한 인파 속의 점 하나처럼 나 그렇게 잊혀진들 어찌하랴.

그냥 그렇게 이름없이 홀로 늙어간들 또 어떠하랴.

서로 다른 옷입고 태연할 수 있는 관록이 붙을 쯔음이면

인생의 고비 고비도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아련해지는 현실감을 상기시키듯 정현의 음성이 내 귀로 잔잔히 박혀 왔다.

2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자손님을 붙잡고 그는 또 열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칭 음악의 메신저인 그는 한장의 음반을 파는 것보다 음악 그 자체를 더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장의 음반이 내는 순이익을 따지고 있을 때에도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의지로 좋은 음악을 나누려는 선의를 잊지 않았다.

---연주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아트락을 한번 감상해보세요.

카멜이나 뉴트롤스, 핑크 플로이드 처럼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밴드들의 것부터 듣기 시작해보면

아트락에 금방 심취하게 되실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즈를 좀 배우고 싶어요.

아직까진 자마로꽈이 같은 애시드 재즈나 듣기 좋은 퓨전재즈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지만...

---아,그러세요. 재즈를 이해하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게 제 지론이지요. 하하하.

---근데, 아트락이 정확히 뭐예요?

---간단히 말하면 락과 클래식을 접목한 겁니다.

퓨전재즈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음악이 전쟝르에 걸쳐 크로스오버화 되어가는 추세거든요.


크로스오버라....

어쩌면 우리 인생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다다한 크로스오버 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멀리 하늘이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 끝 ----



< 프롤로그 >

기성작가 였다면 하룻밤만에 써내려 갔을 분량의 단편을 참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더딘 속도에 짜증이 났을 분도 계실 거고, 지쳐 떨어진 분도 계실 거고,

진득한 여운으로 소설속 여주인공을 음미하셨을 분 또한 계셨을 거라고 생각 됩니다.

이혼을 하지 않은 여자가 내 나이를 거스르고

이혼녀의 삶과 외로움을 논한다는 것이 저로서는 참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실컷 게으름을 피웠던 것 또한 사실이지요.

제 소설이 정말 이혼의 아픔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역시 이혼이라는 단어 속에 갇혀 살았던 때가 있었고,

이혼이라는 위기 앞에 위태롭게 서있던 시기 역시 있었습니다.

단지 지금은 비온 뒤의 굳은 땅처럼 조금더 단단하고 애틋해진 부부애를 과시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요.

결혼을 한 여성들에게 '이혼'이라는 단어 만큼 절실하고 현실적인 화두는 없을 겁니다.

기혼여성이라는 공통분모로 우리가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함은 아마도 거기서 기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혼한 여자와 이혼하지 않은 여자.

그 구분이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 외로우니까요.

어차피 우리 모두 결국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긴 시간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