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지났으니,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겠다? 아니, 새 해가 다시 왔으니 한 살을 더 먹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제는 꼼짝도 못하고 80을 채웠다고 해야 한다. 서글프다. 많이 서글프다. 언젠가는 내가 언니 대접을 받겠다고, 말도 안되게 나이를 올려놓고 고집을 부리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런데 자고나니 어~라. 이젠 나이를 '만나이'로 쓰라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80이 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하하 거참 좋은 세상이로고. 교회 권사님이 송구스럽게도 세배 대신이라며 문안전화를 한다.
"권사님. 이제 팔순이시네요. 그래도 권사님은 그리 안 보이셔요."
"아니야. 나, 아직 칠십 줄이야. 어저께 밤에 두 살을 급하게 먹어치웠 걸랑."
"그렇기로 친다면, 저는 5살쯤 먹어치울래요. 호호호."
"맘대로 된다면 난 한 20살쯤 먹어치우고, 다시 대학 갈테야. 킥킥킥."
먹어치우는대로 나이를 말한다면 질서가 없어서 안되지. 암. 안되지.
나이만 젊어진다고 무슨 소용이랴. 몸은 휘청휘청 걸음까지 갈지자인 걸.
몸만 그런가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살은 어쩌냐고.
그런데 나이나 몸둥아리보다 더 큰 문제는, 자꾸만 퇴색되는 기억력이다.
더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더 망가지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현상유지만 돼도 좋겠다는 말이지.
하루하루 퇴색되는 기억력이, 이젠 내 가륵힌 자존심까지를 망가트린다.
냉장고 앞까지 뭘 가지러 가긴 갔는데, 뭘 가지러 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전기료금도 아랑곧없이 냉장고문을 잡고 하세월을 한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여기에 서있는가를 더듬으니, 것도 만만지를 않다.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후라이팬이 비명을 지르자, 그때에야 계란을 가지러 온 게 생각이 나는구먼. 휴~!
내 딴에는 현명한 짓을 한다고, 나도 시어머님을 가르치던 '구구단'을 외우자 하니, 꼴에 그건 내게 너무 쉽다. 주재도 모르고 '옳거니. 매일 아침 확인하는 '오늘의 코로나확진자'를 외우자.'고 맘 먹었지. 아침에 외우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기억하리라. 꼴에 '그것쯤이야.'했더니 그마저도 사람의 기운을 빼네.
'오늘의 코로나 확진자 ; 75023'이 점심도 되기 전에 23075명으로 읽힌다. 아무래도 어색해서 자판을 두드리고 확인을 하니 거짓말이다. '75023'은 저녁도 되기도 전에 '75032'가 되어있다. 그래도 고집으로, '오늘은 반드시 자기 전까지 외워 두리라.'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말짱 허사다. '이런 제길.....'
'구구단'을 외우게 하던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하지 않겠다던 시어머니를 닥달을 하며 외우게 했다. '결국 시어머님은 중도포기를 했지만, 난 다르다.'고 이를 악문다. 그러나 내 머리 속의 '오늘의 코로나확진자수'는 여전히 널을 뛴다. 그래. 내 머리속에서라도 '코로나확진자'가 즐어드는 좋은세상을 만들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