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거라는건? 좋은 의미도 되지만, 나쁜 의미도 가능하지요.
맨날 야근을 불사하며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회사 생활에 신물이 나려고 하던 차에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명과 해외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지요.
그동안 구석에 조용히 지내온 연차까지 올인해서 6박7일동안 꼼꼼한 여행계획을 세웠구요.
어차피 짝도 없던 차에 "그래! 한국에 있으면 뭐해. 크리스마스를 해외에서 멋지게 보내고 오자!" 며, 취중진담을 했었는데 여행 계획에 고스란히 반영했습니다.
어찌됐든 친구랑 트러블 없이 재미나게 보내다가, 그만 크리스마스 연휴에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됐지요.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안구의 황홀함을 느끼며 여행다운 여행을 만끽하고
이른 저녁 시간에 숙소로 돌오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집에 오는 길이 꽤나 어두웠지만 시간상으로는 7시 정도였기에 딱히 걱정을 하진 않았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낚아채더니 권총(같은 것)을 자신 상의 주머니에 넣은채로 나를 위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하라면서 빨리 배낭을 벗어 내놓으라고....
사실 처음엔 이 흑인 분(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이 왜이러는 건지 상황파악이 안돼서
지금 내가 강도를 당하고 있는건지 뭔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갔었습니다.
정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되더라구요.
언제나 뭔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생각하는 거지만
참... 그 상황에 있던 제 자신이 답답하고 바보같기도 하고, 무력감에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어쨌든 가방을 뺏긴 뒤 집으로 돌아와서 은행과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요.
마침 우연히 옆에 있는 어떤분이 한국어를 조금 할줄 아셨는데, 도와주려고 했지만 크게 힘이 되지는 못했구요.
미국 와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느낀건,
처음에는 '귀는 뚫렸으니 말하는걸 더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말하는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못 알아 들으면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자체를 알 수가 없으니....
경찰에 접수는 해놓았지만 당장 일주일 후 출국이었다는... ^^;;
출국 일주일을 앞두고 여권도 지갑도 가방도 없었지요..
한국 대사관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휴무였고.. 화요일까지 꼼짝없이 기다렸다는.. ㅠㅠ
무사히 한국에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12월만 되면 그 날이 생생히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