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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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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BY 유수진 2000-10-08

"아야, 아야...
아파요, 엄마..."

뭉게지고 일그러진,
온전한 살점이라고는 왼쪽 얼굴 주변 뿐인 깡마른 노인네....
짓물이 나오는 화상 부위를 드러낸체 잔뜩 웅크린 모양새를,
거즈를 대다말고 멍하니 쳐다봤다.
노인네....울고 있었다....

내가 소리라도 지를까봐 잔뜩 겁을 먹고, 울음소리를 삼켜가며 숨죽여 울고 있었다.

왈칵,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화상 치료를 받으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던 엄마를 봤을때도
독하게 안나오던 것이....

의사는, 살아있는게 용하다고 했다.

난, 그 뜨거운 것을 꿀꺽 삼키며, 옛날의 차갑고 냉정했던 엄마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거즈를 거칠게 대고는,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해빈오빠가 왔는데도 히죽 히죽 웃기나하고....
엄마가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승의 끈 놓지 않은 이유가 그거 아니었어.
해빈오빠 한번 보고 가려고.....
그랬으면, 정신 좀 잠깐이라도 붙잡고 오빠 이름 한번 불러줘야 할거 아냐...."




"엄마....
내일은 뭐 그려요?
..........잡음....?

그걸 어떻게 표현해요?
아.........
죄송해요.
엄마가.....
하라는데로 할께요.
하지만.........
조금만, 가르쳐 주세요."


....화상부위의 통증이 그대로 느껴진다.

재인이가 아기였을때.....
말하지 않아도,
그냥 찢어지게 울기만 해도...
엄마인 나는 '뭔가 이상하다'싶어,
열을 재고 몸을 살펴 아픈곳을 짚어내 치료하는 동안,
재인이의 고통이 텔레파시가 통한 것 처럼 느껴지던....

엄마를 치료 할때에도, 그 느낌이 오롯이 전달된다.

역시.....
피는.....
원망과 분노가 뒤섞여 순환되도, 그 최후는 혈육이라는 강한 결속력으로 묶이는거란 말인가.....

'노인네...
끔찍하게 아프겠어.'

이렇게 느껴지면, 여지없이 촛점잃은 눈을 허공에 날리며, 헛소리를 해댔다.

"휴우~"

한숨이 나왔다.

엄마의 기억은 유년시절에서 정지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 도천 서하늘 화백과, 이혼한 전처 홍소피아 화백 사이에서 태어났던 불운의 소녀.

지극히 평범하고 내성적이었던 소녀는, 예술가 집안의 무남독녀로써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속에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증
게다가 그런 부모의 이혼으로 자폐증상까지 가져왔던 것이다.

물론, 이런것들은 유년시절로 돌아간 엄마의 헛소리에서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런데....엄마.....
저 오늘 친구들하고 영화 보기로 했는데....
다섯 시간만....

네.....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거즈를 댄 화상 부위를 피해 모로 눕는 엄마를 뒤로하고, 휠체어를 돌렸다.

"엄마....."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내일 저 유학 가는데....
오늘 나랑 같이 자면 안돼요?"

언제나, 똑같은 소리...

"어서, 자!"

'탁-'

재빨리 문을 닫고 나오는데, 해빈오빠와 재인이가 아직도 거실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파 옆에 쌓아놓은 앨범이 열권은 족히 되 보였다.

"이건, 재인이 아기때 사진이에요.
옆에 엄마 글씨 보이시죠.

1987년 6월 19일!
그리고, 이 사진 달랑 한장....

삼촌, 너무 하지 않아요.

내 친구들 아기 앨범엔 '우리 사랑스런 공주 다혜가 첫울음을 터뜨린날, 성희 탄생,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튼실한 성희가 태어났어요.
몇월 몇칠, 생후 20일경, 미진 잠자는 공주,
몇월 몇칠 두돌....
아빠 품에서 나리 쌔근 쌔근...
나리야, 얼른 일어나아~
사진 찍어야 한단 말이야......

다른집하고 정말 비교된다니까....

엄만 아무레도, 재인이가 태어난게 그렇게 기쁘진 않았나 봐요.

하긴.....
이때, 할아버지랑 이모랑, 작은 삼촌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런데, 삼촌...
이거, 정말 재인이 맞아요?
너무 못생겨서 친구들한테 보여 주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설명만 해줬어요.

"재인인 말야,
하얀 피부에, 까만 눈썹, 쬐그만 입술이 오물 오물 빠알갛고......"

재잘 거리는 재인이를 쳐다보는 해빈오빠의 옆얼굴이 우는듯, 웃는듯... 깊게 패인 주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툭-'

"응?
이건 뭐지?"

'그만 자자'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이해인, 김진재.
1979년 12월 1일.....
이건......시간이구나.
11시 38분....음.....
우리 재인이가 아침 열한시 삼십팔분에 태어났구나.

아기 팔찌랑 발찌까지 다 보관해 놨잖아.
이만하면 느이 엄마 참 자상하다."

"아이~
삼촌도....
재인이는 1987년 6월 19일 새벽에 태어났어요.
이건, 저랑 여덟살 위로 태어났던 언니 팔찌에요.

엄마 몸이 너무 약해서 언니도 몸이 안좋아,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죽었다는......
삼촌...
언니 보셨어요? 이뻤어요? 어땠어요?"

앨범을 들여다보고 연신 재잘거리는 재인이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오빠....

오빤 지금 이순간 나와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21년전......

이해인, 김진재 라는 이름으로 일주일 짧은 생을 살다간 아기...

저주의 씨앗이라고 끊임없는 욕설 속에서, 열달을 못참고 뛰쳐나온 아기.....

엄마를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었는지, 죽음으로 애미 가슴에 못을 박고 복수를 했던 것인지.....

애미가 죽음의 늪속에서 헤메고 있을동안 그 불쌍한 핏덩이도 함께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고통과 맞딱뜨려 혼자 내팽겨쳐져, 엄마없이 울어댔을 가여운것.

엄마 젖도 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대수술 후에도,
그 독한 약물 속에서도,
시간만 되면 주인없는 내 젖은 퉁퉁 불어 쓰디쓴 젖물이 흘러내렸었다.

아기의 얼굴도 한번 못보고, 아기의 뼈가루 한줌 쥐어보지 못한채 망연자실 나의 아기가 흩뿌려졌을 하늘만 올려다 보며 꺽꺽 울어 대고는....

훗날, 남편에게 우리아기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으니,
나를 꼭 닮았었다고.....

"갑자기 너무 슬퍼져요.
언니를 생각하면...."

난 재인이의 재잘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체,
기척없이, 얼른 방문을 열고 들어가 피곤에 지쳐 잠든 남편의 품속에 얼굴을 묻었다.

"윽읍....흑......."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