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쓸만큼 다 써서 노후처리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영감이, 아직도 쓸모가 있었네요.
주방이 좁아서 늘 불평이던 마누라를 위한답시고, 각자와 줄자를 들고 며칠 머리를 굴리더군요. 아주 나쁜 머리는 아니니까 맡겨 놓고 보았더니, 와~. 주방을 두 배로 넓혀 놓았어요.
그 무거운 김치냉장고를 베란다로 빼고, 식기건조기도 베란다로 옮기고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맘에 들게 해 놓았네요. 이젠 두 며느리가 날개 펴고 날아다녀도 될만큼 되겠어요. 조금은 오버해서 아주 흡족한 채를 해 보였더니, 팔순의 영감도 별수 없이 어린애처럼 우쭐하네요.
그래도 참 신기한 게, 영감은 절대로 내가 컴 앞에 앉아 있으면 건드리지 않아요. 내가 옛날처럼 기사를 써서 가계를 도우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신기한 구석이 있어요. 혼자 기운을 썼으니 오늘은 영감의 건재가 고마운 하루로, 감사하는 하루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