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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나이먹는 법


BY 이루나 2018-06-16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인생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합쳐져서 사람이 너그럽고 인자해지는 건 줄 알았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가 나의 대부분의 경험이다.

문창만에 처음 갔을 때 깜짝 놀랐다. 거의가 엄마뻘인 고령자 들이었고 내 나이 또래가 몇 사람뿐이어서  어리둥절했다. 젊은 사람들이 독서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더니 그런가 의아스러웠다. 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자기소개를 하고 여기 인생에 멘토들이 많아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 모두가 언니 오빠들이라서 참 좋다고 한다. 어라 ,,,, 쟤 봐라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질감을 느끼는데 쟤는 엄청 좋아하네 그래 사람의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그럴 수도 있지 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회장과 총무를 뽑는다는데  한 사람이 얼른 손을 들더니 회장은 작년에 했던 분이 유임을 하고 총무는 아까 그분을 뽑는 게 좋겠다고 하자 모두들 손뼉을 친다. ㅎㅎ 언니 오빠로 불렀으니 당첨된 거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수업을 두 번 세 번 가면서 묘한 이질감과 함께 숨 막히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8년 10년을 다니면서 마치 친목회나 동아리처럼 운영이 되고 있었으니 그 틈새를 젊은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가질 못해서 다들 두세 번 만에 그만두고 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바람"이라는 글제가 나와서 황사와 미세먼지에 관한 글을 써서 발표를 했다. 선생님이 잘 썼어요. 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할 말이 있다면서 손을 들더니 황사가 그게 아니고 잘못 알고 있고 미세먼지도 발암물질이 아니고 내가 평생을 그걸로 밥 먹고 살아온 사람인데 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무려 세 단락을 모두 트집을 잡는다. 선생이 웃으면서 내게 하는 말이 자료를 철저히 조사해서 쓰지 않으면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도 자료조사 다했는데요" 속이 끓었다. 2.5마이크로 미터 이하의 먼지는 미세먼지이고 미세먼지가 1급 발암 물질이란 건 뉴스에도 나왔고 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건데 그걸 아니라고 우긴다. 아직 적응단계인지라 다음 시간엔 자료를 모두 뽑아다가 토론을 해보리라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불쾌했다. 지가 평생을 환경부 공무원이었다면 미세먼지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무턱대고 아니라고만 말고 그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서 납득이 가도록 근거를 제시 해야 하는데 아니라고만 한다.그리고 내가 쓴 글이 학술지에 기고를 한 연구논문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조목조목 3단 콤보로 날릴 게 아니라 정말 잘못된 글이라면 "자료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시지요" 이 한마디면 족하다. 집으로 돌아와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료를 찾고 출력을 해서 10장이 넘는 파일을 만들어 놨다.

다음날 총무에게서 문자가 왔다. 강릉의 율곡 연구원에서 개최하는 행사의 백일장에 나까지 포함 세 사람을 참석해 보라고 선생님이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일정상 갈 수가 없다는 설명을 하고 엊그제 미세먼지 원고 이야기를 하면서 문창반 분위기가 너무 올드하다고 투덜 거렸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우리랑 함께 입학한 젊은 사람들 다 그만뒀잖아요 한다. 매달 첫 번째 수업 후에는 단체로 점심을 먹는데 내 옆의 아주머니가 젊은 사람들이 오래 안 다니고 자꾸 그만둔다고 하길래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 하며 속으로 웃었다. 대부분 전직 학교 선생님 이거나 퇴직 공무원들인데 자신들로서는 우아한 취미생활이라는 명분하에 남들보다는 다르다는 먹물 특유의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도 원고를 써오지 않으면서 몇 년째 다니고 있는 건 자손들에게 교양 있어 보이고 싶은 허영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수강생 인원이 적으면 폐강이 될 것이고 나이 드신 분들이 포진해서 젊은 사람들이 유입이 안되니 선생님도 고민은 깊을듯싶었다. 모든 문화 예술계가 젊어지고 창작활동 역시 젊은 인재가 유입이 되어야 활성화가 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답답하시리라. 

4월 30일 수업을 갔더니 총무가 그만뒀단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다.
아침에 가서 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하고 사람들이 써 온 글을 인원 수대로 복사해서 나누어주고 기타 등등 부산하다. 그 와중에 맨 앞에 앉아있는 93세의 고령자 두 분은 꼭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그것참 여기까지 자기 발로 걸어온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못마땅했다. 서로를 국장님이라 부르며 대우받길 원한다. 그뿐인가 전 주에 회장님이 등단을 했다고 점심을 샀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 선생님 앞으로 반찬을 잔뜩 가져다주면서" 나 우리 집에서도 이런 거 안 하는데 총무가 안 하니까 내가 하잖아" 한다. 오 마이 갓뜨,,,, 총무가 그 안에서 하는 심부름 말고 나와서 밥상머리 시중까지 들으란 건가? 나도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배운 사람이긴 하지만 우리가 학생도 아니고 총무도 전직 교사였다. 선생님도 그냥 전업주부였다가 글을 쓰고 싶어서 문창방 수업을 받다가 이렇게 저렇게 등단하시고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로 취미생활을 하러 온 사람에게 무례한 요구라고 생각되었다. 슬픈 예감대로 총무가 그만두고 다시 뽑는다는데 적중률 100% 내가 당첨이 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가면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에 총무에게 전화했다. **씨가 그만둬서 총무가 나한테로 넘어왔다고 했더니 미안하단다. 오늘은 그 할머니들이 " 나를 쳐다보면서 커피 좀 마실 수 있나? " 하는데 내가 못 들은척했더니 옆에 사혜나 씨가 일어나서 타다 주데요. 그러니까 땡큐 하면서 받아 마시는데 자기들이 현직에서 얼마나 고위직에 있었는진 모르지만 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에게 까지 대우를 받으려고 그렇게나 기를 쓰니 측은하기까지 하더라고 이야기하며 통화를 끝냈다.

스승의 날 하루 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그날따라 제일 적은 인원이었다. 나까지 열다섯 명이었는데 이쪽에 8명 저쪽에 7명이 자리를 잡았다. 회장님이 오시더니 오늘은 밥값을 만 원씩 걷으면 나머지를 내어주지 말고 회비가 얼마 없으니 회비로 차입을 하라고 하시고 저쪽 자리로 가셨는데 이쪽 끝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이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오늘 사람이 제일 작게 왔는데  회비가 없으면 다 같이 조금씩 더 걷어야지 왜 우리 밥값을 걷어서 회비를 보태냐고 돌려 달란다. 김치. 된장찌개는 7.000 버섯 불고기는 1.1000원인데 명색이 스승의 날인데 맨날 먹는 김치. 된장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난감해서 저쪽의 회장님 자리를 쳐다보았다. 이쪽의 웅성거림이 들렸는지 다가오시더니 묻는다. " 밥값 남는 걸 돌려 달라는데요 "했더니 "누가" 저분이요 하자 " 아니 회비가 얼마 없고 그거 뭐 그래야 삼천 원인데요 문제 있어요 " 하니 " 아니요" 한다. 휴우 ` 회장님이 저쪽으로 가고 나자 다시 아까와 똑같은 이야기로 따진다. 화제를 돌려서 여기 김치. 하고 된장이 있는데요 뭘로 시킬까요? 제 생각에는 그냥 4인분씩 시켜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했더니 그러란다. 주문을 하고 앉았는데 내 앞의 할머니가 테이블에 있던  티슈를 한 장씩 꺼내서 네모 반듯이 접더니 나를 주면서 저쪽에 그러니까 선생님과 남자들이 앉아있는 자리에 수저 옆에 하나씩 놓아주고 오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자리마다 물티슈도 있고 저쪽 테이블에도  티슈는 있어요' 하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놓아주고 오란다. 아 놔~ 진짜 왜들 이러지 내 영혼이 가출할 것 같다. 앞에 있는 사혜나 씨와 눈빛교환을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티슈 배달을 하고 자리에 앉는데 옆에 할머니가 일어나 보란다. " 왜요?' 물었더니 "저 사람 계속 그 소리 할 거야 듣기 싫으니 내가 요 옆에 있는 농협에 가서 잔돈 바꿔올게 삼천 원씩 내주고 말아 한다 " "그냥 계세요 다 끝난 이야기로 이중창 하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아무것도 못해요"  단호한 내 목소리에 사혜나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엉거주춤 물러앉고 밥이 나오고 찌개를 한 그릇씩  퍼주고 전투하듯이 밥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 된장찌개가 왜 이렇게 맛이 없냐고 투덜대면서 누가 시켰냐고 묻자 다른 할머니가 받아서 하는 말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나왔단다. 분명히 물어보고 절차를 거쳤건만 딴소리를 하는 거다. 식사 후에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몇 잔 뽑아다 주고 바쁘다고 먼저 나왔다.

가끔 교실에 들어설 때  앞문을 몇 번 사용했었다. 뒷문은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하지만 앞문으로 들어서면 몇 발짝 덜 걸어도 되기도 하고 최근엔 총무랍시고 인쇄물을 들고 오르내리고 나누어 주고 하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때가 있어서 사용을 했더니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누군가에게" 앞문을 걸어버려 선생님 오실 때만 열어주고" 하는 소리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마치 나를 겨냥하는 것 같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앞문은 선생님만 사용할 수 있는 문이었다. 그것이 그대로 굳어져서 그런 사고를 하는진 모르지만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여성 문화원이다. 지금은 학교도 그런 구습을 많이 없앤 걸로 아는데 이 사람들은 옛날에 자기가 배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고집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23일 강진행 버스에 올랐더니 삼천 원 할머니가 나를 반긴다. 앞 좌석에 사람이 많아 뒤로 가서 앉았더니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안온는줄 았았단다. 왜냐고 물으니 그날 그것 때문에 엊그제 수업도 안 오고 오늘도 안 오는 줄 알고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 일로 자신도 마음이 쓰인 거다. 쯧  그리고  다시 며칠 전 수업 시간이었다. 대략 20여 명 정도여서 22매만 인쇄를 해서 교실로 가져와서 나누어 주다 보니 어라 1매가 모자란다. 하는 수 없이 뒤에 앉아있는 그 할머니 옆자리로 가서 함께 보자고 하며 앉았다. 누군가 자기 글을 발표하면서 낭독하고 있었는데 내가 쓴 다산 선생에 대한 글 내용 중에 사의재에서 1박을 하고 가 있는 걸 보면서 우리가 잔 곳이 사의재가 아니란다. 내가 사의재가 맞는다고 하자 휴대폰을 내 보이며 검색해 보자고 한다. 내가 그분의 손을 내 손으로 덮으면서 나중에요 일단 수업하세요. 했는데도 한참 검색을 하더니  사의재는 다산 선생이 머물던 주막집이 진짜 사의재이고 우리가 잔 곳은 사의재 한옥촌이라고 하는 거란다. 저도 압니다 그런데 통칭 사의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도 그렇게 이해해요. 진짜 사의재는 200년 전 집이라 다시 보수해서 군에서 보존하고 있어서 일반인을 거기서 재워 주겠어요. 거기서 잤다 그러면 당연 아닌 줄 알지요. 하는데도 그런 게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왜 저렇게까지 가르치려고 할까?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나보다 머리가 좋을 거라 인정하고 절대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쇠퇴해 가는 내 머리로는  젊은 사람들의  머리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나는 늘 실감하는데  그녀는 모르는 걸까? 그녀가 불쌍하다.


나는 이런 노인이길 소원한다. 팩트만 이야기하고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 할머니  젊은 사람들에게 아는체하며 가르치려 하지 않는 할머니  상대가 알려주기 싫어하면 궁금해하지 않는 할머니  기대고 싶고 달려와 안기면 편안해지는 할머니  아무 말 없이 가만가만 다독여 주는  맑고 고운 할머니 그런 할머니이고 싶다.