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욕해. 사람들 앞에서 아빠가 아침 하신다고 말하지 마라."
"왜 엄마? 난 우리 시부모님한테도 얘기 했는데요?"
"이런 이런. 흉 보셨겠구나. 엄마가 저녁에, 쌀을 씻어서 솥에 앉혀 놓는다고도 말을 해야지."
"아뇨. 그런 얘기 안 했는데 시어머님이, '우리 사돈어른 멋지시다.' 하셨어요. 아니, 놀라는 눈치셨어요."
"네 앞에서 그럼 어떻게 내 욕을 하시겠니. 재치 있는 답이셨지."
팔순의 노인 네가 아침밥을 짓는다는데, 그게 멋지다는 소리를 들을 일인가.
바깥사돈의 반응을 물으니, 그냥 싱글싱글 웃으시더란다. 허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 영감이 아침밥을 짓는다면, 그건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워낙 주방 일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이나 시누이들이 알면 까무라칠 일이기도 하다. 다섯 시누이 속의 외아드님인 영감은, 적어도 내 집에서는 제왕으로 군림했으니까.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게다. 변한 건 영감 뿐이 아니다. 보아하니 내 아들 녀석도, 영감처럼 제 댁을 곧잘 잘 돕는 모양이다. 좋은 현상이다 싶다.
도통 청소기도 돌릴 줄 모르던 영감을, 주방으로 몰아넣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을 하자면 길어질 터이니, 몸이 약한 마누라를 데리고 살다 보니 밀어 넣지 않아도 주방 출입을 하더라는 말씀이야. 이젠 주방 출입을 시작했으니, 그게 계속해야 할 일이고 당신의 천직이라는 걸 일러야 했다. 그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터. 눈에 좀 거슬려도 청소기를 돌리는 일과 쓰레기 분리수거도, 영감이 손을 댈 때까지 두고만 볼 일이다. 내 손이 필요할 때에는 영감의 눈에 뜨이지 않을 때 움직인다. 그럼, 나는 뭘하냐구? 점심, 저녁마다 고실고실하고 따끈한 돌솥밥을 대령하지. 아, 방 걸레질도 내가 하지. 영감의 걸레질은 내 맘에 들지 않으니까. 아, 화장실 청소도 내 몫이다.
하기는 사무실을 인계하고 나니, 영감도 시간 보내기가 무려했겠지. 안방과 쓰레기 분리수거 뿐만 아니라, 방마다 다니며 네 개의 쓰레기통을 깨끗하게 비워 놓는다. 거참. 신퉁방퉁하네.
'팔순의 영감이 하는 일이 깨끗하기는 뭘 깨끗하겠나.' 하겠지만, 내 영감은 천성이 깔끔하다. 오히려 내가 영감의 타박을 받는 일이 많다. 나는 오랫동안 하지 않던 일이었으니까.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널어 놓은 걸 보라지.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탈탈 털어서, 나란히 걸어 놓는다. 집 일을 잘 돕는 남자들은 잔소리가 많다지? 그러나 우리 영감은 하루에 두 마디하면 많이 하는 거다.
물 먹은 무거운 빨래나 큰 이불 호청 따위는, 나 혼자 옥상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게다가 키가 큰 양반이 당신 키에 맞추어, 하늘까지 닿을 지경으로 빨래 줄을 높히 매어놨더란 말씀이야. 그러다 보니 옥상에 빨래 너는 일은, 자연스럽게 영감의 몫이 되었다. 좀 시간이 지나자, 세탁기도 영감이 맡아 돌리게 되었다. 간혹 생사 쉐타를 골라 내지 않고 한꺼번에 돌려서 버려 놓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불찰이니 영감을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빨래줄에 매달려 빨래를 널고 있으면, 건너편 옥상의 젊은 권사님이 큰소리로 말한다.
"아저씨가 어디 가셨나 봐요."
"우리 동네 아저씨들 요새 권사님 네 아저씨 때문에 구박 받아요."
영감이 나를 돕는 일을 시샘하나 보다. 허허 민폐로고.
"아저씨가 전혀 그런 일 하실 양반 같지 않으시다고들 해요."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