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8일
날씨: 햇볕이 맑고 따뜻하나 바람이 차갑다.
제목: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다가 버르장머리를 당해버렸다.
어제는 서울을 다녀왔다.
시누이 남편 생신 겸 서울 나들이 겸해서 그리고 예전에 구경만 했던 백화점들이 잘 계신가 혹시 내가 한 번도 찍어주지 않아서 달아나 버린 건 아닐까 궁금도하여 서울 나들이를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실은 남편에게 속이 찔리는 데가 있어서, 사과의 의미로 시계를 사주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달 남편을 친구들과 중국 여행을 보내 놓고 느낀 것이 많았다.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늘 찌그럭 부그럭 원망하고 미워하고 하던 차에 남편의 여행은 참으로 잘 됬다 싶었다. 이럴때는 약이 따로 없다.
그냥 떨어져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처방이렸다.
서로 숨 쉴 구멍이 있으니 계획된 선물이 된 샘이다.
내가 이렇게 좋으니 그도 마찬가지 였겠지.
남편이 여행을 가기 전 날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콧노래를 불렀다.
뭘 할까? 어디를 갈까?
오랜만에 누려보는 한가함이 나를 설ㄹ레이게 했다.
그리고 남편은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떠났다.
전화 한통, 카톡 한통 안 하기로 결심했다.
아후 ~ 좋아라.
ㅋㅋ....
그런데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남편이 여행을 떠나고 바로 그날 밤 요리 중간에 까스가 똑 떨어졌다.
다행히 여분이 있어서 물어 물어 어렵게 가스를 연결을하고 요리를 할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벨브 만 연결하면 되는데 그걸 할 줄을 몰랐다.
지인과 영상 통화를하면서 가스통을 연결하면서 조금 겁이 났었다.
“헬프미”
그러나 한 밤중이라 누구를 부를 수 없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삼일 후, 이 날은 남편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 밤이다.
에구구 ...이번에는 기름 보일러에 빨간불이 들어 왔다.
참 이상하네. 보일러 실에 가 보니 이번에는 기름 통에 기름이 한 방울도 없는 것이었다.
주유소 여기 저기에 전화를 했지만, 퇴근 시간 후라서 기름을 배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맨날 쌈박질을 해도 남편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밤 어떻게 동태로 잘 수 있는가?
이건 나도 아니 되겠다는 말씀이지.
사실 10분 안 되는 거리에 여동생도 살고, 시동생도 살고, 조카도 산다.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30분 이내에 순조롭게 처리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기름이 떨어져 앵꼬 당한게 한 두번이 아니다.
우리집 보일러는 양심도 없다.
시뻘건 대낮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한밤중이나 주말 밤, 그리고 어느 때는 주책 바가지 없이 연휴 때도 기름이 떨어진다.
평일 낮에 기름이 떨어지면 얼마나 이뻐. 아주 그냥 지맘대로랑께.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언젠가는 1월 1일 연휴가 길던 날 기름이 떨어져서 오랜만에 객지에서 돌아온 막내딸을 꽁꽁 얼린적도 있었다.
주유소가 쉬는 날 기름이 자주 떨어져 ,우리집을 “엥꼬집”이라 불렀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토요일에 기름이 떨어져서 시동생이 급 조달해주기도 했었다.
전과가 워낙 여러번이라 이제는 시동생에게도 부탁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유소 여저 저기에 전화를 했다.
대여섯 집을 거쳐 겨우 겨우 사람 좋은 주유소 사장님으로부터 기름 두통을 사서 택시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택시 기사님이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본다고 웃으면서 기름을 배달해 주셨다.
쯧쯧... 기름 값에 택시비까지 지불하면서 자꾸 억울했다.
야! 너는 왜 지금 떨어져 나를 힘들게 하냐구...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 기름을 통에 부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무거운 기름을 쏟아 부을 재간이 없었다.
왜 그렇게 무거운지...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말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2시간 후에 도착할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남편에게 고백하고 나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다.
거실에 조그만 히터 하나를 틀어 놓고 이 생각 저 생각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남편이 여행을 떠나던 날엔 아침부터 남편이 여권이 없어져서 소동를 피운 일부터 내가 겪은 LPG 까스 사건하며 기름 보일러 사건까지 죽 ~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여권,
남편의 젊은 시절엔 볼펜 하나 우산 하나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던 사람이 가끔씩 휴대폰을 차에다 넣고 집에 와서 찾기도 하고 가끔씩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남편은 자기의 여권을 상위 주머니에 넣고 여권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피웠던 것이었다.
결국 잃어버린 여권을 상위 주머니에서 찾은 결과가 되고보니 웃지못할 사건으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딸래미가 새로 사준 가디건에 윗 주머니와 아랫 주머니가 있었나 보다,
늘 아랫 주머니만 달린 옷을 입고 다니던 남편이 윗주머니를 살피지 않아서 여행 직전에 그 난리가 났던 것이었다.
공항행 버스 출발 5분전에 윗 주머니에서 여권을 찾아 여행을 떠나면서 짧은 시간에 진땀이나게 곤욕을 겪었던 것이었다.
며칠 사이에 참 여러가지도 겪었다.
그때 무거운 기름을 넣지도 못하고 낑낑거린 것이 화근인가 보다. 뒷 목부터 꼬리 뼈가 새근 새근하니 불편하다.
‘이젠 어쩔수가 없구나.
우리가 이제 미워하고 원망할때가 아니구나.
서로 위로하고 타협하며 살아야지 별수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남편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씽크대가 막혀도 내가 뚫어야 했고, 전등이 나가도 내가 갈아야 했고, 변기가 막혀도 내가 뚫어야 했다.아파트에 살때는 경비실에 얘기만 하면 해결될때도 많았지만 그때까지 참지를 못하고 내 스스로 고장난 것들을 잘 고쳐 쓰기도 했다.
역으로 우리 남편은 집안에 못하나 시원하게 박을 줄 몰랐다.
예전에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상가 주택에서 십여년을 살았었다.
그런데 이사 나오기 직전에 보일러 좀 올라고 했더니, 보일러를 어떻게 올리느냐고 물었다.
깜놀, 깜짝 놀랬다.
아! 내가 겨울에 집을 자주 비웠는데 그럼 보일러도 안 돌리고 살았단 말인가?
알고 보니 그는 전기 매트만 틀어 놓고 잤다고 했다.
쯧쯧...생활에 있어서 나는 그의 리모컨 처럼 살았다.
고놈에 리모컨이 가끔씩 지랄을 치고 투덜거려서 그렇지 아쉬운대로 그냥 썼던 것이다.
그런데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딱 ! 고쳐보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가스가 떨어져도 남편이 직접 배달을 하게 하였으며,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져도 남편이 자기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배달 시켰던 것이었다.
가스가 떨어져도 늘 여분의 가스가 있어서 벨브만 남편이 연결하면 해결되었으나, 보일러는 늘 앵꼬를 당해도 첵크를 하지 않아서 아무 때나 지맘대로 떨어지는 것이다.
몰라라 몰라라
LPG 가스와 보일러 기름은 남편에게 책임지게 하려고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제 나이 먹어서 서로 할켜서는 안 되겠구나.
더구나 시골에 살려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늘 보일러 점검 뿐 아니라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나누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 다른 머슴을 구할수도 없고 두 병주가리가 남아서 별 그렇게 따지고 싸우고 특히 우리 부부는 남들에게는 후하고 친절한 반편,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인색하다.
이건 우리 둘이 똑 같은 쌍둥이 같다.
서로 미워하는 것도 똑 같고, 서로 원망하는 것도 똑같고. 돈 가지고 전쟁하는 것도 꼭 같고..
남편이 3박5일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여러 가지 깨달음이 많았다.
이는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다가 나는 버르장머리를 당해 버렸다.
남편에게 왜 마누라 소중한 것을 모르느냐고 늘 서운했지만
나 역시 남편이 남편 소중한 것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과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시계를 사주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아직 시계를 사지 못했지만 백화점을 둘러보고, 세일 할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모델을 정하고 돌아왔다.
딸들이 좋아서 난리가 났다.
“아빠도 이제 시계 같은 시계 차 보는겨.?”
지금까지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것보다, 나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편이 훨씬 빠르고 쉽다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버렸다.
다시는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하지 말아야 겠다.
다시는 집안 살림을 남편에게 미루지말고 아무나 형편되는 쪽에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예쁜 봄날에 나는 이렇게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다가 버르장머리를 당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