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달아오르기 시작한 10차선 도로 위로 겁도 없이 작고 노란
무언가가 폴짝폴짝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폴짝폴짝 쪼로르...
간담 서늘한 시선으로 그것을 쫓았다. 가출한 햄스터인가? 차 바퀴 안으로 들어가던 것이
다시 사거리 중앙의 텅빈 공간으로 쪼르르 나오더니 안착하듯 행동을 멈췄다. 곧,
통실 동글했던 그것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뒤에야 비로소 작은 마른 나뭇잎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허탈했지만 안도감이 더 컸던 순간을 뒤로하고 목적지를 향해 자전거 패달을 밟았다.
오전 9시쯤 집을 나선 지 5분이나 됐을까,
썬그라스 뚫고 들어오는 강력한 햇살에 변함없이 더울 하루를 짐작케 했다.
여전히 이 순간들이 익숙하지가 않다.
마흔쯤 시작한 직장 생활이 어느덧 15년째가 되었다. 사업장 센터의 폐업으로
인해 5월까지의 업무를 끝으로 6월부터 잠정적 백수가 되었다. 벌써 보름이
훨씬 지나 버렸다, 휴일도 아닌 평일에 소소한 이유로 때론 목적도 없이 밖을
나선다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몇 번의 이직은 있었으나 권고사직은 처음이다. 확신 없는 미래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근심되어 마음 한쪽에 자리했지만 당분간 쉬어 볼까 한다.
이번 계기가 내게 있어 여러모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알찬 백수 생활을 계획했었다.
작년 여름 이후로 들르지 못했던 친정을 다녀와야지. 그리곤 장롱 면허증을 탈피할 거야.
실내 운전 연수를 받은 후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해서 이곳저곳 콩이(고양이/14살)와 함께
추억을 쌓아야지. 취미활동을 찾아보라는 딸의 권유는 그 뒤로 차차 생각해 보면 돼...
그동안 말없이 깜짝 방문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엄마께 며칠쯤 방문하겠다는 소식을
전한 뒤였건만. 방문을 이틀 앞두고 마시던 커피를 쏟아서 양쪽 발목에 화상을 입게 되었다.
상처 부위가 커서 급히 비뇨기과와 피부과를 겸업하는 의원으로 달려갔다. 상처가
깊다는 의사에게 시골 다녀와야 하니 소독약과 연고를 처방해 달라니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듯 급한 일이 아니면 보류하거나 방문하는 곳에 가까운 병원에 내원을 권유하셨다.
딸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실 울 엄마.
직장 생활 중에도 퇴근해서 아빠의 농업을 돕고 집안일까지 쉴 틈 없을 와중에도 분명 내가 좋아할 음식들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
갈 때마다 도착 전까지 어디쯤 왔냐며 연락하고 신경 쓰는 통에 언젠가부터 깜짝 방문을
해온 터였는데...괜히 말씀드렸네. 후회해도 소용없는 마음으로 문자를 남겼다.
-엄마! 방문을 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커피를 쏟아서 화상을 입었는데 당분간
치료를 받아야 한대요. 반찬 신경 쓰고 계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려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근심 한가득 선사한 염치없는 딸의 문자에 엄마의 하루는 또 얼마나 고될까...
욱신 쑤시는 통증보다 불효에 거침없는 나의 삶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컸다.
예상대로 오후 6시가 됐을 때 엄마의 연락이 있었다.
“아니, 무슨 커피를 야단스럽게 먹고 화상까지 입어?!”
거두절미한 언성엔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러게. 그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이나 마셨나? 너무 뜨거워서 식혔다가 마시려고
했는데 그 아까운 걸 다 쏟았네.”
“손가락 골절된 것도 다 낫지도 않은 것이 화상까지!...이제 그만 좀 아파도 되잖아!”
“엄마 딸 삼재잖아. 뭐든 열심히 하는 딸이라 삼재도 빨리 들어와서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인가 벼. 집에서 가만있어도 다치네.”
“어제 간장게장 만들어 놓고 오늘도 시장 봐 갈려고 했는데...아빠랑 다 먹어
버려야겠다.”
깔깔 웃으며 화통하게 대꾸하는 딸의 목소리에 좀은 안도가 되셨는지 방문 취소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너 운전 연습할 거라며. 맞는 건지 모르겠다. 집에 있어도 사고 나는데 차까지 끌고
다니면,,,삼재 두 번만 겪었다가 사람 잡겠네.”
24년 10월 금요일, 퇴근 후 친한 동료들과 4명이 술 한잔하며 2차 노래방까지 들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귀가하던 중이었다.
지하철 역사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던 중에 3~4개의 계단을 남겨 두고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딛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검지 첫 번째 마디가 분쇄골절이 되었었다.
2개월 이상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겪은 통증과 불편함, 외로움과
서러움이 나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통증과 뻣뻣함이 남아있다.
분쇄골절이지만 수술 없이도 어긋남 없이 잘 붙은 상태라서 장애는 없을 거라고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의 걱정이 뭔지 알기에 여전히 부모님의 애물단지인 딸로써 죄송할 따름이다.
화상으로 인해서 내원 한지 열흘이 되어 가건만 소독하고 처방해준 항생제를 빠짐없이
복용해도 붕대 밖으로 진물이 번져 나왔다. 물 닿으면 안된다고 해서 이 더위에
맘껏 씻기도 어려웠다. 이런 내게 집에 들른 딸이 말했다.
“엄마, 회복이 너무 늦는데 치료되고 있는게 맞는지 다른 병원에 가봐. 다른 곳에서
체크하고 계속 다니던지 옮기든 하는게 맞을 것 같은데?”
소독하고 붕대만 감아주는 치료방식이 미덥지가 않다며 그간 두어 번 자신이
다니던 병원을 추천했었다. 귓등으로 들리던 말이 이번에는 귀에 박혔다.
그리고 방문하게 된 전문 피부과.
물이 아닌 커피나 음식물에 위한 화상은 치료가 더 길어진다고 했다. 더구나
발목 주변은 피부가 약해서 회복이 더디단다. 다행히 덧남 없이 회복 중이라고 했다.
10여 분의 거즈소독과 화상 레이저 치료와 화상 밴드와 방수밴드를 붙여주는 치료
과정이 그동안 받았던 방식과 진료비에 있어서 차원이 달랐다. 복용약 없이 회복됨을
체감하기에 실비가 되지 않는 부담되는 치료비에도 계속 전문피부과를 다니는 중이다.
남들 다 받는 보톡스를 여러 핑계로 다니지 못했던 피부과건만 요즘 치료를 목적으로
매일 출석 체크하듯 진료 순서 명단에 이름을 기재 중이다.
그리고,
일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없는 와중에도 여전히 습관처럼 여전히 빨리빨리,
조급증이 밀려드는 통에 ‘워워...’ 심호흡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