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2(일)
냉동실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멸치, 마른 새우, 북어 껍질, 다시마를
냄비에 담아 물을 붓고 자투리 야채들도 함께 넣어 한소끔 끓였다.
부엌이 바닷 내음으로 한 가득이다. 텃밭에서 딴 싱싱한 애호박, 당근, 양파는
곱게 채 썰어 살짝 볶았다. 계란도 얇게 지단을 부쳐 채 썰어 두고 국수를 삶았다.
씹는 걸 싫어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오늘 낮에는 좋아하시는 국수를 준비했다.
지난해 6개월 간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느라 5kg이나 빠졌었다. 요르단으로 돌아가 겨우 본래의 몸무게를 회복하고
한국에 들어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시월드에서 겪었던
맘고생, 지나치게 무료했던 시골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올 해 한국 행을
앞두고 무척 심란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한 번 더
주어진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맘을 바꾸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7개월 만에 다시 뵌 어머니는 단기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시긴 했지만,
작년보다 훨씬 안정되고 건강해 보였다. 아마도 동서네 집으로 가지 않고
당신 집에서 살며 어머니 댁에서 출, 퇴근 하는 막내 아들을 매일 보는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그토록 가기 싫어하던 노인 센터에도 정을 붙여
친구들을 사귀어 낮 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는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들은 자기가 살던 곳을 벗어나거나, 익숙한 생활이
변화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내가 오고 나서
어머니 집으로 출, 퇴근 하던 아들이 주말에만 가끔 오자 너 땜에 아들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얼마 동안은 나보고 빨리 니 집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내시곤 했다. 치매시라 그런 걸 알면서도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화까지 내시는 어머니 때문에 많이 서운했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가장
힘든 시간 어머니 곁에 있었는데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시고....
살가운 막내 아들이 매일 오고 가끔은 데이트하듯 둘이서 외식도 하고
재미지게 살던 어머니에게 나는, 졸지에 두 사람을 갈라 놓은 방해꾼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나랑 같이 지내시는 게 익숙해지셨나 화를
내시지는 않는다.
" 너 언제 돌아갈래?'
" 10월에 돌아 가려구요."
"아, 뭐더러 그렇게 오래 있어?, 내 걱정 말고 어여 들어가, 너이 시동상이
날마다 올텐디 뭔 걱정이냐아."
"어머니, 이 참에 삼촌도 좀 쉬면서 자기 집에서 출, 퇴근 하고 애들도 아빠랑
같이 지내야죠오."
"여기서도 회사는 안 멀어어, 그라고 애들은 주말에 보믄 되지이."
이틀에 한번 꼴로 똑 같은 대화를 한다. 물론 어머니한테는 항상 처음하는
대화일 테지만.
좋아진 게 하나 있다면 지난 해와 달리, 내가 부엌에 오래 있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도마 소리가 나면 몇 번이나 부엌문을 열고
들어 오셔서 뭣 한다니, 암거나 반찬 하나만 두고 먹자 하셔서 손이 느린 나로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으시니 음식 하기가
수월해졌다. 부엌 일에 완전히 손을 떼신게 익숙해 지신 듯 하다. 오늘 낮에도
한참이나 부엌에서 칼질을 했지만 tv 앞에서 꼼짝을 안 하신 덕분에 느긋하게
점심 준비가 가능했다.
새하얀 국수 위에 색색의 고명을 가지런히 담고, 뜨거운 것 못 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한 김을 식힌 해물 야채 육수를 가만히 따라 부었다. 작은 앉은뱅이 상위에
국수 두 그릇, 들기름 향 진한 양념장과 파프리카, 양파, 사과를 갈아 넣어 만든
겉절이 한 접시를 올려 놓았다.
"어머니, 점심 드세요오."
"어허이, 언제 국수를 삶았디야, 맛있것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어머니는 작년에 그러셨던 것처럼 고맙다, 니가 있어서
가만 앉아 편케 잘 먹었다고 이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빈 그릇을 보며
음식투정 없이 잘 드셔 주셔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함께하는 점심은 10 분 만에 끝이 났다.
작년에 한 번 겪기는 했지만 시골 에서의 무료한 날들이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한가한 시간을 또 한번 선물 받았다 생각하고 감사하며
보내는 매일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