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야무졌네
나도 어느 댁 사모님처럼 홈드레스를 잘잘 끌며, 베란다의 티테이블에 팔꿈치를 받치고 다리 꼬우고 앉아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살고 싶었다. 베란다의 코너마다 향이 은은한 붉은 색 장미를 꽂고, 커튼을 활짝 열어서 내가 거기 존재하고 있음도 알리고 싶었다.
막내아들이 입대를 하면 그게 가능할까? 막내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면 그게 가능할까? 큰아들이 유학에서 돌아오면 그때는 그게 가능하겠지? 늙은 영감도 아직은 보아줄 만하니, 불러서 마주 앉혀 놓고 그림을 풍성하게 해 볼까. 아마 많은 이들이 말년의 복을 부러워들 하려나.
그러나 막내아들이 제대를 하고 돌아와도 막내 딸아이가 공부를 마쳐도, 나는 아직 집에 들어앉지를 못했겠다?! 아이들마다 향학열이 높아서 그게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내 목표는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저희들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부하기가 어려웠다지만 나는 어떠했을고.
그 와중에 전업 주부를 꿈꾸며, 하던 일을 몇 번씩 접었다가 폈다가 했다. 그러나 정작 이 악물고 오리지날(?)전업주부가 되었을 때는 벌써 내 나이 일흔이더라는 말이지. 베란다의 티테이블은 녹이 쓸어 집어던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원대로 꽃무늬 홈드레스 잘잘 끌며 사모님 행세를 해 봐봐?!
그러나 사모님이라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구만. 것도 팔자 나름이란 걸 늦게야 알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느라고 이런 저런 생각도 없이 오고 보니, 쥐뿔 나게 계단이 요란스럽더란 말씀이야. 앞이 탁 트여서 시원하다더니, 그 계단이 복병이 될 줄이야.
게다가 복층의 계단도 만만치 않으니, 내 다리는 매일 청춘인 줄 알았구먼. 홈드레스를 입고 보니 치마 단으로 계단 청소를 하게 생겼고, 주부다운 살림을 하자 하니 그게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더라는 말씀이지. 하마터면 발뿌리에 걷어채여 계단에서 곤두박질 하기가 십상이겠고.
나는 진즉에 홈드레스라는 것을 훌떡 벗어던지고 몸베(?)바지를 입었다. 패딩조끼도 걸쳤다. 우하하 내겐 이게 제격이다. 이 아니 좋은가. 여기에 바로 홈드레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 옳겠다. 제 멋에 산다지만 팔자 따라 살아야겠다. 홈드레스를 뚝뚝 잘라서 원피스로 재생을 시켰다. 역시 사모님 행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