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기후변화 탓일까, 어릴 적엔 이르면 6월에서 9월쯤 규칙적인 장마철이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장마철을 뚜렷이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다. 장맛비가 시작되면 후드득 소낙비가 내리다 뚝 그쳐 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그해 여름도 장마기가 시작되면서 잦은 소낙비가 내리더니 큰비가 되어 우리가 살던 마을을 휩쓸고 간 대 홍수가 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가 온종일 시끄러웠다. 초저녁이 되어 야트막한 문지방 아래까지 넘실대며 흘러가는 물을 보며 어른들은 걱정에 싸여 있었는데 초저녁잠이 많은 우리 남매는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누군가 흔들어 깨워 눈을 떴더니 이불 보따리와 솥단지를 챙기신 아버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에 취해 눈을 비비는데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꽹과리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아버지를 쳐다보니 동네 이장과 청년들이 피난 가라고 소리를 질러가며 마을을 돌고 있으니 얼른 따라나서라며 재촉하셨다. 가장 어린 막내를 둘째 언니가 업고 쌀과 이불 보따리를 들은 어른들을 따라 집을 나와 신작로를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이발소 집으로 피난을 하였다. 이발소는 졸지에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나는 구석을 찾아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니 한잠도 못 잔 어른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을까? 타 타 타 타, 하늘에서 나는 헬기 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저 먼 하늘에서 마을로 무엇인가 떨어지고 있었다. 구호 물품이었다. 어른들이 달려들어서 상자를 풀자 쌀. 라면. 헌 옷. 다이얼 비누 등이 쏟아져 나왔다. 배급받은 구호 물품과 냉수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중에 장마가 휩쓸고 간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안락했던 루핑 지붕 아래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리고 환자까지 생겼으니 비가 내리면 큰일이었다. 행여 소낙비라도 내린다면 허술한 천막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허허벌판에 남겨진 사람들은 정부에서 쥐여주는 몇 푼의 돈으로 집을 짓기엔 턱도 없었지만,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고 닥쳐올 겨울을 준비해야 했다. 아버지는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무를 잘라다 기둥을 세우고 흙벽돌을 찍어가며 구슬땀을 흘리시더니 또다시 루핑 지붕을 덮어 올렸다. 탁, 타 탁, 투 투 투 툭, 우리는 다시 루핑 지붕 아래서 잠이 들었고 밥을 먹었고 울고 웃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가난의 상징 같은 루핑 지붕 아래서 함께 들었던 빗소리를 언니들도 기억할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세상에서 가장 따듯하고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곳이었던 루핑지붕 아래에서 들었던 그 소리 때로는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음이었다가 때로는 잔잔한 음악이기도 했던 그 소리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