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편하고 맘은 허전하고
아래층 식구들이 아침 식사를 하겠다고 올라오니, 그만해도 다섯 식구다. 떡국을 끓여서 먹고는 세배를 한다. 차례는 생략을 하고도 세배를 받는다는 게 염치가 없다. 손녀딸아이는 거금(?)이 든 세뱃돈 봉투의 액수를 세느라고 여념이 없다. 방긋 예쁜 웃음을 담고 입을 귀에 걸었으니, 만족하다는 뜻이다. 세 식구가 세배를 하고 내려가니 오늘 행사는 일찌감치 끝이다.
작은 아들이 사업 차 일본에 체류 중이니, 오라고 해도 작은 며느리만 혼자 올 것이고. 신랑도 없는 시댁에 혼자 오는 게 뭐 그리 재미지겠는가 싶어서 쉬라 일러두었던 터다. 매일의 이른 출근에 모자라는 잠이, 오늘은 늦잠으로 보약이 되겠지. ‘이번 설에는 피로를 푸는 명절로 이용하라’는 단톡방에 오른 소식을 접하고는, 넙죽 큰절이라도 하지는 않았으려나 ㅎ~.
큰며느님도 손목이 아파서 쩔쩔매는 걸 보았던 터라, 요번 설은 일을 좀 덜어주자는 생각이었다. 차례를 생략한다는 핑계로 아무 준비 없이 떡국이나 한 그릇씩 먹자는 말이지.
“단톡방에 그렇게 올릴까요?” 제 댁 힘드는 걸 왜 모르랴. 큰아들의 목소리가 제법 가볍다. 막내딸 내외는 시댁에서도 작은댁 식구들과 차례를 지낼 터이니, 내려오지 말라 했다하니 나도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헉~! 차례를 거른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양, 영감의 기분이 썩 시원치가 않다. 아~! 내가 문제인 것이다. 아래층 식구를 불러서 떡국만 끓여서 먹게 할 일이 아니질 않은가. 내가 이왕에 올라왔으니, 다섯 식구가 차례를 지내게 했어도 족할 일이 아니었던가. 전은 맞추고 탕국이나 끓였더라면, 며느리 손목도 좀 수월했겠지. 이젠 나도 늙었다. 뭐든지 쉽게, 쉽게만 살고 싶더 터라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요번 차례를 생략한 것이 사실은 영감의 의도였다. ‘모두 모이기도 힘드니 그만 두라.’고 언질을 준 것은 영감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우겨서라도 차례를 지냈을 것이다. 몸이 노곤하던 터에, 영감의 한 마디에 귀가 솔깃해서 주저앉고 말았던 게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서글픈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명절을 명절답지 않게 지냈으니, 몸은 편하나 맘은 많이 허전하다.
영감의 가슴을 청진기로 좀 살펴보아야겠다. ‘한 치 걸러 두 치’라고, 내 마음이 이런데 영감의 마음은 어떨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좋소?’라고 악다구니를 한다면, ‘당신이 먼저 하지 말라 했잖냐?’고 나도 할 말은 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영감의 이런저런 말없음에, 나도 양심에 가책이 인다. 어떻게 풀어 줄까. 대보름이 지나기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추모공원에라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