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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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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4) - 긴가 민가


BY 귀부인 2020-07-29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에서 내는 달그닥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어머니의 아침 단잠을 깨웠나 보다. 방문을 열고 나오시는 기척에 잘 주무셨냐 인사를 하기 위해 부엌에서 나왔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꾸부정한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체,


"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 아퍼!" 를 노래처럼 읖조리며 아파 죽겠다는 표정으로 , 그리고 한껏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신다. 말로 표현 하지는 않으셨지만 , 마치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처럼 '나 오늘 센터 안 가고 싶어' 하는 시위를 온 몸으로 , 표정으로 하시는 거다.


어느 정도 단련이 된 나도 이럴때 맘이 약해지면 안되니,

"아이고, 어머니 아침부터 허리 아프셔서 어떻게 해요? 오늘은 날씨도 흐리지 않은데 일어 나시자 마자 왜 허리부터 아프실까요 ?" 라고 능청맞게 웃으며 묻는다. 

나 또한 소리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 그려셔도 소용 없어요. 오늘도 센터 가셔야 해요.' 라는 무언의 답을 드린다. 


며느리 눈치를 보니 안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이내 체념을 하시곤, 오늘따라 더 처량하게 허리 아프다는 소리를 연발 하시며 느릿느릿 화장실로 향하신다.


3일만 지나면 어머니 스스로 센터로 가시고 싶어 하실거라던 센터 직원의 장담은, 안타깝게도 어머니한테는 들어 맞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센터행을 내켜 하시진 않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비록 아침에는 마지못해 센터로 향하시지만 돌아올 때의 얼굴색은 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얼굴 표정이 무척 밝다. 피곤에 지친 모습 보다는 왠지 모를 활력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태워다 준 운전기사 분과 도우미분 한테 

얼마나 고맙다고 인사를 잘 하시는지, 센터에서 시간을 무척 잘 보내신 티가 역력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어머니, 오늘 센터에서 뭐 하고 지내셨어요? 재밌게 보내다 오셨어요?" 하고 물어 보면, "아녀, 재미 없었어. 늙은이들끼리 앉어서 뭘혀? 암것도 않고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다 왔다." 라고 무뚝뚝하게 답하신다. 처음 며칠은 진짜 그런가 싶어, 허리도 안 좋으신데 하루 종일 앉아 있다 오시면 정말 힘들겠다 싶어 영 맘이 불편했다.


하지만 며칠전 센터에서 만든 밴드에 가입하고 나서야 불편한 마음이 가셨다.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센터에서 어머님이 활동 하시는 모습을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센터에서 보내온 사진과 동영상을 어머니한테 보여 드린다. 아무것도 안하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오신다던 어머니는 요일에 따라 소고 춤도 추시고, 윷놀이도 하시고, 운동도 하시고, 무언가 강의에도 열중이시다. 하루는 소방 훈련을 하는 동영상이 올라 왔는데 허리 아프신 분 맞나 싶게 어찌나 행동이 빠르신지 가장 먼저 대피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우스웠던지...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서 암것도 안하고 왔다는 

거짓말이 들통났는데도,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당신이 나온 동영상을 

재미있게 보신다. 그리고 사진에서 아무리 작게 찍혔어도 당신임을 알아 보시곤, 나 여기 있다 하시며 버튼을 누르듯 손가락으로 꼭 누르며 무척 좋아 하신다.


"어머니, 암것도 안하신다 더니만 제일 열심 이시네요." 라고 하면,

"오늘 내가 이것 했던가? 긴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기억을 잃어 가시는 어머님과 대화를 할라치면 어머님이 어디까지 기억 하시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많은 경우 뭘 물어보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 몰라!" 인데, 가끔은 또 중요한 일들을 너무나 또렷하게 잘 기억을 하고 계셔서 

진짜로 몰라서 모른다 하시는지, 아니면 아는데도 일부러 모른다 하시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센터 생활을 즐기시면서 가기 싫어서 재미 없다 하시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재미없어 재미 없다 하시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아무튼 이번 한 주 더 

센터 다니시다 보면 좀 나아지시려나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오늘 아침도 현관문을 나서며 기어이 한마디 하신다.

" 어이 참, 공연히 돈을 다 내놨디야아. 집에 그냥 가만 드러누워 있으면 좋은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