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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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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세상이야


BY 만석 2021-06-10


저녁 상을 겨우 물렸는데 영감의 폰이 운다. 막내아들이 분명한데 이상도 하다. 녀석은 정해 놓고 토요일이면 문안 전화를 하는데, 오늘은 목요일이 잖은가. 게다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영감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말이지. 뭐여. 그럼 이 저녁 특별한 일이 생긴 겨?

영감은 재미가 없기는 마누라에게나 자식에게나 늘 그렇고 그렇다.  높낮이 변화 없는 가라앉은 톤으로 각별하게 반갑거나 고까움 없이 잔잔해서, 도통 귀를 들이대지 않고는 재미는 커녕  알아들을 재간도 없으니 별일이 아닌가. 이젠 청력이 시원찮아서 당신도 듣기가 쉽지 않은데 내 생각도 좀 하시지.

"아빠. 엄마 계세요?" 재미가 없자 에미를 찾는 모양이다.
영감이 넘겨주는 폰을 들자 아들의 썩 기분 좋은 목청이 내 귓전을 친다.
"엄마. 아들이래요. 그래서 아빠한테 이름 지어 달라고 전화드렸어요. 허허허."

"오늘 병원 다녀왔대요." 참 좋은 세상이다. 태중의 아기도 성별을 알아내니.
태중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는 소리다. 막내아들은 시방 사업 상 일본에 체류를 하고 있고, 며느리는 서울에 있으니 방금 통화를 끝냈다는 이야기다.

"그래? 아이구 잘했구나. 에미가 좋아하디? 형제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하더니."
"예. 욕심도 많아요. 또 아들이면 좋겠다구 하더니..."
"너는 어떠냐? 아들이라서 좋으냐?"  이왕이면 지금의 상황을 축하해주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아들과 통화를 끝내자 이번에는 내 폰이 운다.
"어머니. 어머니."
"오냐~. 오냐~." 그녀에게 두 번 불렸으니, 나도 대답을 두 번 할 수밖에 ㅎㅎㅎ.

"오빠가 전화했지요? 제가 먼저 해야 되는데, 배가 고파서 냉면 한 그릇 먹느라고요."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아도 아직 남편을 오빠라고 한다. 아무러면 어떠냐. 태 중에 내 손주를 키우는데.
"어머니는 오빠 가지셨을 때 뭘 잘 드셨어요?"

"난, 고기를 잘 먹었단다."
"그럼, 저도 고기 많이 먹어야겠어요. 아가가 오빠 닮아야 하니까요."
"키도 오빠만큼 커야 하고요. 얼굴도 오빠를 닮아야 해요. 오호호."

그 오빠라는 아들이 임신 8개월이 되어도 모르고 계시던 시어머님이, 부른 내 배를 보고 깜짝 놀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네 번째 임신도 부끄럽기만 하던 그 시절의 생각이 난다.
"아~! 내 며늘아가야. 너는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 내 귀한 손주를 잉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