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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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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자(鈍者)다


BY 만석 2019-06-27

어제는 아침밥을 영감이 지었다. 밥을 지었다고는 하지만 , 내가  전날 쌀을 씻어 앉혀놓은 돌솥에 불을 당기고  뜸을 들이는 게 고작이다. 그래도 당신이 불을 당겼으니  내가 밥을 지었노라고 매일 우긴다. 그렇다 치자.

아침 설거지를 끝내니 영감이 어느 결에 옷을 갈아입고 서서 말한다.
"나, 양주 갔다 와." 양주를 간다는 건 시부모님을 모신  추모공원을 말함이다.

"역에서 택시 타요."허긴 다녀온 지가 제법 되었다. 차를 처분하고 보니, 시부모님을 뵈러 다니는 일이 가장 난감하구먼. 세워만 놓고 보험료나 자동차세를 내느니,  필요할 때면 택시를 타자 했으나 매번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렇게 영감은 현관을 나서고, 나는 몸이 무거워서 다시 누웠다.  영감도 내  무거운 몸을 감지했나? 그렇지 않으면 동행을 하자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필이면 오늘일까. 단 한 마디도 언질이 없었질 않았는가.

짚히는 게 있어서 벌떡 일어났다. 달력을 들여다보니 음력 5월 24일. 으라차차. 요렇게 까맣게 잊을 수가. 오늘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생신이다. 이를 어째. 이제라도 영감을 불러서 나도 같이 가자 해? 그런데 내 몸이 천근이다.

에구구~. 하루가 편안치를 않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5시가 넘어서자 영감이 들어선다.
"점심은 어쨌수."먹었다 한다.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고 나는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다. 영감도  아무 말이 없다.

저녁을  먹고 영감 앞에  커피를 대령한다. 영감의 손이 컵으로 향하자 잽싸게 커피잔을 먼저 내 입으로 채 온다. 늘상 하던 버릇이라 영감도 뻗던 손을 걷어넣고  태연하게 기다린다. 두어 모금을 마시고 영감 손에  잔을 쥐어준다.

영감은 마시려던 커피잔을 늘 내게 빼앗겨도 기분이 가히 나쁘지 않은 눈치다.  두 눈을 찔끔 감았다가 뜨면 어느 새 영감의 만면엔 환한 웃음이 번진다. 이건  언짢은 영감의 기분을 푸는 특효약이다.  히힛, 오늘도 대성공이다.

"깜빡 했잖아. 미리 얘기를 좀 하지이~!." 영감은 말이 없지만, 언짢은기분은 이미 다 풀린 것 같다.
휴~. 다가올 시어머님 생신은 잊지말고 내가 먼저 서둘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