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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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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20마리의 값어치


BY 귀부인 2024-05-27

   남편과 떨어져 산 적이 있다.  10여 년 전, 나와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아들은 스페인에서, 남편은 근무지인 요르단에서 지냈다.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었던 남편은 주말에도 회사로 출근해 일하거나, 무작정 차를 끌고 집을 나가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야 길을 달리다 새틀라이트(satellite)가 설치된 베두인 텐트가 눈에 띄어 차를 세웠다. 남편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큰소리로, “웰컴! 웰컴! 마이 프렌드.”라며 두 팔 벌려 그를 맞아 주었다. 굵은 주름이 깊게 팬 검은 얼굴에 마구잡이로 자란 은회색 수염, 거기다 앞니가 네 개씩이나 빠진 그의 얼굴은 아무리 적게 보아도 남편의 눈에 60 중반은 넘어 보였다.

 
  손님  접대 문화가 유별난 이들은 찾아온 방문객을 결코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생면부지의 지나가는 나그네가 들렀을지라도 친절하게 대접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남편은 노인이 환영의 뜻으로 내어준 허브향이 진한 베두인 전통차를 마셨다. 그리고 토마토와 소금에 절인 올리브, 달걀 부침과 주식으로 먹는 빵과 요구르트에 호무스를 곁들인 점심까지 얻어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이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자 노인이, “오! 꼬레아, 꼬레아!”를 외쳤다.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던 그는 한국 여자들이 너무 예쁘다며 한국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에겐 ‘마흐르’로 낙타 20마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중동에서는 남자들이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그런데 결혼할 때 혼수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결혼 지참금인 ‘마흐르’를 준비해야 한다. 신랑이 신부에게 현금이나 현물로 주는 것인데 ‘마흐르’로 받은 것은 신부의 재산이 된다. 이혼하게 되면 위자료를 거의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가난한 남자들은 여자 쪽에서 요구하는 ‘마흐르’를 마련할 수 없어 결혼 적령기를 넘기기 십상이다.

 
  아무튼, 낙타 20마리가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지 몰랐던 남편은,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무슨 아가씨를…’하는 생각에 농담이라 여겨 웃어넘겼다. 


  광야에서 유목하며 사는 이들 베두인족은 물이 부족해 잘 씻지 못한다. 게다가 강한 햇볕에 그을려 실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살인가 물어보았다. 40살 조금 넘겼다고 했다. 마치 바람과 모래에 깎인 사막의 바위처럼 광야의 거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을 거두었다.
  낯선 이방인을 환대해준 그가 고마웠지만, 빈말 로라도 한국 아가씨를 소개해 주겠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계획 없이 빈손으로 나온 길이라 아무런 답례조차 못 한 것을 미안해하며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빨이 아프다던 그가 생각나 마음이 쓰였다. 비록 한국 아가씨는 소개해 줄 수 없지만, 병원을 찾기 힘든 그를 위해 진통제나 소화제, 연고 등 가정상비약을 챙겨 다시 방문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 큰아들을 대학에 보낸 후, 내가 요르단으로 가게 되고 회사 일도 바빠져 그를 잊고 말았다. 그러다 2년쯤 지난 후에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6개월마다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샬라(신의 뜻이라면)’였다.


  그런데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할아버지 같던 중년의 베두인을 우리 부부가 한동안 들먹였다. 남편은 가끔 나와 다툴 일이 있을 때 말문이 막히기라도 하면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하며, “당신, 그렇게 나를 화나게 하면 베두인 할아버지한테 팔아 버릴 거야.”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말이 우스워 서로 한바탕 웃게 되고, 대개 그렇듯 별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다툼이었던지라 왜 다투었는지도 모르게 넘어가곤 했다.

 
  한번은 친구들 모임에서 우연히 낙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과 갓 40을 넘긴 베두인 할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말다툼 중에 자기가 불리하면 낙타 할아버지한테 팔아 버린다는 협박을 한다고 하자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중에 유난히 크게 웃던 한 친구가 있었다.
 "아니, 난 네 남편이 더 웃겨. 네가 꽃다운 아가씨도 아닌 중년의 여인인데 낙타 20마리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게 더 웃기는 거 아냐?"
 " 난 아직도 네 남편이 널 그렇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거 그게 더 대단해."


 그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공감한다는 듯 또 한바탕 까르르하고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망치로 머리 한 대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사실 난 한 번도 그 친구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설마 내가 겨우 낙타 20마리 값어치밖에 안 되겠어?'라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웃는 친구들을 따라 함께 웃지도 못하고 우리가 벌써 퇴물 취급을 받는 나이인가 싶어 잠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남편 회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낙타 한 마리는 보통 2000달러 정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마흐르’를 요구할 때 양이나 염소 몇 마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낙타 20마리를 준다고 했다면 엄청난 제안이고, 아마도 그 베두인은 대단한 부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했다.

 
  낙타 20마리는 40,000달러나 되는 돈이다. GDP가 겨우 5,000달러에 불과한 요르단의 가난한 생활 수준을 생각한다면 낙타 20마리는 엄청난 예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돈 많은 베두인 할아버지가 40살이 넘었다고 했으니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구한다면 세 번째나 네 번째 부인일 텐데 나 같은 중년 여자라면 낙타 20마리는커녕 아예 퇴짜를 놓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는 아가씨를 원했는데....친구의 말마따나 나를 낙타 20마리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남편에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여간 어느 날부터 인가 남편은, “내가 잘못했소. 나는 항복이오.” 라는 신호로 베두인 할아버지한테 팔아 버린다는 말을 했다. 나는 미안하단 말 대신에, “여보, 할아버지한테 나 팔지마~”라고 코맹맹이 소리를 했다.


  그로부터 10년, 요르단에서 귀국한 지는 2년이 지났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어 요르단에서의 추억은 하나, 둘 잊히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맞추어가며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동안 흰머리가 늘었다. 다툴 일도 크게 없지만, 가끔 티격태격할 때 우리는 더는 베두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남편은 지금 나의 값어치를 무엇으로 매길까? 함께 산 세월이 늘어난 만큼 낙타 20마리 값어치보다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세월이 흐르면서 더 소중해진 나를 위해, 남편은 이제 낙타 대신 더 값진 보석으로 나를 비유하지 않을까? 낙타 20마리가 아닌, 함께한 세월 값이 빛나는 보석으로 변했으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